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안중근’과 ‘대한국인 안중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인간 안중근’과 ‘대한국인 안중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하얼빈>(우민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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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거나 재현한 영화(이하 ‘역사 영화’)들 중, ‘천만 영화'가 된 작품들을 살펴 보면, 대체로 ‘의와 불의의 싸움(영화 <한산>)’이란 구도가 두드러진다. 여기서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가·민주화운동가 및 정의로운 시민 등이 ‘의’로 묘사된다면, 일본(도요토미 정권, 일제), 독재권력(신군부 및 전두환 정부), 기득권 세력(서인, 영화 <광해>의 경우) 등은 ‘불의’로 묘사된다. 그 중에서도 일본, 독재권력과의 싸움은 가장 인기 있는 주제인데, 역대 역사 영화 중 1위를 차지한 <명량>의 경우, 후속작인 <한산>, <노량>의 관객수까지 합산하면 3000만 명에 육박한 인기 시리즈였다. 물론, 이 시리즈의 흥행은 단순히 이순신이나 임진왜란이라는 특정 인물 및 특정 사건에 대한 높은 관심만은 아닐 것이다.
또다른 ‘천만 영화’인 <암살>을 비롯해, 역대 국내 역사 영화 중 적지 않은 흥행작들, <미스터 션샤인> 등의 인기 드라마들은 ‘항일’의 서사 및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리고 ‘항일’을 다룬 역사 영화 내지 드라마, 즉 ‘항일물’에 대한 높은 관심은 역사 갈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는 과거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를 사죄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역사부정에 나선 일본 정부와 우경화한 일본 사회, 이에 동조하며 점차 세를 확장하려는 국내의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미완의 친일 청산이 여전히 현실의 과제로 남아 있고,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항일물’은 침략과 식민 지배, 역사부정, 친일을 ‘드러내기’, ‘기억하기’, ‘단죄하기’ 등의 방식으로 재현하거나 창작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역사인식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동원하기까지도 한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의거 또한 ‘항일물’로 여러 번 제작되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에서 하얼빈 의거의 실패는 한국이 2009년까지도 일본의 식민지라는 설정의 시작이며, 이를 바로잡고 하얼빈 의거를 성공시키는 것이 독립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영화는 물론 전형적인 역사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안중근에 대한 높은 관심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에도 매국의 상징은 이완용, 애국의 상징은 안중근으로 제시되고, 어느 인기 연예인이 그의 얼굴을 몰랐다는 이유로 몰매를 맞은 사건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났던 점은, 안중근과 하얼빈 의거는 각각 한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적 인물 및 사건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의 유해의 발굴과 귀환 그 발굴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치 성유물을 찾는 데에 비유할 만큼 중대한 민족적 숙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밖에도 광주에 세워졌다가 분실되는 우여곡절 끝에 되찾는 과정에서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 ‘안중근 의사 숭모비’는 물론, ‘해방 후 안중근 의사를 모신 최초의 사당’을 자처하며, 사당이라는 전근대적 공간이 근대적 인물을 기리는 ‘최초’의 공간이 된 전남 장흥 해동사의 사례는, 안중근과의 연고가 극히 희박한 곳에서는 기념시설을 조성하여 연고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 역사 속 다른 위인들에 대한 숭배 열기에 못지 않다.
한편,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도마 안중근>(2004)이 하얼빈 의거를 다루었고.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것으로는 뮤지컬 <영웅>(2009)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의 영화(<영웅>(2022))이 대표적이며, 특히 안중근이 뤼순에서 전개한 법정투쟁 때 부른 <누가 죄인인가>는 뮤지컬 및 영화를 직접 감상하지 않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영웅>이 하얼빈 의거의 계획부터 안중근의 죽음까지를 전반적으로 다뤘다면, 지난해 12월 말 개봉한 <하얼빈>(2024)은 하얼빈 의거를 실행하기까지 동기, 계획, 준비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얼빈>은 <영웅>보다는 더 많은 관람객을 동원했지만 자타공인 흥행작으로 여겨지는 ‘천만 영화’도, 손익분기점 돌파에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안중근과 하얼빈 의거, 나아가 ‘항일물’이 대중매체에서 지속적으로 재현되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하얼빈>이 기존의 ‘항일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몇몇 시도와 더불어,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은 무엇인가를 살펴 보는 것 또한, 현장의 역사교육에서 영화가 역사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 나름의 의의를 지니리라 생각한다
<하얼빈>은 1909년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하얼빈 역에서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안중근(배우: 현빈)은 한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일본군에 맞서 의병 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군 포로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지만, 풀려난 포로들 때문에 안중근의 여러 동료들이 살해당하고 만다. 이후 방황하며 괴로워하던 안중근은 죽은 동료들을 대신해 이토 히로부미(배우: 릴리 프랭키)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계획을 알아챈 일본군이 안중근을 추격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밀정의 그림자가 떠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은 살아남은 동료들과 함께 하얼빈으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영웅 안중근보다, 인간 안중근을
이토가 한국 병합에 소극적거나 반대했으며, 그가 안중근에 의해 저격당함으로써 한국 병합이 앞당겨졌다는 식의 ‘오해’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한, 하얼빈 의거가 다시 영화화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앞으로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몇 번이고 영화화된 하얼빈 의거를 다시 영화화한다는 건 익숙한 영웅 신화를 반복해서 듣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일제의 침략을 뤼순의 법정에서 당당하게 성토하는 <영웅>의 안중근이 이미 그 박진감 넘치는 묘사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지 않았던가. <하얼빈>은 <영웅>에서 묘사된 법정 투쟁에 도전하기보다는, 이를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영웅>과의 비교를 피하는 한편, 하얼빈 의거의 과정에 좀 더 집중했다고 여겨진다.
<하얼빈>에서 의거의 전 과정은 마치 영화 내내 묘사되는 겨울의 동토(凍土)처럼 어둡고, 그 속의 안중근은 그 어두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 전반에 걸친 이와 같은 분위기 묘사는 안중근을 영웅이라기보다는 괴로워하는 인간으로 재현한다. 이는 안중근이 신아산 전투 후 포로로 잡았다가 풀어 준 일본군들이 도리어 안중근의 의병부대를 기습하여 잔인하게 몰살한 데서 비롯된다. 물론 『안응칠 역사』를 비롯한 기록만으로는 안중근이 포로를 풀어 준사실과 뒤이어 일본군에게 역습을 당했다는 사실 사이에서 인과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얼빈>은 여기에 인과관계를 부여했다. 이후 안중근은 실제보다는 지나치게 과장된, 그러나 그의 거대한 절망과 괴로움을 상징하는 듯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헤메던 끝에 동료들에게 돌아갔지만, 냉소와 분노를 받는다. 안중근이 포로를 풀어 줬다가 동료들을 죽게 만들였던 이 사건은, 작품 내내 안중근을 동료로부터 의심받게 만들고 일본군으로부터는 쫓기게 만든다.
하얼빈 의거를 재현한 영화라면 당연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순간이 클라이막스에 해당할 것이지만, 정작 이 장면은 멀찍이서 부감으로 담담하게 묘사된다. 거사에 성공한 안중근은 러시아어로 ‘대한국 만세’를 외치지만, 독립, 즉 해방을 외치는 그 목소리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이는 아마도 다음 장면이 곧장, 안중근이 두려운 듯이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교수대의 계단을 한 발짝씩 올라가는 모습으로 이어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안중근은 물론, 그의 동료들조차도 일본군에 쫓기다 잡히고, 고문당해 불구가 되고, 가족을 잃거나 폐인이 되며, 완전히 독립의 희망을 잃고(김상현(배우: 조우진)은 "아무도 우릴 기억하지 못할 거야"라고 울먹인다) 변절하기까지 한다. 물론, 오늘날에야 독립운동은 ‘기억’이고, 그 ‘기억’이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당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을 전개했을 이들이 닥친 엄연한 ‘현실’로서가 아닌 후대의 ‘기억’으로서의 독립운동에 얼마나 의의를 부여했을지는 다소 의아한 점은 있다. 이는 ‘기억’에 대한 집착이자, 지나치게 현재적 관점을 투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단, <암살>의 주인공들이 이와 같은 ‘기억’에 과도할 만큼 집착하는 데 비해, <하얼빈>에서는 ‘기억’에 대한 집착을 보여 주는 이 장면은 주요 장면으로부터 다소 멀리 비켜나 있어, 좀 더 ‘현실’로서의 독립운동에 집중하도록 해 준다. 그들에게 ‘현실’이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자신들의 거사를 일본을 상대로 한 대한국의 신성한 독립전쟁으로 여겼을까, 아니면 지독히도 외로운 싸움으로 여겼을까?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것을 기대했다면, <하얼빈>의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며 그 속에서 죽어간다. <하얼빈>에는 방황하며 괴로워하는 안중근이 있다.
물론, 하나의 인간으로서 괴로워하는 영웅의 이미지는 한국 역사영화에서 이미 시도되고는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명량>이 있지만, 여기서도 ‘인간으로서 괴로워하는 영웅’이란 압도적인 적을 상대해야 하거나, 끊임없이 시기하고 의심하는 국왕이나 조정 대신들, 동료들, 비겁한 배신자들 때문이지, 자기 잘못으로 핍박받는 것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선택 때문에 수많은 동료들을 죽게 만들었고, 이를 속죄하고자 이토를 저격하기로 맹세했다. 안중근의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에는 신아산 전투 이전에 이미 이토를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었음이 언급되고 있으며, 신아산 전투에서 포로를 풀어 준 뒤 일본군의 반격을 받은 것과, 이토 저격 계획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드러나지 않음을 고려하면, <하얼빈>이 이토를 저격하겠다는 것을 마치 속죄인 듯 묘사하는 것은 허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응칠 역사』에서는 분명 신아산 전투 후 역습을 받은 사실과 그에 대한 절망이 중요하게 서술되어 있고. 해당 서술 직후 이토 저격 계획이 이어지는 만큼, 신아산 전투의 일본군 포로 석방과 일본군의 역습, 그리고 이토 저격 계획이라는 세 개의 사건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었을 수도 있고, 이를 죄책감과 속죄의 맥락에서 해석하겠다는 것 또한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하얼빈>은 이와 같이 안중근을 ‘민족적 쾌거’의 영웅이라기보단 과거 동료들을 죽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이를 속죄하려 한, 더 이상 신격화된 영웅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려내고자 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역시 가상인물인 공부인(배우: 전여빈)의 존재를 의식할 경우, <하얼빈>이 애써 그려낸 독립운동가들의 인간다운 모습은 다소 무색해지고 만다. 공부인은 남편을 잃은 독립운동가로서, 의거를 위한 물자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달하는 한편, 원래는 독립운동가였으나 이제는 폐인이 된 마적단 두목 박점출(배우: 정우성)에게 호통을 쳐 꾸짖고, 거사 직전 안중근을 발견하고 추격하려는 모리를 혼자 힘으로 저지하는 등, <하얼빈>의 고비마다 공부인이 있었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가상인물인 공부인에게 이처럼 ‘완전한’ 인격체를 부여한 것이 (역사)영화에 어떻게든 여성 서사가 포함되어야만 압박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안중근을 비롯한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었을 때에 더욱 호소력 있지 않았을까?
안중근이 포로를 풀어 준 것은 실수였을까, 아니면 신념이었을까?
안중근이 만국공법에 의거해 풀어준 일본군은 이후 안중근과 동료들을 끊임없이 추격하며 두고두고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는 동료들로 하여금 안중근에게 밀정이 따라붙었다는 의심이 깊어지도록 한다. 결국 동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안중근마저도, 밀정을 색출하는 데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도중에는 우덕순(배우: 박정민)이 밀정으로 의심받는 듯한 연출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현실에서 2019년 한·일 무역 분쟁과 함께 반일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KBS에서 우덕순을 밀정으로 단정하였던 것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하얼빈 의거 직전, 안중근과 동료들은 마침내 밀정의 존재를 파악했다. 밀정은 안중근과 함께했던 인물로, <하얼빈>에서 가공으로 만들어 낸 인물인 김상현으로 밝혀진다. 이 때 동료들은 김상현을 처단하려 했지만, 안중근만은 밀정 김상현에게도 기회를 주자면서 동료들을 설득한다. 마치 안중근이 신아산 전투 후 만국공법에 의거해 일본군 포로들을 풀어주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안중근이 만국공법에 의해 일본군 포로를 석방하기로 선택한 것, 이후 비슷하게 밀정을 살려주기로 한 선택은 잘못이었을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를 가톨릭교도인 안중근의 신앙심, 혹은 순진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단, 『안응칠 역사』에서는 만국공법에 의해 일본군 포로를 풀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뤼순에서도 만국공법과 국제공법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주장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포로 석방 역시 만국공법과 국제공법상의 정의에 호소하고자 한, 신념에 따른 행위였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안중근이 처형된 후, 김상현은 자신의 목줄을 죄고 있었던 모리로부터 새로운 지령을 받는다. 그것은 백범 김구를 감시하라는 지령이었다. 이 때 김상현은 지령을 받아들이는 대신, 갖고 있던 흉기로 모리를 살해하고 자리를 떠난다. 밀정이었던 김상현이 결국에는 밀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이는 밀정 김상현이 자신을 옭아매는 목줄을 스스로 풀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안중근이 밀정 김상현에 기회를 주어 살려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얼빈>이 가공의 인물인 밀정 김상현을 만들어서까지 이야기를 전개한 까닭은 무엇일까? 안중근이 한 번은 일본군 포로를, 또 한 번은 밀정 김상현을 살려 줌으로써, 안중근의 판단이 결코 실수라거나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그의 진지한 신념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은 마침내는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하얼빈>은 주장하려는 듯하다.
독립전쟁이라는 신성함보다, 전쟁이라는 처참함을
<하얼빈>은 신아산 전투로 시작된다. 신아산 전투는 안중근은 의병들을 이끌며 함경북도 경흥 일대에서 일본군을 기습했고, 처절한 사투 끝에 승리를 거둔 사건이다. 사건 자체는 <안응칠 역사>에서는 짧게 언급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신아산 전투가 의병들과 일본군이 진창 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여 서로 죽이는 모습으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진다. 이미 전투가 끝난 뒤에도 마치 미쳐버린 듯이 칼을 휘두르는 어느 의병의 모습은, 독립전쟁이 침략과 식민 지배라는 민족의 트라우마의 맥락에서뿐만이 아니라, 역시 하나의 전쟁으로서, 살육에서 비롯되는 한 인간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또한 그들과 고통 속에 죽어가며 신음하거나 절규하는 일본군 등의 모습이 지나진다. 기존의 ‘항일물’에서 일본군의 죽음은 주로 ‘불의’를 응징하는 모습으로, 혹은 ‘악’을 쓸어버리는 모습으로 연출되어 왔던 데 비해, <하얼빈>의 이들 장면에서는 의병들과 일본군의 모습은 전장에서 죽어가는 하나의 동등하고도 평범한 인간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전투 후에는 의병들이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화풀이로 처형하는 모습까지 나오기도 한다.
이는 비교적 최근의 ‘항일물’인 <봉오동 전투>(2019)와도 비교해 볼만 하다. 외모가 수려한 데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라는 수재로 설정된 ‘유키오’를 제외하면, 일본군이 길을 알려 준 어린 형제들에게 폭탄이 들어 있는 음식을 주거나 민간인 학살을 즐기는 등 전반적으로 야만스럽고 비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되어 왔다. 이전의 ‘항일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독립전쟁을 ‘저항폭력’으로서 특별히 신성한 어떤 것으로 그린다거나, 일본군의 일방적인 폭력을 묘사하기보다는, 전쟁의 처참함을 그려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군에 대해 이와 같이 의외로 ‘급진적인’ 묘사는 또다른 가공인물 ‘모리’에 의해 희석된다.
일본군의 잔혹함은 묘사되지 않는가?
<하얼빈>에는 여러 가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일본 육군 소좌(소령)인 모리 다쓰오(이하 모리)는 상당히 비중 있는 인물이다. 모리는 신아산 전투 때는 군도로 의병의 목을 톱질하듯이 베어 잘라버리는 등 <하얼빈>의 다른 일본군에 비해서도 잔혹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후 포로로 잡힌 뒤에도 건방진 태도를 보여 의병들의 분노를 사는가 하면, 안중근이 만국공법에 의거해 풀어 준 뒤에도 다시 일본군을 이끌고 추격하여 안중근의 여러 동료들을 살해하는 등 비열함을 보인다. 이 때 죽은 동료들은 모리가 신아산 전투 때 한 의병에게 한 것처럼 머리 등 신체가 모조리 잘려 나간 모습으로 그려져 모리의 잔혹성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모리는 이후에도 자신이 포로로 잡은 의병들까지도 함부로 죽이거나 무릎에 총을 쏘는 등 부상을 입히기도 하며, 살려 두고는 마치 개를 다루듯이 ‘먹이(스테이크)’를 던져 주면서 모멸적으로 취급하는 등의 면모를 드러낸다. <하얼빈>에 묘사된 다른 일본군들은 집요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잔혹하게 악마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봉오동 전투>에서 야스카와가 조선 호랑이를 난도질하는 모습으로 연출되듯이, 모리도 ‘항일물’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일본군의 이미지를 계승하고 있으며, <하얼빈>의 안중근과는 정반대의 인물로 그려진다.
일제의 죄악을 상징하는 가공의 인물, 모리 다쓰오
모리의 잔혹함은 극중 내내 계속된다. 특히 안중근의 동료인 김상현을 붙잡고는 직접 방독면을 쓰고 독가스로 추정되는 생화학무기를 김상현에게 생체 실험하는 방식으로 태연하게 고문을 저지른다. 방독면이나 독가스는 하얼빈 의거보다 몇 년 뒤인 1차 세계대전 초 이프르 전투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고려할 때, 이 장면은 모리의 잔혹성을 더하기 위해 상상으로 연출한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일본군의 생체 실험은 그보다는 오히려 훗날의 관동군 731부대(관동군방역급수부)로 더 잘 알려져 있음을 고려할 때, 이 731부대라는 이미지를 모리에게 덧씌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제가 저지른 가장 무거운 전쟁 범죄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하얼빈>에서 중요한 시공간이자, 하얼빈 의거의 무대이기도 한 하얼빈에 훗날 731부대가 설치되었다는 점을 어떻게든 이어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리가 일본군 장교로 기존 ‘항일물’의 악랄한 일본군 이미지를 계승하는 한편, 731부대의 생체실험이라는, 국권 피탈 후 저질러진 후대의 죄악이라는 이미지까지를 덧씌웠음을 고려하면, 그는 단순히 일본인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형’인 일제의 죄악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하려 한다.
『동양평화론』 안중근 대신, ‘대한국인’ 안중근
이와 같이 <하얼빈>은 일본군까지도 말 그대로 ‘피와 살’을 지닌 인간으로 묘사하는 등 기존의 ‘항일물’에 비교하여,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악마 같은 모리를 등장시켜 기존 ‘항일물’의 문법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군을 비롯해,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영화에서 국가·민족의 적을 온정적으로 표현했다는 의심을 받을 경우. 영화의 성패에 크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여겨지는 한편, 영화가 여전히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안중근과 하얼빈 의거를 묘사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하얼빈> 예고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얼빈>의 예고편은 ‘늙은 늑대’, 즉 이토 히로부미 사냥을 맹세하는 안중근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늙은 늑대는 ‘늙은 여우’와 대비되는 듯하다. 범인들은 을미사변(‘여우사냥’) 당시 명성황후를 ‘늙은 여우’라 불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을미사변 당시 일제의 총리대신이었다. 안중근은 이토의 두 번째 죄악으로 ‘자객들을 황궁에 돌입시켜 대한 황후 폐하를 시살한 죄’를 언급했다. 그 때문일까. <하얼빈>은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 사냥, 즉 하얼빈 의거를 을미사변과 더불어, 동양의 평화를 깨뜨렸다는 맥락을 제외한 대한국의 국권 피탈이라는 맥락에서의 을사조약에 대한 복수라는, 민족주의적 관점만이 강조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밖에도 이토가 한국의 민중들이 이상하게도 국가·민족적 위기가 닥쳤을 때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고 평가한 것이나, 등장인물 중 한명으로 가상 인물인 이창섭이, 모리가 안중근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비웃는 장면들은 타자인 일본인의 시선을 통해 한국인의 정당성과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보인다.
나아가, 안중근이 거대한 두만강(실제로는 몽골의 호수)를 홀로 걸어가는 것이나, 하얼빈 의거를 위한 물자 조달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당시 지리적으로 볼 때 고증에도 맞지 않는 사막을 질주하는가 하면, ‘예전에는 만주가 다 우리 땅이었다’고 언급한 것 역시, 고구려·발해 등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국가·민족적 과거에 대한 향수, 웅대한 민족사에 대한 희구를 짙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하얼빈 의거를 단순히 국가·민족적 감정에서만 일으킨 것은 아니며,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을 아우르는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토를 저격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안중근이 스스로 ‘대한국인'을 자임했음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고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주의를 신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안중근이 신아산 전투 후 일본군 포로들을 풀어 주려 한 것은 《안응칠 역사》에 따르면 만국공법에 대한 신념으로 볼 수 있는, 일종의 아시아주의이자 국제주의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안중근이 언제부터 아시아주의를 신봉했는지는 정확하진 않으며, 그것은 어쩌면 법정 투쟁의 일환으로서 어느 정도 새롭게 ’발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하얼빈>에서는 안중근은 ‘대한국인’으로서 하나의 민족, 즉 한민족의 영웅으로, 애국자라는 틀에 한정하고 있다.
안중근을 ‘대한국인’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될 수 없다. 그가 ‘동양평화론자’이자 ‘아시아주의자’로서 동아시아인, 만국공법을 지향하는 ‘세계인’으로서 국제적인 면모를 지녔음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국공법은 그저 안중근의 인격을 나타내기만 할 뿐인 공허한 소재가 아니라, 그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우리가 안중근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시아주의자가 아닌, 애국자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는 우리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