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를 밤새 들여다본 적이 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숫자들 사이에서 뭔가 빛나는 신호를 찾으려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두세 시간을 쏟아붓고 나면 왠지 이번엔 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열심히 공부한 것과 수익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가 "그냥 느낌"으로 산 주식이 올라 있을 때, 그 허탈함은 배신감에 가까웠다.
이게 단순한 불운일까.
주식을 고를 때 우리는 스스로를 심사위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탄탄한 기업, 가장 미래가 밝은 산업, 가장 저평가된 종목을 고르면 수익이 따라온다고 믿는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이걸 미인 대회에 비유했다.
수익은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사람을 골랐을 때 오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것 같은 사람을 골라야 한다.
내가 밤새 분석해서 "이 주식은 10만 원짜리야"라고 결론 냈어도, 수억 명의 다른 참여자들이 "글쎄, 5만 원도 모르겠는데"라고 느낀다면 내 분석은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수익은 내 판단의 정확성이 아니라, 내 판단과 타인의 심리가 우연히 겹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건 '나의 확신'이지, 시장의 방향이 아니다.
"감이 아니라 원칙으로 한다"는 사람들은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승률 높은 기법을 만들고, 그 원칙을 철저히 따른다. 투자를 포커 고수처럼 확률을 계산하며 시장에 나선다.
하지만, 포커는 규칙이 고정된 닫힌 게임이다. 그 안에서는 실력이 통한다. 에이스 네 장을 쥐면 반드시 이긴다. 그런데 주식 시장은 게임 도중에 규칙이 바뀐다. 에이스를 쥔 순간 갑자기 "오늘부터 이 게임은 체스입니다"가 될 수 있다.
팬데믹이 오고, 금리가 뒤집히고, 누군가의 트윗 하나가 시장을 흔든다. 그때 내가 쌓아온 기법과 원칙은 아무 방패도 되어주지 못한다.
더 무서운 건, 결과가 나빴을 때 그게 내 실력 부족인지 시장이 판을 뒤집은 건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틀린 방향으로 열심히 수정한다.
철학자 나심 탈레브는 이런 우리의 상황을 루딕 오류라고 불렀다.
투자의 수익은 내가 땀 흘려 일군 결과물이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심리와, 예측할 수 없는 시장의 흐름이 우연히 내 포트폴리오와 같은 방향을 향했을 때, 시장이 잠깐 건네주는 선물에 가깝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노력의 방향이 달라야 한다. 수익을 만들어내려는 노력보다, 어떤 폭풍이 와도 파산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구조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수익의 결정권은 내 분석이 아니라 시장의 손에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장이 언젠가 선물을 건네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자리에 살아남아 있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