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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일 Dec 20. 2023

"마산 3․15의거는 노인들이 주도"..진실규명 된다

노인층 주도 정권 퇴진 대규모 시위 확인, 원정시위 희생자 추가 확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3·15의거 「할아버지․할머니 시위」,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시위 참여 및 인권침해 확인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이들 사건이 3·15의거에서 차지하는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지난해 10월부터 직권조사를 진행해 왔다.

1960년 4월 24일 할아버지 시위대가 마산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

3·15의거는 1960년 3월~4월에 걸쳐 마산지역 시민들과 학생들이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와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으로서, 경찰의 무차별 발포와 폭력 진압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벌어졌음에도 굴하지 않고 수차례 시위를 전개하여 4·19혁명을 촉발시킨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1960년 4월 24일부터 하루동안 마산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주도해 이승만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일으켰고 마산 시민 수만명이 이에 호응해 대규모 시위로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3·15의거는 물론이고 한국사회 민주화운동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노인들의 시위로 평가된다.


할아버지·할머니 시위는 1960년 4월 13일, 3·15의거 2차 시위 종료 이후 발포·고문 경관 및 인권침해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지지부진하고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통제 등으로 사실상 시위가 어려웠던 마산지역 상황에서 당시 여론 주도층이 아닌 노인들이 시위를 주도해 많은 시민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60년 4월 25일 할머니 시위대가 마산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


또 4월 26일 오전 부산지역 노인시위가 발생하고 이 시위가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는데, 진실화해위는 “마산지역 할아버지·할머니 시위가 부산지역 노인 시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1960년 4월 24일까지 통상 한국사회의 여론 주도층으로 간주된 대학생, 교수, 언론인 등 지식인층과 정치권에서 이승만 대통령 퇴진에 대해 선명한 입장을 내걸지 못하는 사이, 마산지역 노인들이 시위의 주된 목표로 이승만 대통령 퇴진을 주장함으로써 1960년 4월 25일부터 전국 대부분의 시위가 이승만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화해위는 “할아버지·할머니 시위가 그동안 3·15의거사에서 제대로 언급되거나 평가받지 못했으나 할아버지·할머니 시위는 1960년 3월 15일 이후 수차례 국가권력의 폭압적 모습을 목도한 마산 기층 민중들의 자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지역 노인들이 주도해 정권 퇴진을 외쳤다는 것은 3·15의거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부산시위대 마산 원정시위는 1960년 4월 26일 부산에서 시위하던 시위 참여자 일부가 마산원정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마산시민들이 합류해 시위에 참여한 사건으로, 시위 참여자에 대한 체포, 구금 등 인권침해와 시위 과정에서 4명의 사망자 등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 확인했다고 진실화해위가 밝혔다.            

1960년 4월 26일 오후 마산으로 진입하는 부산시위대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60년 4월 26일 아침, 부산에서는 4월 24일~4월 25일 마산지역 할아버지·할머니 시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부산지역 노인 시위를 시작으로 오후에 대규모 시위가 촉발돼 부산 시내 서면을 중심으로 약 2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가 각종 차량에 탑승해 개별적으로 마산원정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마산 시민들이 합류해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마산에서 시위 이후 부산으로 귀환했고 일부는 밀양, 창녕 등 인근 지역으로 이동했으나 다수는 마산 시민들과 함께 시위를 한 후, 마산 시민들이 제공한 마산상업고등학교 강당, 무학국민학교 교정, 민가 등에서 숙식을 하고 4월 27일 오전 타고 온 차량과 기차편으로 부산으로 귀환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는 고등학생, 청년 등을 중심으로 여러 계층이 참여했고, 시위의 주된 타격 대상은 파출소 등 정권의 폭력적 억압기관과 동시에 부정선거의 직접적 당사자였던 자유당 관련 시설 등이었다는 점에서 3·15의거 1차, 2차 시위와 4·19혁명 당시의 시위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당시 공권력과 일부 언론, 사료에서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에 대해 대부분 주먹을 쓰는 깡패, 건달, 양아치, 난동, 폭도 등으로 왜곡한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60년 4월 26~27일 마산 무학국민학교 교정에 수용된 부산시위대 모습. [진실화해위 제공]


또한 진실화해위원회 직권조사 결과,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대에 대해 공권력에 의한 진압으로 다수의 구금자가 발생한 사실도 확인됐다. 특히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기존에 알려진 2명과 달리 4명이며, 이에 따라 3·15의거 관련 희생자는 총 14명에서 총 16명으로 희생자 2명을 추가 규명했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가 3·15의거 1차, 2차 시위 이후 전개된 대규모 시위로, 시위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3·15의거 과정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중요성과 의미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할아버지·할머니 시위와 부산시위대 마산원정시위에 대해 기존 자료나 공공기록에 제대로 언급되어 있지 않거나 왜곡돼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직권조사 결과를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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