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 낙산공원
반복적인 불쾌함과 피곤함이었다면 덜 지쳤을까. 매일 새로운 불쾌함과 피곤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음을 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포괄임금제인 덕에 끝없이 몰아치는 일로 날을 새기 일쑤지만 보상은 고사하고 보람도 느낄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9 to 6는 언감생심이었다. 9 to 8을 넘어서는 날의 반복은 소소한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포근한 햇살과 부쩍 건조해진 공기, 열기가 빠진 시원한 바람, 푸른 나무, 가림막 없이 탁 트인 하늘을 느끼며 걸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 밝은 낮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버스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좋아하는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그날의 기분을 옮겨 적는 것, 좋아하는 SIGMA 단렌즈를 장착해 그날의 시선을 기록하는 일상이 그리웠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와중에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이미 두 달 전에 예매해놓은 공연들이었다. 공연을 보고 돌아와 다음날 아침까지 일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더라도 공연은 마른 가지 같은 일상에 어렵사리 돋아난 잎사귀 같았다.
감당하기 힘든 일상으로 금요일 저녁마다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주말 아침에도 회사에서 챙겨 온 노트북을 켜서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다. 사진기를 들고나간 이날 하루 전 금요일도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그 와중에 하루 종일 얼굴을 뒤덮고 있던 색색의 화장품과 풀풀 풍기는 술냄새가 나는 몸까지 다 씻어내고 잠든 것을 보면 술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야속하게도 해는 떴고, 이미 대낮이었다. 이번 주만큼은 주말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 노트북의 전원은 켜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녁은 미리 예매해놓았던 공연을 보러 가야 했고, 집에서 공연 시간 전까지 쉬었다 나가면 잠이 들 것 같아 카메라를 챙겨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한 정거장을 일부러 걸어가 갈 곳을 생각해봤지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사직단 방향으로 걸어갔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땅으로 내리 꽂히는 강렬한 태양, 빈틈없이 차로 꽉 찬 차도를 피해 조용한 곳을 찾아 걸었다. 사직단을 지나 인왕산 둘레길을 걸었다.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무심코 지나갔던 단군성전도 처음으로 들어가 봤고, 국궁장도 처음 들어가 봤다. 벤치에 앉아 사람들의 걸음 보폭을 보며 활기찬 그들의 발걸음과 대조되는 축 늘어진 내 발걸음을 보니 괜스레 내 모습이 짠해 보인다.
그런 마음이 드니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어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낙산공원은 을지로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동창들이 많아 자주 가던 곳이었다. 항상 야경만 보던 곳이었는데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 왜 남산보다, 잠실 롯데타워보다 먼저 생각났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현재가 힘드니 과거에서 좋았던 시절이 생각나 발길을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의 물을 마셔보지 못한 햇병아리인 중고등학생이었을 때의 나는 쉬이 말할 수 없는 사연을 제외하고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고난도, 현실에 부딪히는 내 신념이 흔들려서 오는 황망함도,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예기치 못한 좌절의 시간도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창신역 출발 방향이 아닌 이화동에서 올라가는 낙산공원길은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에도 눈에 띄는 변화 없이 대부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다. 밝은 태양빛 아래로 보이는 오르막길과 계단을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햇병아리 시절이 떠오른다. 동묘앞역 뒷길로 올라가던 창신동 언덕에 있던 동네 꼬마들이 타던 트램펄린을 '방방이'로 부르지 않는다며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던 그때의 친구들, 집집마다 쌓인 섬유 원단들, 다 지어진 옷 묶음을 배달하던 오토바이들, 다리미 열기가 빠져나오던 송풍구들.
그 시절 들었던 음악, 그 당시 입었던 옷, 착용했던 액세서리와 상대방의 섬유에서 짙게 느껴진 향수와 바람을 타고 머리칼에서 느껴지는 샴푸 향 같은 특정한 향기, 그리고 특정 장소처럼 점처럼 띄엄띄엄 떨어진 기억들을 하나의 연결된 선으로 만드는 여러 매개체들이 있다. 이날은 '장소'가 그 매개체였다.
철없던 시절 어울렸던 친구들, 성인이 되고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이곳에서 있었던 점 같은 작은 추억들이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되어 타임라인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닿지 않는 인연도, 지금도 아주 가끔 연락하는 인연도 떠오르니, '풉'하며 잔잔히 입가에 웃음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어느새 가을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따사로운 볕 아래에서 두세 시간을 걷다 보니 더위에 지쳤다. 마침 눈에 보여 들어간 카페에서는 한 배우의 서포트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이름이라 궁금해 찾아보니 'HOPE'에 출연했던 배우라고 한다. 최근 들어 더욱 좋아하게 된, 그리고 저녁에 볼 작품의 주인공인 차지연 배우도 출연했던 작품이라 괜스레 반갑다. 주문이 많이 밀려있다고 해서 한참을 기다리다 그냥 나왔지만 그 공간만의 분위기가 좋아 사진을 정리하는 지금도 생각이 난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쏟는다는 건 그 '대상'으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하지만 그 '대상'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이벤트를 연 그들은 이 배우에게서 얻는 '무언가'는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람일 수도, 바라만 봐도 행복한 사람일 수도, 지친 삶에 유일한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이렇게 하나 또 배운다.
빈 손으로 카페를 나와 부지런히 오르막길을 다시 올랐다. 맑고 높은 하늘이었다. 이렇게 파란 하늘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싶어 다른 날보다 유난히 하늘을 많이 담았다. 회사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나도 모르게 툭 나온 말이 있었다. "파란 하늘에 주황색 해를 볼 수 있을 때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너무도 그리웠던 파란 하늘, 주황빛 해를 보며 입을 삐죽인다. 그간 어지간히 서러웠던 것 같다. 아직은 뜨거운 볕 아래, 오래 걸어 다닌 탓에 살짝 현기증이 났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까 싶어 성벽을 따라 더 높이 올라갔다.
성벽은 너무도 익숙한 구조물이다. 남산을 두른 성벽 근처에서 20년을 살았고, 지금은 인왕산 성벽 안에서 살고 있다. 성벽을 바라보면 차갑고 건조한 질감이지만 집 같은 편안함을 받는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달궈진 성벽은 마음의 온도까지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은 지친 순간 큰 위로가 되어 얼굴을 어루만져주고, 마음을 다독여주고, 지쳐 쓰러지는 육체를 안아 세워준다. 행선지 없이 떠났을 때 결국 마지막을 가는 곳은 익숙한 곳이었다. 광화문 한 박물관 뒤 늘 앉던 벤치가 그렇듯, 절로 발길을 하게 되는 궁정동 거리가 그렇듯, 생각이 많아질 때 아주 천천히 오래 걷는 잠실의 공원이 그렇듯 이곳도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한양도성길을 따라 한성대입구 방향으로 걸었다. 집 밖을 나서고 이때까지, 그리고 저녁 공연에서 들을 서편제의 '살다 보면'을 들으며 걸으니 그간 끝이 보이지 않던 불필요하게 바빴던 일상을 견디는 힘이 생겨난다. 먼 훗날까지도 마음속에 담길 그 가사.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과거의 추억을 양분 삼아 나를 쥐고 흔드는 방해 요소들 속에서 꿋꿋이 피어나 꺾이지 않는 한 송이의 꽃 같은 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