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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Oct 19. 2021

하느님, 그분의 품 안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창세기 26, 24-          



엄마를 찾아 백 권의 책을 읽고 난 후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 책들이 다음 해 한국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교육학, 교육 심리는 물론이고 철학, 성인 교육학 등을 공부했고 많은 스승, 독서 그리고 첩첩이 밀려오던 과제물들을 통해서 내 인생을 귀납적으로 보는 행운을 얻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땅에 헤딩하며 살다 어느 날 엄마라는 우주가 사라진 후 만난 학문의 바다에서 나는 행복하게 헤엄치며 나 자신과 내 삶을 정의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논문 주제를 정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는 그곳으로 이끌어준 엄마의 죽음을 거울삼아 ‘중년의 죽음 준비 교육의 필요성’이란 주제로 논문을 제출하고 졸업했다.     


백 권의 책 읽기 과장에서 중후반으로 갈수록 불교 신자였던 내게 기독교에 관한 책이나 내 지식수준이나 관심사를 볼 때 절대 고를 리 만무한 이상한 책들이 내 손에 쥐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밀쳐내지 않고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느꼈다. 그중에서 가장 특이한 책은 로나 번의 ‘수호천사(Angels in my hair, 이레 2011)’라는 책이었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책으로 아일랜드에 사는 가톨릭 신자인 로나 번은 지적장애와 난독증이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호천사들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가 중년이 되자 그녀의 수호천사는 로나의 능력과 천사들의 존재에 관하여 책을 쓸 것을 권유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 책이 바로 ‘수호천사’다. 내가 느낀 감동을 나누고자 절판된 ‘수호천사’를 중고매장에서 몇십 권을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그 책을 읽은 친구들의 반응은 ‘이상하다’ ‘무당 같다’ ‘이런 걸 믿냐’는 등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음이 갔다. 그 책으로 내 삶을 이해하는 설명서가 내 손에 쥐어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죽음을 모면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한꺼번에 해석이 되면서 위험한 순간마다 혼자가 아닌 수호천사와 함께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엄마가 돌아가실 때도 수호천사가 함께였다고 생각을 하니 한없이 감사했다. 나는 그 뒤로 매 순간 수호천사와 대화하고 기도하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에겐 말할 수 없었다.     


딸아이가 7살이 되자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딸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도, 내가 새로 갖게 된 모임에 나가도 가톨릭 신자가 많았고, 처음 놀러 간 집 벽엔 큰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그전에도 만나는 사람 중에 가톨릭 신자가 있었을 텐데 유난히 그해에는 자신의 종교가 가톨릭이라고 밝히는 이들이 많았다.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같이 학습지 교사를 하다 결혼 후 미국으로 가신 동료 선생님을 몇 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여름 장맛비를 뚫고 만난 선생님의 첫마디는 황당했다.

“윤희 선생님 이제 성당 나가야겠다.”

“성당요?”

5년 만에 만나자마자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신기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아, 성당에 가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뭔가에 홀린 듯 선생님의 말씀에 그 어떤 거부반응이나 의문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뒤 선생님과 만남은 곧 잊혔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딸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2월 어느 날 세 식구가 함께 근처 도서관에 갔다. 거기서 ‘엄마표 영어’에 관한 책들을 훑어보다 그중에 한 권을 읽어나갔다. 저자는 엄마표 영어의 성공 비결을 열 가지를 소개했는데 마지막에는 가톨릭이라는 종교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교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단락을 읽고 이렇게 속으로 외쳤다. ‘제가 무릎 꿇겠습니다.’ 그런 다음 도서관 밖으로 나가 집 근처 성당에 전화해서 성당을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6개월을 기다려 6월부터 12월까지 새 신자 교육을 받고 나는 하느님의 자녀 ‘루치아’가 되었다.

    

엄마는 나를 다시 학생이 되게 해서 공부하게 하고 하느님이라는 든든한 백을 만나게 했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을 찾아가기 위해 돌을 놓아둔 것처럼 하느님도 내가 하느님에게 이르는 길에 많은 사람과 수호천사를 보내시어 내 눈높이에 맞게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신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도 나도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었고 그 사랑 안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두 유산보다 더 큰 유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몇 년 후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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