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이 들려주는 부동산 이야기 : 캐널시티
전에 어느 여행작가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행을 가기 전 방문할 곳을 정하고, 호텔과 맛집도 검색하고, 교통편도 예매하고, 꼼꼼히 일정표를 짠다. 여벌 옷과 비상식량, 상비약, 각종 휴대장비 리스트를 적은 후 하나하나 체크하며 가방을 싼다. 마침내 당일, 나는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 기차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열차 플랫폼에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그 여행작가가 매번 그렇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도 여행을 다녀온 것 못지않은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기대감과 설렘은 여행 직전이 가장 크다. 마치 휴가 전날이 가장 즐거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여행을 자주 가지는 못하더라도, 여행을 갈 것처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탈이 될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우리 가족 전체가 처음으로 함께할 해외여행을 준비했다. 막내가 이제 만 2살인 관계로 멀리 가는 것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1시간 거리에 갈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있지 않은가... 바로 제주도... 해외는 아니지만 비행기도 타고 풍경도 이국적이니 해외여행 모양새는 좀 갖춰진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비행기 티켓에 렌터카에 맛집에, 각종 관광지 쿠폰에... 하지만 여행 전날부터 제주도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40년 만이란다. 조마조마하며 다음날은 그치기를 바랐지만, 작정하고 내리는 눈은 계속됐다. 결국 공항은 이착륙이 중단되었고, 그렇게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여행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책상 한 구석에 열심히 준비한 일정표가 꽂혀 있다. 오랜만에 들춰보니 준비하면서 기뻤던 일들이 떠오른다.
1년이 지나 다시 한번 해외여행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해외다. 역시나 아이들 나이를 고려해 가까운 일본으로 잡았다. 와이프가 어릴 적 일본에 살았기 때문에 일본어에 능통한 점도 있었다.
규슈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후쿠오카... 인천공항에서 1시간 반이면 도달하는 곳이다. 머무는 동안 우리도 여느 여행객들처럼 맛집을 찾아다녔고, 쇼핑을 했다. 그런 얘기는 굳이 내가 안 써도 이미 너무나 많은 글들이 있으니 난 좀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나의 관심사인 부동산, 마케팅 관점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캐널시티"다. 캐널(canal, 운하)이라는 명칭처럼 건물의 오피스동과 상업시설동 사이에 인공수로가 있으며, 수로를 따라 협곡을 형상화한 외벽이 상징인 복합건물이다. 건축 전공이신 분들은 대번에 눈치를 채셨겠지만 존 저디가 설계한 작품입니다.
존 저디(jerde)는 "쇼핑몰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로, 우리가 잘 아는 작품으로 미국의 벨라지오, 일본의 록본기 힐즈와 난바 파크 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요.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건대 "스타시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랜드 캐니언의 협곡을 형상화한 외벽 디자인으로 유명하지요.
또한, 캐널시티는 "도시의 극장"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데요. 실제로 캐널시티를 보기 전까지 이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 보니 왜 도시의 극장인지 알겠더군요.
마침 제가 방문했던 1월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원피스" 극장판이 상영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캐널시티 곳곳에서도 원피스 광고물이 설치되어 있었지요.
그리고, 밤이 되자 캐널시티가 극장으로 변했습니다. 캐널시티가 자랑하는 볼거리 "캐널 아쿠아 파노라마"입니다.
처음엔 인공수로에 설치된 분수와 레이저가 작동됩니다. 이것 만으로도 장관이지요.
그런데 잠시 후 외벽이 극장 스크린이 되어 "원피스 골드" 스페셜 예고편이 상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위 사진에서 건물 맨 위층 캐릭터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창문 한 칸 한 칸에 맞춰 정교하게 제작된 영상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건물 모양에 맞춰, 때로는 아래 사진처럼 전체를 하나의 스크린처럼 활용해 규모감을 극대화했습니다.
건물 외벽을 활용해 엄청난 규모의 영상을 보여주는 것도 상당한 볼거리지만, 분수, 레이저와 영상이 합을 맞추듯 조화를 이뤄 만들어 내는 장면은 극장에서 구현할 수 없는, 온전한 캐널시티만의 것이지요.
이제 마케팅 관점에서 볼까요? 제 생각에 영상물 제작은 원피스 배급사 측에서 하고 캐널시티는 장소 제공만 한 게 아닐까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캐널시티는 돈 안 들이고 집객 효과를 높인 셈이지요. 물론 원피스 배급사도 확실한 홍보를 한 것이니 서로 Win-Win 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가면 원피스가 아닌, 다른 영화의 예고편을 볼 수 있겠지요? 영화사와의 콜라보를 통해 캐널시티는 문화적이고 트렌디한 이미지도 가지게 되겠네요.
상업시설을 개발할 때 차별화 포인트를 어떻게 둘 것인지에 대해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통상 차별화 포인트는 1. 건물 디자인(외형) 2. 내부 인테리어 3. MD구성 4. 이벤트/행사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캐널시티는 독특한 건물 디자인을 기본으로 영상 이벤트를 통해 차별화한 우수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낮과 밤의 모습이 모두 매혹적인 곳. 후쿠오카에 가시면 캐널시티에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ps) 그래도 여행 다녀왔으니 맛집 소개 한 군데만 하겠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한 곳인데요. 바로 100년 넘은 우동집 "타이라"입니다. 면발이 어찌나 쫄깃하던지... 이전에 제가 먹었던 우동은 우동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