친구가 새 가게를 열었다.
인테리어도 고치고 재료도 사야 하니 총 1억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2천만 원을 보탰다.
지분의 20%, 주식 10장 중 2장이 내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 친구의 가게는 꽤 잘 됐다. 직원급여와 친구 자기 월급을 제외하고도 1,000만 원을 벌었다. 그래서 내 몫이 200만 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돈이 내 통장으로 오지는 않았다. 배당을 할지, 번 돈을 다시 가게에 투자할지는 친구(즉, 대주주)의 결정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사업을 더 키우는 쪽을 택한다. 내 200만 원은 그렇게 가게 안에 유보되었다. 200만원은 내 몫이지만 배당을 요구하기엔 내 결정권은 20%뿐이 안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투자한 2,000만원은 어떻게 회수할까?
답은 하나다. 내가 산 주식 2장을 누군가에게 더 비싸게 파는 것이다.
내가 2,100만 원에 팔든, 1,900만 원에 팔든, 친구의 장사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미 내 2,000만 원은 가게 운영에 쓰이고 있으니까. 주식은 이미 친구와 나 사이의 계약이 끝난 종이다. 이제 그 종이는 나와 '다음 살 사람' 사이의 문제가 됐다. 물론, 그 종이를 사는 사람도 투자금 회수를 친구에게 요구할 수 없다. 그 사람도 다음 사람에게 팔아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그 다음 살 사람은, 친구의 가게가 무슨 메뉴를 파는지 모를 수도 있다. 재작년 매출이 어땠는지, 올해 얼마를 벌었는지도 모를 수 있다. 그들이 아는 건 어제의 주가, 그리고 이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다.
주식 시장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기업의 영업이익보다 전날의 캔들 차트가 더 익숙한 사람들. 그 군중이 몰릴 때 주가는 오르고, 빠질 때 주가는 내린다. 친구의 가게 매출과는 사실상 관계가 없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
가게가 잘 돼도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가게가 적자여도 '곧 잘 될 것 같다'는 기대 하나로 주가가 오를 수 있다.
주가는 기업의 성적표가 아니라, 그 주식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온도계에 가깝다.
삼성전자의 PER는 약 33이다.
삼성이 1년에 주당 6,564원을 버는데, 주가는 218,000원이다.
삼성이 지금 속도로 33년을 꼬박 벌어야 현재 주가만큼 이익을 쌓는다는 뜻이다.
주식을 산 사람이 삼성에게 6,564원을 요청할 수도 없다. 그것은 대주주의 결정이지 218,000원짜리 주주의 결정이 아니다.
또한 내가 218,000원짜리 주식을 내일 30만 원에 팔랐다고 해서, 삼성이 갑자기 1만 원어치를 더 버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반대로 주가가 반토막 난다고 해서, 삼성의 반도체 공장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 주가와 영업이익은 서로 다른 세계의 숫자다.
물론 주가가 오르면 기업이 더 쉽게 자금을 조달하고 신용을 얻는 이점은 있다. 경제 전체로 보면 주가 상승이 투자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효과다. 내가 오늘 삼성 주식을 산다고 삼성의 내일 실적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 친구의 장사가 진짜 잘 되길 바라서 오랜 시간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거나,
장사와는 별개로 이 주식을 더 비싸게 팔고 싶은 사람
그래서 손해를 감수할 준비가 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주가가 오를 때 경제가 좋아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주가가 오른다고 내가 투자한 기업이 잘 되는 것도, 내 수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주식의 가격은 기업의 현재가 아니라, 투자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감정이 만들어내는 숫자다. 투자자는 그 숫자의 경쟁에 내 돈을 던지는 것이다.
내 수익은 누군가가 내 주식을 더 비싸게 사준 것이다. 다시 말해, 나의 수익은 그 사람의 손실 가능성 위에 서 있다. 주식 시장 전체에서 수익이 쌓이기만 한다는 생각은 폰지 사기와 같은 구조다. 누군가 이겼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