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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May 13. 2023

엄마는 엔딩요정

지독한 감기, 엔딩은 언제나 엄마 담당.

거의 석 달 동안 집에 아이들 약병이 떨어질 일이 없이 살고 있다. 겨울에서 봄 넘어가는 환절기면 시작된 감기와 알레르기 비염 으레 있는 일이지만, 올봄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고 독해도 너무 독하다. 첫 시작은 콧물감기와 알레르기 비염이었다. 콧물은 반려자처럼, 친구처럼 같이 사는 거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 생길 만큼 아이들의 콧물감기는 흔하고도 익숙하다. 어쩔 때는 병원에 가기도 애매하고, 병원 처방이 썩 잘 듣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시간이 지나 알아서 낫겠거니 하기에는 콧물이 중이염이 되고 축농증이 되어 큰 병이 되기 일쑤, 그래서 콧물이 나면 울며 겨자 먹기도 아니고 잘 낫지도 않는 약을 타러 병원엘 간다.


 올봄은 학기 초부터 유난했다. 아이들이 끝나는 오후진료 시간이 되면, 서너 시쯤부터 사람이 심하게 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네시쯤 당일 진료가 어플 예약으로 마감되기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을 찾은 아이들은 그냥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들은 그게 뭐냐고 어려워하시는 어플 사용법을 알려드리면서도 죄송했다. 네시쯤 마감되던 진료예약이, 세시로 앞당겨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아예 안전하게 오전에 진료를 받으려 오전 진료가 먼저 마감이 되기 시작했다. 그게 3,4월의 일이다.

이제는 오픈런 입니다.

나는 보통은 집 근처에 있는 가정의학과에서 아이들 진료를 자주 보는 편이다.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 약빨이 잘 받는 편이라 그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생제로도 열 감기, 목감기를 잘 이겨내는 편이고 콧물감기는 어느 병원에서 약을 받아도 잘 낫질 않으니 심한 기침이나 축농증처럼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할 것 같지 않으면 가까운 병원으로 간다. 소아과에 예약을 하고 다녀오려면 하루 종일 걸리는데 그러고 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진다. 가정의학과에는 그래도 혈압, 당뇨로 내원하시는 어르신들도 많은 편인데 소아과에 가면 다 감기 걸린 아이들 뿐이니 괜히 갔다가 감기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군데군데 소아과마다 예약 전쟁, 오픈런이 시작되었다 하고, 어떤 소아과 옆에 약국은 오후가 되니 약이 떨어져서 약처방을 해 줄 수가 없었다고도 하고, 2차 병원 이상의 큰 병원에서는 소아과 병동에 자리가 없어 독감, 아데노 바이러스등으로 40도 이상 고열이 나는 아이도 입원을 할 수 없다고도 한다. 코로나보다 더 지긋지긋한 감기 전쟁이다. 코로나는 일주일이면 나았는데 이건 뭐, 끝이 없다. 이 감기 나으면 저 감기 들어온다고, 약 끊고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콧물 기침이 시작되니 이렇게 약을 오래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2주 간격으로 콧물 기침을 동반한 고열감기를 앓았다. 동시에 아프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지만, 기침을 컹컹하는 것이 불안하여 소아과 진료를 보려 하니 대기가 장난이 아니다. 어플 예약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 현장 대기를 가는데 접수 전에 이미 몇 십 명이 줄 서있어 9시에 받은 대기표는 35번. 그나마도 현장에서 오전 진료 접수가 마감되어 어플 예약은 열지도 못 했다고 하니 부지런 떤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나. 사흘 결석을 하고 이틀 체력이 소진된 채로 앓고 나니 큰 아이가 다 나았다. 그리고는 내가 열이 나는 몸살을 이틀 앓았다. 코로나를 제외하고는 아이와 내가 동시에 앓은 적은 없다. 아이가 나은 것이 확인되면 몸에 긴장이 풀리는지 그때 내가 아파진다.


 그리고 2주 후 둘째가 똑같이 아팠다. 하필 어린이날 연휴에 열이 나기 시작하여 일단 집에 있는 해열제로 버티다가 연휴가 지나고 병원을 찾았는데 연휴 동안 아무도 옮은 사람이 없으니 독감이나 코로나는 아니고 그냥 열감기로 진단을 받고 역시 이틀을 결석하고 사흘동안 아기처럼, 상전처럼 어리광을 부리다가 이제 다 나았다. 그랬더니 이번엔 나에게 끔찍한 구내염이 찾아왔다. 피로가 쌓였나 보다. 네다섯 군데가 동시에 헐어버리는, 이번에는 혓바닥이 헐어서 발음하기가 힘들어 말도 못 하겠다. 말을 하고 발음을 하는데 혓바닥이 이렇게 많이 쓰였는지 이번에 알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 4계절이 원망스러워졌다. 중간중간 환절기까지 하면 4계절이 아니라 7 계절인데 그때마다 옷을 새로 사서 신경 써서 입히고, 그래도 감기 걸리고, 그냥 계절이 하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나 모른다.


나에게 구내염이 찾아온 것을 보니 둘째가 확실히 다 나은 모양이다. 엄마는 엔딩 요정처럼, 아이들이 앓을 때마다 끝으로 엄마가 앓고 끝낸다. 그룹에서 가장 핫한 멤버가 엔딩담당이라던데, 멤버별로 엔딩 포즈나 시그니쳐 엔딩도 있다던데  나는 어떤 엔딩으로 요정 짓을 한 번 해 볼까, 몸살? 구내염? 아이들이 나은 건 다행이지만 이 감기 지났으니 저 감기가 또 올까 걱정이다. 그럼 나는 또 어떤 엔딩을 준비해야 하나.


최일선에서 아이들 진료를 보시는 소아과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하며, 바쁘신 와중에도 동네마다 아이들 진료 잘 봐주시는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내과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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