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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은 고통이고 찰나만 희열인가?

삶의 계획에 대한 생각입니다.

통장 잔고가 목표액에 도달하는 순간을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0억, 20억, 혹은 내 집 마련에 필요한 그 숫자. 그 순간이 오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다.

불안은 사라지고, 자유가 찾아오고, 드디어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매달 적금을 넣고, 아껴 쓰고, 하고 싶은 걸 미루며 그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스친다. 그 순간이 오면 정말 모든 게 달라질까.

혹시 그 순간은 생각보다 짧게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며 똑같은 방식으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들은 대체 무엇인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도 내 삶인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소중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논리대로라면 우리 삶의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다.

성공의 순간, 목표 달성의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은 그저 견디고 참아야 할 과정이 된다.

하루하루가 버거운 건 당연하다. 오늘이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희생으로만 정의된다면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여기서 오느지 모른다.


목표는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사는가.

돈을 모으고, 절약하고, 미루고, 참는다. 그런데 그렇게 10년, 20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원하던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때도 여전히 다음 목표를 세우며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을까.


우리는 왜 미래의 순간을 위해 현재의 모든 순간을 희생하는가. 그 순간만 의미를 가질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렇게 정의한 것은 아닐까.


삶을 돌아보면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여행 갔던 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던 저녁, 마음에 드는 책을 읽던 주말 오후...

그 순간들은 대단한 성취나 큰 목표 달성과는 관계없었다. 그저 그 순간 자체가 좋았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사치로 여기며 미루곤 한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돈을 더 모으면", "안정되면" 하겠다고. 하지만 그 나중은 언제나 막연하다.


몇 달 전 친구가 여행 가자고 했을 때 돈 아껴야 해서 거절했는데, 그 돈으로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고 싶었던 책이나 옷을 참았는데, 그렇게 아낀 돈을 어디에 얼마나 유용하게 쓰였는지 모르겠다. 절약하고 참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려서, 정작 무엇을 위해 아끼는지조차 잊어버린 것이지 모르겠다.


삶은 단절된 순간들의 나열이 아니다.

오늘과 내일, 지난주와 다음 달, 올해와 내년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선 상에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한 순간만을 위해 현재의 모든 순간을 희생하는 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오늘이 의미 없으면 내일도 의미 없을 가능성이 크다. 과정이 고통이라면 감래의 결과 이후엔 다시 또 과정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다른 방식의 계획이다.

"10년 후 1억 모으기" 같은 결과 중심의 목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과정 중심의 계획이 필요하다.

통장 잔고라는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선택들을 하는 것.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의미 있고 미래도 준비되는 방식으로 사는 것.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보는 것.

그러려면 먼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막연하게 "안정", "자유", "여유" 같은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어떤 성장을 이루고 싶은지 말이다.


중요한 건 이 과정 자체가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무엇을 우선시하는가, 어떤 욕망을 실현하고 어떤 것을 미루는가. 이런 선택들이 쌓여서 나라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그 과정을 고통으로만 채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관계를 맺고,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


욕망을 "나중에 시간 나면"이라고 미루지 말고 지금 시작해보는 것이다. 완벽한 시간은 오지 않는다. 지금도 바쁘고 나중에도 바쁠 것이다. 중요한 건 바쁜 와중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그래도 미래 준비는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 준비가 현재의 희생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 의미 있는 경험을 쌓고, 관계를 맺고,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미래 준비다. 통장에 숫자만 쌓이고 삶은 텅 비어 있다면, 그건 준비가 아니라 고립이다.

또 누군가는 "그럼 저축을 아예 하지 말라는 건가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아니다. 저축도 필요하고, 미래 계획도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균형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한 저축도 하되, 현재를 위한 지출도 한다. 큰 목표도 세우되, 작은 욕망도 실현한다. 그렇게 하면 매일매일이 고통이 아니라 삶이 된다.

그리고 이런 균형을 잡으려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이 있으면 선택이 쉬워진다. 친구가 여행 가자고 할 때 "내 욕망 예산 안에서 가능한가?"만 확인하면 된다. 가능하면 죄책감 없이 가고, 불가능하면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사고 싶은 게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 기준에 맞으면 사고, 아니면 안 산다. 이렇게 하면 매번 고민하고 망설이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그 에너지를 실제로 삶을 즐기는 데 쓸 수 있다.


삶은 계획은 지점이 아니라 여정 그 자체다.

그 여정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결국 내 삶의 질을 결정한다.


통장 잔고가 10억이 되는 기쁨의 시간보다 10억을 모으는 과정은 몇 년, 혹은 몇십 년이다. 그 긴 시간을 고통으로만 채울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도 의미와 기쁨을 찾을 것인가.


고통에서 모은 10억이 의미와 효용성이 있으려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시간동안 모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매달 100만원씩 80년을 모아야 한다. 80년 후의 통장에 찍힌 10억의 가치는 지금의 5천만원만원 남짓이다. 현실적으로 가치가 없는 계획이다. 급여의 30%를 통채로 80년을 저축해도 의미가 없는 것을 계획이라고 만들고 있다.

계획이 의미가 있으려면, 금액이 아니라 비율로 저축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현실을 희생해서 만든 미래의 효용성이 불화실하다. 대통령 윤씨도 권력으로 내란까지 만들어도 원하는 것을 못 이룰지 몰랐다. 새로운 대통령이 오면 정상이 될 것 같은데, 여전히 내란에 동조하는 권력들의 권세가 꺽이지 않고 있다. 세상에 예측 가능한 미래란 없는 것 같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과를 위한 계획이 아니라 과정을 위한 기준이다. 미래의 한 순간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선택의 기준. 그 기준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성공이 아닌 삶 전체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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