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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했을까(19)

엄마와 함께 한 추억들...

by 메멘토 모리

엄마, 오늘은 태안 안면도 꽃지 해변을 걸으며 엄마와 함께한 추억들을 몇 가지 떠올려 보았어, 엄마도 기억할 거야

♥ 내 머리에 이를 잡아 주었어요. 머리도 잘라 주셨지요.


엄마, 나 어리적 내 머리에 이가 많았어. 늘 가려워서 손으로 늘 머리를 긁었지. 이따금씩 엄마가 큰 달력 깔아놓고 참빗으로 내 머리를 썩썩 빗어주면 이가 달력 위에 떨어졌지. 그러고는 빨래 비누로 내 머리를 감겨주었지. 1976년으로 기억해...

하얀 보자기를 목에 두르면 엄마가 가위로 머리를 잘라 주었어. 처음에는 촌스러웠는데 가면 갈수록 예뻤어. 엄마는 미용사를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


♥ 달력으로 교과서 겉장을 만들어 주었어요.


초등학교 때 교과서는 표지지 얇아서 지난해 달력으로 표지 겉장을 만들었어. 엄마가 달력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서 예쁘게 만들어 주시던 기억이 났어. 엄마가 만들면 예뻤어. 그리고 표지에 “국어” “1학년” “김남형” 이렇게 적어 주셨어. 삐뚤삐뚤한 글씨로... “남형아, 공부 열심히 하렴.” 하면서 웃어 주셨지...


♥ 엄마랑 고구마를 캤어요.


감이 익는 늦가을이면 산등성이 작은 밭에 심어 놓았던 고구마를 캤어. 엄마가 고구마를 캐면 나는 그 고구마를 광주리에 담았어. 지금도 호미로 밭이랑을 파면 큰 고구마 나왔던 기억이 생생해. 고구마를 캐고 돌아오면서 그 밭 가장자리에 있던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 먹던 기억도 나. 큰 홍시는 내가 먹고, 작은 홍시는 엄마가 먹었어. 엄마는 늘 그랬어. 좋고 큰 것은 늘 내가 먹었어. 그게 엄마였어.


♥ 찐빵과 칼국수, 고구마 튀김을 해주셨어요.

엄마 요리 중 가장 맛있던 것이 찐빵과 고구마 튀김, 그리고 칼국수였어. 팥을 수확하면 늦가을과 겨울에 찐빵을 자주 해 주셨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설탕에 찍어 먹으면 세상 모두가 내 것 같았어. 고구마 튀김도 고소하고 맛있었어. 바짝 구워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어.


우리 오 남매에게 모두 먹이려면 적은 양이 아니었을 텐데...


또,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눌러 만든 칼국수도 일품이었어. 엄마가 홍두깨로 반죽한 밀가루를 꾹꾹 누르면 그 반죽이 편평하게 펴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 하얀 밀가루가 늘 묻어 있던 홍두깨는 지금도 기억이 나

갈색 호빵 일러스트 포스터.png


♥ 소풍 때 엄마랑 같이 갔어요.


초등학교 때 소풍 전날 김밥을 싸주셨던 기억이 있어. 김밥을 못 하시면 계란과 소시지로 반찬을 만들어 아주 예쁜 도시락에 담아주셨지. 농사일로 늘 바쁜데도 소풍을 같이 가 주신 엄마에게 감사해. 나의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인사하시며 내 칭찬을 하실 때 엄마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시며 웃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 엄마랑 축구 보러 갔어요.


우리 강릉은 축구의 도시잖아요. 엄마랑 손잡고 공설운동장에 축구 보러 갔던 기억이 많아. 아마, 아빠가 입장권을 주셨던 것 같아. 엄마는 축구 경기 보며 즐거워했어. 그리고, 아빠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늘 응원했어. 축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란 핫도그도 사 줬어. 내 주변에 엄마랑 축구 경기를 보러 간 친구는 나밖에 없어. 엄마, 멋져

♥ 엄마랑 강릉 단오장에 갔었어요.


초등학교 때 엄마랑 단오장에 가면 맛난 것을 먹었어. 아이스크림, 음료수, 그리고 옷도, 운동화도, 양말도 사 줬어. 서커스도 봤어. 그때 단오장 서커스단에서 보았던 호랑이, 사자, 코끼리, 원숭이는 지금도 기억이 나. 엄마는 축제나 장터에 나를 자주 데리고 갔어. 다양한 삶이 가득한 곳이잖아. 고마운 경험이었어. 내가 잘살고 있다면 엄마와 같이 했던 그 경험도 한몫했어.


♥ 운동회 때 나를 응원해 주셨던 엄마를 기억해요.


나는 달리기를 잘했어. 매학년마다 대표 계주 선수였고, 달릴 때마다 1등을 했지. 계주선수로 뛸 때 늘 중간지점에서 엄마가 날 응원하고 있었어. 형은 오래 달리기를 잘했지. 형도 늘 1등이었어. 우리가 운동을 잘한 것은 아버지 유전자야. 엄마는 초등학교 때 운동을 못해 힘들었다고 이야기했지. 아빠는 학창 시절 내내 달리기 선수였대.

운동회.jpg


♥ 비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오셨어요.


고등학교 때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은 엄마가 학교로 오산을 가지고 왔어. 집에서 학교까지 꽤 먼 거리였는데... 야간자율학습 전 저녁시간에 늘 왔어. 우산을 주고 돌아가며 손을 흔들어 주던 엄마를 기억해. 아주 또렷이... 엄마 그때 엄마에게 이 말을 못 했어. “고맙고, 사랑해”


엄마,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추억이야. 이것 말고도 기억을 끄집어 내보니 참 많은 추억이 있어. 56년을 엄마와 아들로 살아왔으니 얼마나 추억이 많겠어.

우리는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지나고 보니 다 사랑이었어. 엄마가 나를 사랑했고, 나도 엄마를 사랑했어.

이제 엄마와 함께한 그 모든 추억을 끄집어 내 차곡차곡 쌓아 가. 엄마가 우리와 이별하고 엄마를 볼 수 없을 때 그때 꺼내 보려고 해.

엄마, 우리는 추억이 많아. 우리는 행복하게 잘 살았어. 다 엄마 덕분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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