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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Sep 19. 2021

지키지 못한 약속

 부모님은 진짜 징글징글하게 싸웠다. 반송으로 쫓겨오다시피 한 그 와중에서도 둘은 으르렁대며 싸웠다. 온종일 일하고 퇴근길 두 시간 동안 버스에 시달리다 터덜터덜 집으로 다가가면 골목 입구에서부터 엄마 아버지의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왔던 길로 돌아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진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들어가면 두려움에 떨며 구석에 앉아 있는 채린이와 승환이를 발견한다. 조카들의 눈빛을 보며 어린 시절이 생각나 순간 내 머리는 돌아버렸다. 야심한 밤에 엄마의 만류에도 경산에 있는 큰오빠에게 전화했다.     

“오빠, 엄마 아버지가 맨날 싸워. 지금 퇴근하고 왔더니 승환이 채린이가 싸우는 소리에 벌벌 떨고 있어.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애들 교육상 좋을 게 없으니까 내일 당장 데리고 가.”

“알았어.”

오빠는 다른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아마 내가 어떤 기분에 사로잡혀 전화했는지 누구보다 큰오빠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아버지도 꼴도 보기 싫었다.     


다음날 큰오빠와 올케언니는 반송까지 달려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경산으로 가버렸다. 고된 양계장 생활 속에서 큰오빠 부부는 아이들이 끔찍이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오빠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불행이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재생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몸서리를 쳤으리라. 나는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끝없는 싸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신들의 부모에게로 되돌려놓음으로써 고모 노릇을 잘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엄마는 몹시 낙담했다. 그건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엄마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뒤 엄마가 울면서 경산 올케언니에게 전화했다.

“애들이 보고 싶어서 살 수가 없다.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승환이만이라도 내가 키우면 안 되겠냐. 에미야.”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채린이 승환이는 엄마 삶을 따뜻하게 덥혀 주는 난로 같은 존재였다. 그런 손녀 손자가 사라진 엄마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데워지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내가 딸 노릇은 잘 못 했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엄마와 나는 경산에 가서 승환이를 데리고 왔다. 큰오빠 부부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면서 어린 두 남매를 키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엄마는 승환이의 귀환으로 다시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엄마 아버지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승환이 돌이 2주 정도 남았을 때였다. 엄마 아버지는 정수기 하나 놓는 것 갖고도 마음이 안 맞았다. 반송 집 부엌 창가 쪽에 냉장고 자리가 마루보다 높게 되어 있어 엄마는 승환이가 기어다는데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냉장고 옆에 정수기를 올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게 눈에 거슬려 정수기를 내려놓았다. 불행은 잔인하게 찾아들었다. 엄마가 잠깐 밖에 나가고 아버지와 승환이가 집을 지킬 때였다. 승환이가 엉금엉금 기어서 집안을 탐색하다 아버지가 내려놓은 정수기를 잡고 일어선 다음 승환이의 왼손은 온수 꼭지를 눌러버렸다. 그 뜨거운 물이 연약한 손등, 팔과 어깨에 흘렀고 승환이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승환이에게 달려들어 그만 윗옷을 벗겨버렸다. 옷과 함께 살갗이 벗겨진 상태에서 엄마는 승환이 화상 상처에 소주에 부어버리자 고통에 아기는 거의 실신을 하기에 이른다. 그때 아버지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둘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승환이 화상 소식을 전했다. 언니는 일하다 말고 헐레벌떡 승환이에게 달려왔다. 언니가 본 광경은 무참했다. 언니가 오기 전에 엄마는 아버지한테 정수기를 왜 내려놨냐고 소리치자 이 모든 난리를 아버지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아버지는 엄마에게 욕을 퍼붓다 마침 눈앞에 보인 음식 쓰레기를 마루에 던져버렸다. 집안은 승환이와 엄마의 울음소리와 음식 쓰레기가 뒤엉켜 아비규환이었다.      


둘째 언니는 119에 전화를 걸어서 엄마와 함께 승환이를 데리고 구급차를 타고 동래에 있는 대동병원으로 갔다. 대동병원에는 소아 화상을 치료하는 전문의가 있었다. 승환이 상태를 본 의사는 엄마에게 큰소리로 꾸짖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가 있어요. 아기 옷을 벗기면 어떡합니까. 옷을 벗긴 것도 모자라 왜 소주를 부어요. 어떻게 이렇게 몰라요!”

의사의 신랄한 질책도 당연했다. 엄마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말 못 하는 그 어린것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엄마는 얼마나 많이 자신의 무지를 탓했을까. 또 얼마나 많이 경산에서 승환이를 데려오지 말 걸 하고 후회했을까. 또 얼마나 많이 당신이 승환이 대신 화상을 입게 해달라고 빌었을까.      


경산 큰오빠네에는 충격을 받을 수 있으니까 당장은 알리지 말자고 엄마는 말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올케언니에게 너무도 미안해서 또 승환이와 헤어질까 두려워 말 못 한 것 같다. 큰오빠네에는 승환이의 첫돌 이틀 전에 알렸다. 올케언니는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부모를 원망할 수도 없고 이렇게 가족이 헤어지게 만든 큰오빠를 원망하려니 경산에서의 비참한 생활로 큰오빠는 충분히 벌을 받는 듯했다. 자신이 곁에 있지 못해 어린것이 고통을 당한다 생각하니 올케언니는 피눈물이 났다.      


글도 모르고, 반송이란 곳이 낯선 엄마에게 승환이 화상 치료를 맡길 수 없어서 둘째 언니는 그다음 날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와 승환이를 데리고 대동병원에 다녔다.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느 날부턴가 승환이는 병원으로 향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버스만 타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러면 엄마와 둘째 언니는 버스에서 내려 아이와 같이 울었다. 이윽고 승환이의 울음이 잦아들면 또다시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눈물 바람을 몰고 다녔던 화상 치료는 석 달이 넘게 이어졌다.      


승환이 돌사진을 언제 찍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올케언니만 화상 치료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난 뒤 둘째 언니와 엄마가 찍었을 거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승환이의 돌 사진에는 승환이가 울면 같이 병원에서 주저앉아 울던 엄마의 눈물은 없고 귀여운 승환이만 있어 다행이다.     


승환이의 첫 돌 사진


승환이가 자라면서 왼손의 상처를 제외하고 팔이나 어깨의 상처는 거의 사라졌다. 왼손 화상 자국은 나무뿌리가 제멋대로 뒤엉킨 모양으로 꼬들꼬들해졌다. 그러나 엄마의 눈엔 상처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엄마는 틈만 나면 승환이 왼손등을 매만지며 “할머니가 승환이 크면 성형 수술해줄 거야.” 하고 말하곤 했다. 그 행동은 신성한 의식 같았다. 그것은 승환이에게 빚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의식이기도 했고, 당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기억하게 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승환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당신의 운명을 예감하셨는지 엄마는 돌아가시기 몇 달 전 올케언니에게 당신의 패물을 주며 승환이 왼손 수술을 부탁했다. 언니는 지금도 그 패물들을 갖고 있다.     




승환이는 올해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승환이는 어릴 적엔 신경이 온통 그 화상 자국에만 쓰였고, 사람들도 왼손만 보는 것 같아 화상 자국이 끔찍이도 싫어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형 수술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이젠 희미한 화상 자국처럼 할머니의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어제 찍은 승환이의 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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