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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맘 Mar 11. 2021

포기가 가끔은 여유를 가져온다

그놈의 깔끔 병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어렸을 적부터 한 깔끔했던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나만의 방식대로 살았기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활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조금은 깔끔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 그 속에서 서로 충돌하는 일들이 있었고 나 혼자 속 타는 일들이 제법 있었다.

  

  첫째를 낳은 후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왔는데 빨래와 설거지할 그릇들은 그대로 있고 청소기는 한 번도 돌려본 흔적도 없었다. 지인들에게서 받은 출산 축하선물들은 거실 한편에 고요히 자리 잡고 있었다.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아이가 나에게 떡하니 안겨져 있는 그 순간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정리정돈 안된 이런 광경은 육아 스트레스와 더불어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어쩌면 내가 남편을 그렇게 길들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뭐든지 해야 속이 시원하고 서투르게 집안일하는 남편을 보면 속이 터져 내가 해버리곤 한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남편이 조금씩 집안일에 익숙해지게 기다려주면 되었을 것을 나는 성격이 급한 탓에 남편을 우리 집의 손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아이 셋을 낳는 동안 집에 방문했던 산후도우미들은 일관되게 내게 같은 말을 했다.

 " 새댁 조금만 지나 봐. 이렇게 깔끔 떠는 거 다 필요 없어. 새댁 몸만 망가지고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

 

  청소가 안되어있으면 안절부절못하고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져 있으면 바로 집어내야 했던 그런 나의 깔끔 병. 아이들 목욕은 하루라도 빠트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나 또한 하루라도 샤워하지 않으면 몸에 뭐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오죽하면 첫 아이를 낳고 병실로 간 다음날 샤워를 했을까. 그로 인한 산후통으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말이다.


  산후도우미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믿맡기면 될 것을 젖병은 내 방법에 맞게 잘 씻는지 빨래는 다른 옷과 안 섞이게 잘 세탁기에 돌리는지 아이 목욕시킬 때는 안전하 구석구석 잘 씻기는지 늘 감시 아닌 감시를 했다. 나보다 인생을 조금이나마 더 경험한 산후도우미들의 그런 말에 지금은 동의하지만 그때는 무슨 정신병자처럼 그런 것에 집착하며 나의 머릿속에만 가득 자리 잡고 있는 그 깔끔 병으로 나 스스로 더욱 옥죄었었는지.


  3년 동안 배불러 있었음에도 집안은 거의 깔끔했고 집에 오는 사람마다 아이 키우는 집 맞냐고 이야기했었다. 그게 무슨 훈장이라도 된 듯 그런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지며 힘들게 청소하고 정리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했다.


  모든 것에 완벽하고자 했던 나의 생각이 지금은 많이 포기가 되었다. 40대에 접어든 나이 탓인지 체력도 받쳐주지 않고 이제 아이들도 조금 컸다고 나의 말은 잘 듣지도 않기에 집안일에 대해 조금 내려놓게 된 것이다. 또 그래야 내가 살아가는데 숨 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생  때문이다. 개수대에는 설거지할 그릇들이  한가득이며 빨래는 세탁기가 대신 빨아주고 건조기가 말려주지만 개지를 않아 어떤 때는 온 가족이 바닥에 널브러진 산더미 같은 속에서 자기 옷을 꺼내 입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는 막내아들이 자기 신을 양말이 서랍 속에 없음을 확인하고는 내게 묻지도 않고 널브러진 옷들 속에서 양말 한 켤레를 가져오는 게 아닌가. 그런 일을 몇 번 경험하고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양말을 찾아오는 여섯 살 막내. 편도 조금 익숙해진 듯하다. 옆에서 내가 쉬지 않고 육아와 집안일에 완벽하려고 스트레스받는 걸 보며 육아에만 전념하고 집안일은 조금 내려놓으라고 했던 남편은 그런 내가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완벽하게 육아와 집안일을 하지 못도 어느 누구 하나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 텐데 왜 그렇게 남을 의식하며 모든 것에 완벽하려고 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다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렇게 적응해 나간다는 것을 왜 그땐 지 못했.


  이제는 가끔 집안일이 쌓여있으면 남편이 눈치 주는 것 같긴 한데 본인이 도와주지 않을 거면 나에게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 조기에서 나온 수건과 옷가지들 ]


  유독 나는 뭔가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정리와 청소에 집착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강박장애가 아니었나 싶다.  2,30대 때는 젊었기에 체력이 받쳐주니 더욱더 그랬다. 지금 나의 마음은 깔끔하게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감사한 일이다. 나를 깔끔 병에서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에. 조금 포기했을 뿐인데 예전보다 스트레스도 덜 받고 마음 한결 가볍다. 진작 이렇게 내려놓지 못한 게 조금 후회는 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며 일에 몰두했을 과거의 나에게 응원을 보고 싶다.




* 커버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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