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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Sep 03. 2021

형부의 파랑새...

둘째 딸의 결혼

삼락동 이층집에서 적응해 갈 때 즈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골목에서 소란이 일어나 나가보니 웬 파마를 한, 머리 큰 총각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파마는 충격적 이게도 자연 곱슬머리이었다) “oo아! oo아! 보고 싶다! 네가 안 나오면 나는 안 갈란다!” 하며 넓은 골목길 한복판에서 소리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남자는 맨정신인지 술에 취했는지 우리 집을 바라보면서 무릎을 꿇고 우리 둘째 언니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둘째 언니는 그 곱슬머리 총각을 방직 공장에서 만났다. 큰언니는 아버지의 성격과 서구적인 외모를 닮아 ‘캐서린 제타존스’와 비슷하다면 둘째 언니는 엄마의 성격과 외모를 닮아 아담한 체구의 ‘선우은숙’을 떠올렸다. 따라다니는 남자도 많았고 회사 동료들도 그 총각은 안된다고 말렸건만 둘째 언니는 스무 살에 일곱 살이나 연상인 곱슬머리 총각과 사랑에 빠졌다.       


둘째 언니는 마침내 곱슬머리 총각과 결혼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직도 가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자식을 결혼시킨다는 것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둘째 언니는 시집갈 때 아무것도 엄마한테 바랄 수 없었지만, 시누이들의 구박에 언니는 엄마한테 시아버지 이불을 해 주면 언니가 나중에 돈을 주겠다는 제안 했다. 그에 엄마는 이불을 사서 보내고 나중에 언니가 엄마한테 돈을 주자 그 돈을 받았다. 둘째 언니는 엄마가 진짜로 그 돈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 당시 언니는 엄마가 해도 해도 너무하다며 서운해했다. 하지만 언니는 며칠 전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엄마가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그 돈을 받았을까?” 하며 울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엄마는 신발공장에서 1년 만근을 하고 회사에서 18K 반 돈 반지를 받게 되었다. 엄마는 그 반지를 둘째 언니한테 주었고 언니는 그 반지를 늘 끼고 다녔다. 어느 날 새벽 둘째 형부가 술에 취해 택시비도 없이 장거리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러나 언니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택시 기사는 그 새벽에 동네가 떠나가라 욕을 하기 시작했고 둘째 언니는 남부끄러워 엄마가 준 금반지를 택시 기사에서 얼른 빼주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그 반지를 찾기 위해 택시 회사를 찾았지만, 그 기사는 회사를 그만둔 뒤였다.      


퉁퉁한 체격에 호남형의 둘째 형부는 우리 형제들에겐 다정했다. 주말이면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서 또 귀여운 조카 미라를 보기 위해서 약속이라도 한 듯 둘째 언니네로 바글바글 모였던 우리 형제들에게 둘째 형부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특히 셋째 언니에게 각별했던 형부는 한창 멋 부릴 나이였던 처제를 시내로 데리고 가서 우리 형편으로는 살 엄두도 못 내던 나이키 운동화를 사주었다. 새 운동화를 너무도 아꼈던 깔끔이 셋째 언니는 며칠 뒤 깨끗이 빨아서 옥상에 널어두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 가보니 운동화는 누가 홀라당 집어가 버리고 없었다. 셋째 언니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째 형부는 세상 모든 이에게 친절했지만 딱 한 사람, 자신의 아내에게만은 매정하고 이기적이었다. 부부간의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언니가 첫 아이를 가져서부터였다. 어느 날 밤, 째 언니는 여자 문제로 형부와 심하게 다투고 친정으로 울며 왔다. 그러나 엄마는 그 야심한 밤에 아이들을 두고 왔다는 이유로 언니를 혼내고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되돌려 보냈다. 엄마의 종교는 자식이었고 엄마에겐 그 자식을 버리는 어미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후로는 둘째 언니네가 여자 문제로 싸우면 아예 엄마가 오빠들을 앞세워 언니 집으로 갔다.  

    

둘째 언니를 너무도 사랑해서 부끄러움도 잊은 채 무릎이 닳도록 언니 이름을 부르던 둘째 형부는 결혼 생활 내내 조강지처라는 파랑새를 두고 파랑새는 세상의 다른 여자에게 있을 줄 알고 찾아 헤매다 남매와 언니를 두고 50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심리학에서 ‘귀향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남녀가 서로를 낯설게 여기지 않으면, 즉 상대에게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면 편안해지고 끌리는 것이 사랑의 일반적 법칙이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형적인 모습에만 끌리지 않고 그 사람의 능력, 외모, 성격, 학벌, 집안 배경, 종교 등 여러 가지를 판단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 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가족의 두 얼굴, 최광현, p.78)     


언니들은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 유년 시절을 지나 자신을 탐색할 사춘기 반항의 시간도 없이 너무도 이른 나이에 돈을 벌어야 했고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는 지옥 같은 집을 탈출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언니들을 기다린 것은 언니들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재현해 줄 아버지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 엄마처럼 고통스럽게 짊어져야 할 결혼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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