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정보는 없는 순수 여행기
최근에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루를 평탄하게 작동시키게끔 잘 짜여진 루틴, 그리고 이를 토대로 신경 쓸 일 없이 지나가는 무난한 하루는 나를 평안하게 만든다. 일정에 맞춰 반복되는 출퇴근, 아이의 등하원, 별다른 이벤트 없이 넘어감으로써 방지할 수 있는 과소비, 읽어야 할 책, 해야 할 운동, 소비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냉장고 속 재료들... 즉, '스케줄'과 '특이사항 없음' 이 두 가지가 내 심리적 안정의 두 축인 것이다. 독일의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에는 극도의 폐쇄성을 가진 주인공 조나단 노엘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소비나 외부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극도로 절약하며 자신만의 출퇴근 루틴만을 매일 반복한다. 그리고 퇴근 후에 작은 거처로 돌아와 책을 읽고 와인을 몇 모금 마시는 것만으로 충분한 행복을 누리며 평생을 살아간다. 이 노인은 돈과 시간을 들여 생경한 풍경과 불편한 숙소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은 평소 눈곱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마지못해 인정해야만 했다. 나의 자아의 일부분에는 분명히 이 주인공과 똑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작지만 단단한 반감 같은 것이 있다. 삐그덕거림 없이 착착 맞물리며 원활하게 작동하는 하루 속에서, 그 기계의 틈새 속 어둡고 아늑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단조롭게 반복되는 기계음을 들으며 혼자 흐뭇해하는 폐쇄성이 나에겐 있다.
따라서 아내가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선뜻 좋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손이 많이 가는, 자기주장과 고집이 날로만 늘어가는 첫째를 데리고서, 게다가 7월에 출산 예정인 둘째 또한 뱃속에 품고서 말이다. 혹시나 첫째가 크게 다치면 어떡하지? 아내가 갑자기 통증을 호소한다면?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싶고 차도 큰 걸로 바꾸고 싶은데 또 여행이랍시고 노는 것에 돈을 써야만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어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바로 이럴 때 일부러라도 여행을 가야만 한다는 사실, 여행에 일종의 '의무감' 내지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여행은 '일상을 일부러 스트레칭 시키는 것'과 같다. 몇 시간째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일어나서 몸을 풀라고 알려주는 스마트워치 기능처럼, 삶의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한 번씩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일깨울 필요가 있다. 또한, 가야 하나 싶은 여행을 막상 떠나게 되면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일은 생각만치 일어나지 않는 반면 꽤 즐거운 경험과 따스한 추억을 생각 외로 많이 그러모으기도 한다. 첫째가 다칠 수도 있고 아내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걱정했던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돈 쓰는 것이 부담인 것은 사실이지만, 수전노처럼 돈돈거리며 돈만 바라보는 인생은 비루하기 그지없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아내의 여행 제안을 받아들이며 비상금 계좌에서 돈을 꺼낸 뒤 생활비 통장으로 옮겨 담았다. 나와 달리 손이 빠르고 실행력이 출중한 아내는 이미 둘러볼 명소와 머물 숙소를 전부 찾아두고 있었다.
비행기와 공항은 그 존재 자체로서 설렘을 선사한다. 크고 작은 짐들을 부리며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 소리는 크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게 웅웅대는 (주로 사람을 찾거나 탑승구가 변경되었다는 내용의) 안내방송, 창 밖에서 일개미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지상조업 자동차들, 쉴 새 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 평소 탈것을 좋아하는 첫째는 연신 '우와! 우오! 슈우웅!' 소리를 연발하며 공항 창가에 들러붙어 비행기를 구경했다. 출근과 등원에서 벗어난, 청소기와 설거지에서 해방된 우리 부부는 첫째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서 이스타항공 탑승구로 향했다.
나와 가족을 포함하여, 공항에 있는 수많은 이용객들 모두 탑승구 근처에서 시간을 확인하며 비행기 탑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비행기 탑승 그 자체가 아닌 목적지로의 이동이다. 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기장과 승무원 말고는) 없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여행, 출장, 귀국, 이민 등등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서 이들은 비행기에 오른다.
오직 비행기의 비행을 경험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저 살기 위해 삶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사노라면 뭔가를 추구하게 되어 있다. 내가 손에 쥔 티켓에는 목적지가 어디라고 적혀 있는가?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삶의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나는 가족의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이 나의 노선이었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보며 즐거워하는 아들, 그리고 제주도에 도착하여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며 지금 나는 나의 노선 위에 있음을, 내 목적지가 틀리지 않음을, 그리고 이번 여행을 오기로 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식을 주지 않는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고, 카페에 들러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에 기저귀에 똥을 싸고, 1초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푸드덕거리는 83cm 남자아이를 품에 안고 여행을 하는 것은 휴양이 일체 배제된 육체노동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제주도 여행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것은 없고, 다만 평소 하던 육아를 유채꽃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
제주도까지 가서 뽀로로 테마파크를 가는 것은 사실 이상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탁월한 여행코스 중 하나로 판명 났다. 아이가 있으면 내로라하는 관광명소, 모두가 추천하는 맛집은 뒤로 한 채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곳, 아이 동반 식사가 편한 식당이 최우선 고려대상이 된다. 두 돌이 된 아들 입장에서는 성산일출봉이나 주상절리대보다는 뽀로로 댄스공연이 더욱 보고 싶을 터다.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 찍은 아이의 사진을 보면 타요 기차와 상어 후룸라이드를 탔을 때, 그리고 뽀로로 인형탈을 쓴 직원들의 댄스공연을 보며 박수를 칠 때 가장 신나고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부모가 됨으로써 삶의 시선과 초점은 변화하는데, 그것은 여행사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여행지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보다는, 풍경을 감상하는 아이를 감상하는 것이 여행의 주된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으면 카메라의 초점은 풍경이 아니라 아이에게 자연스레 맞춰지고, 그렇게 여행 사진들의 대부분은 풍경사진이 아닌 인물사진이 된다.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인생의 포커싱은 아이에게 또렷하게 맞춰진다. 여행의 셋째 날,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백약이오름의 넓은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제주도 여행을 와서 내가 바라보는 것은 오름의 푸르른 전경이 아닌, 그 앞에서 뛰어다니는 나의 아이라는 것을. 내가 앞으로 찍을 모든 사진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내 아이가 자리 잡고 있으리라는 것을.
비행기가 비행을 마치고 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면서 기체가 노면을 밟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충격이 발생한다. 그 충격을 어떻게든 최소화하는 것이야말로 아마 노련한 비행 기술일 것이다. 이처럼,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에도 일종의 요령이 필요하다. 즐거웠던 여행을 끝내고 다시 평범한 일상(솔직히 말하면 지겹고 뻔한 일상)으로 복귀할 때 발생하는 일종의 정신적인 충격을 우리는 감당해야 한다.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일상으로의 연착륙은 집에 돌아와서 시켜 먹는 배달음식으로 이루어낸다. 짐을 정리하고 여독을 풀어야 하는데 밥을 직접 해 먹을 시간도 체력도 없으니 말이다. 밥을 짓고 식탁을 차린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로 곧장 하강하기보다는 아직은 여행자로서의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간편하게 배달음식을 먹으며 서서히 일상으로 내려앉는다. 롯데리아에서 시킨 데리버거와 감자튀김을 으적거리며 나는 생각했다. '이제 다시 원 궤도에 오를 시간이다.'
두 번째 방법은 마음의 안전벨트를 착용해 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사고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기쁨과 행복의 일부를 유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행복할 때에는 일부러 그 행복의 70%만 느끼고 30%는 유보한다.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일부러 상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고하면 행복이 끝났을 때의 상실감이 덜하다. 그렇게 감정의 등락폭을 인위적으로 줄여 기분의 변동성을 감소시킨다.
이러한 사고 모형은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있어서도 잘 작동한다. 여행 첫날, 나는 일부러 여행의 마지막날을 생각했다. 여행을 시작함에 있어 설렘을 느꼈지만, 곧바로 3일 뒤에는 결국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지엄한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출근을 앞두고 있는 오늘은 행복했던 여행 첫날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이렇게 첫날의 설렘을 맨 뒤로 보내고, 마지막날의 상실감을 맨 앞으로 보내며 감정을 시간선과 반대로 엇갈리게 X자 모양으로 짜 넣는다. 이렇게 X자 모양으로 짜여진 마음의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여행의 마지막날에 맞이해야 하는 착륙 충격에서 정신을 보호해 낼 수 있다.
일상으로 무사히 착륙하였으니, 이제 비행기에서 내릴 시간이다. 놓고 내리는 짐이 없는지 잘 확인하고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비행기에서 내린다.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한껏 웅크리고 있을 때, 아내가 다가와 얘기해 줄 것이다. 이제 한 번쯤 떠날 때가 되었다고. 바로 그때가 우리 가족이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