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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버릴 용기 #1

The Default Money Plan

— 30년 후에 200만원 가치의 연금을 받으려면, 월 200만원을 저축해야 하는 현실

1. 불가능한 계획의 정체를 드러내다

[복리의 마법이라는 환상]


"복리의 마법"이라는 달콤한 유혹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한 번쯤 봤을 것이다. "매달 50만원씩 10년만 모으면 복리로 1억!" 이런 제목의 영상들. 댓글에는 "와 진짜 마법이네요" "저도 당장 시작해야겠어요" 같은 반응들이 주르륵 달린다.

사실 숫자만 보면 정말 그럴듯하다. 매달 50만원씩 10년이면 원금만 6천만원. 여기에 연 4~5% 복리가 붙으면 7800만원 정도 된다. 계산기 두드려보면 맞다.


10년 전 vs 지금, 창업비용의 현실

2015년 당시 프랜차이즈 카페 창업비용은 약 1억 2500만원이었다. 그러니까 7800만원이면 부족한 4700만원 정도만 대출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었다. "조금만 더 모으면 되겠네" 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만했다.

그런데 2025년 지금은? 소형 카페 10평 기준으로도 초기 자본만 7천만원에서 1억원이 든다. 여기에 보증금까지 포함하면 전체 창업비용이 1억 5천만원에서 2억원까지 올라간다.

10년 전에는 "조금 부족한" 수준이었던 돈이 지금은 "아직도 한참 부족한" 돈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옷을 사려고 용돈을 모으는 동안 그 옷 가격이 두 배로 올라버린 기분이랄까.

복리는 혼자만 늘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내 돈이 복리로 늘어나는 동안 창업비용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다. 임대료는 매년 35%씩 오르고, 인테리어 비용도 46%씩 오른다. 알바생 최저시급도 계속 올라간다. 내 투자 수익률이 연 4~5%라면, 창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들도 비슷한 속도로 오르는 셈이다.

결국 내 돈의 '실제 구매력'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마치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처럼, 열심히 달려도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진짜 함정은 따로 있다

그런데 복리의 진짜 함정은 숫자가 아니다. 진짜 위험한 건 "계획만 세우면 된다"는 착각이다.

"10년 뒤면 카페 사장님"이라는 목표를 세우는 순간, 우리는 10년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가정하게 된다. 내 취향도, 시장 상황도, 카페 업계도 모든 게 지금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10년 사이에 코로나가 와서 외식업계를 뒤흔들었고, 배달 문화가 급격히 확산됐다. 1인 카페, 무인 카페, 드라이브 스루 전문점 같은 새로운 형태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카페보다 편의점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

이런 변화들을 10년 전에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복리의 마법? 이건 마법이 아니라 착각이었어요."


[30년 후 연금의 현실]

더 심각한 예를 보자. 현재 30세인 B가 노후 준비를 위해 매달 100만원씩 저축한다고 가정하자.

연 5% 수익률로 30년간 운용하면 약 8억 3천만원이 된다.

B는 이 돈으로 노후에 월 20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8억 3천만원을 연 3% 수익률로 운용하면 연간 약 2500만원, 월 약 200만원 정도가 나오는 계산이다.


하지만 30년 후 월 200만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3%로 가정하면, 30년 후 월 200만원의 구매력은 현재의 월 82만원 수준이다. 30년 동안 매달 100만원씩 저축해서 결국 월 82만원의 연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계산하면:

30년간 총 저축액: 3억 6천만원

수익률을 고려한 최종 금액: 8억 3천만원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가치: 약 3억 4천만원

결과: 30년 동안 저축한 돈보다 적은 실질 구매력


B가 깨달은 것은 충격적이었다.

30년 후에 200만원 가치의 연금을 받으려면,
지금부터 매달 200만원을 저축해야 하는군요.


[물가를 고려하지 않는 저축의 수익률은 착시다.]

왜 이런 현실을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까?


32세 은행원 C의 고백:

"은행에서 상품 설명할 때 명목 수익률만 이야기하지, 실질 수익률은 거의 언급하지 않아요. 물가상승률 얘기하면 고객들이 가입을 안 하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그렇게 자세히 계산해본 적이 없어요."


금융회사의 상품 설명서를 보면 항상 이런 문구가 작게 써있다.

"과거 수익률이 미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왜일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금융상품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적금 금리 3.5%

물가상승률 3%

세금 15.4%

실질 수익률: 3.5% - 3% - (3.5% × 15.4%) = -0.04%

실제로는 손실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을 제대로 보여주는 금융회사는 거의 없다.


2. 계획의 전제 조건을 의심하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가정들]

기존 재무설계는 몇 가지 암묵적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

요즘은 재무설계사 말고, 자산관리연구소장 이란 명칭도 많이 쓰던데... 그게 뭐가 됐든 타인의 재산을 코칭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약해서 저축하면 일단 뭐가 되는 듯이 말한다.


물가상승률은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다

수익률은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률을 상회한다

현재의 생활 수준을 30년 후에도 유지할 수 있다

30년 동안 일정한 수입과 저축이 가능하다

여유자금을 여러 목표에 분배하면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정들이 과연 현실적일까?

[가정 5: 분배의 환상 - 한 개도 안 되는데 여러 개를 동시에?]


32세 직장인 Z의 재무설계 상담 결과표를 보자:

Z의 라이프 이벤트별 필요자금:

결혼자금: 5천만원 (2년 후 필요)

주택 구입: 3억원 (5년 후 필요)

자녀 교육비: 2억원 (10년 후부터 필요)

은퇴 준비: 5억원 (30년 후 필요)


Z의 월 여유자금: 150만원

재무설계사가 제안한 "분배 방식":

결혼자금: 월 40만원 (가중치 높음 - 기간 급함)

주택자금: 월 50만원 (가중치 높음 - 금액 큼)

교육비: 월 30만원 (가중치 보통 - 기간 여유)

은퇴준비: 월 30만원 (가중치 낮음 - 기간 많음)


결과 예측:

결혼자금: 2년 후 960만원 (목표 5천만원 대비 19% 달성)

주택자금: 5년 후 3천만원 (목표 3억원 대비 10% 달성)

교육비: 10년 후 3600만원 (목표 2억원 대비 18% 달성)

은퇴준비: 30년 후 1억원 (목표 5억원 대비 20% 달성)


Z의 반응

이게 뭔가요? 어떤 목표도 제대로 달성할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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