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
대략 한 5개월의 길고 험했던 산길이 이제 내리막 길만 남겨놓고 있다. 혹자는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고 하던데, 나는 산을 잘 몰라서 그런가 내리막이 훨씬 좋다. 뭐 어쨌거나 오늘은 한 숨 돌릴 내리막길만이 내 앞에 놓여 있다. 물론 내일은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내려가기도 전에 올라가야 할 지도...
이러고저러고 간에 지금 난 산 정상에 있는 기분이다. 올라올 때의 고통은 싹 잊은 채 그저 뻥 뚫린 풍경에만 취해있는 것처럼.
지난 다섯 달 동안 책을 연달아 두 권 한 것도, 코로나라는 전염병에 북적대는 환경에서 작업한 것도, 집안사람들의 유례없는 괴롭힘도, 생애 첫 이사다운 이사가 코앞에 있다는 것도 전부 다 날 많이 힘들게 했다. 물론, 그 끝이 안 좋다는 건 아니다. 다만 과정이 무척 힘들었을 뿐. 그런데 그 힘들었던 기억들이 지금 돌이켜보니 그럭저럭 견딜만했던 것 같다. 당시엔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고 서러웠는데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럽게 힘들고 슬퍼도 이런 순간이 있어서 참고 일을 하는가 보다.
아주 오랜만에 읽고 싶은 책도 많이 읽고, 이사 준비도 맘껏 할 생각을 하니 설렌다. 그간의 고통이 눈 녹듯 삭- 사라진다. 이런 여유가 오래가지 않을 것 같고 똑같은 상황(특히 코로나 때문에 애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상황)에 작업하는 일이 또 생길까 봐 걱정되긴 하다. 그래도 나는 한 3일만 지나도 또 일을 하고 싶어 할 거다. 그 지옥이 진절머리 나게 싫어도 오늘처럼 산 정상에 오른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은, 고통스런 기억과 달리, 절대 잊히지 않으니까.
일단 오늘을 즐기자. 그리고 코로나야 제발 좀 물러가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