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는 불안을 가리는 방어다
크로커다일은 늘 모든 걸 계획했다.
사막의 도시, 바로크 워크스,
심지어 사람의 움직임까지.
그의 세계엔 우연이 없었다.
그는 약속하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모든 걸 자기 손 안에 두려 했다.
그러나 그 완벽한 통제의 이면에는
'무너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숨어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불안을 다루는 인간의 방식 중 하나는 '통제'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할 때
상황을 지배함으로써 불안을 억제하려 한다.
크로커다일의 냉정함은 불안을 감추는 가면이었다.
그는 현실의 위협을 직접 느끼는 대신,
모든 것을 계산하고 조종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했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에 따르면,
열등감은 인간 성장의 출발점이지만,
극복되지 않으면 과도한 보상으로 변한다.
크로커다일의 과도한 완벽주의와 권력욕은
그가 느낀 무력감의 보상이었다.
그는 한때 실패했고, 그 패배의 기억은
그를 더 강하게, 더 잔인하게 만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강함을 과장했고,
결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카렌 호나이(Karen Horney)에 따르면,
불안한 사람일수록 권력을 추구한다.
이는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안전해지고 싶다'는 무의식의 표현이다.
크로커다일의 권력욕은 파괴가 아니라 방어였다.
그는 세상을 통제해야만
자신이 다시 버려지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의 싸움은 세상과의 전쟁이 아니라,
두려움과의 전쟁이었다.
우리도 크로커다일처럼
모든 걸 통제하려 들 때가 있다.
계획이 어긋나면 불안해지고,
타인의 예측 불가능함이 두렵다.
하지만 통제는 불안을 없애지 않는다.
잠시 안정감을 주지만,
결국 더 큰 긴장을 만든다.
진짜 안정은 세상을 조종할 때가 아니라,
그 불안한 마음을 이해할 때 찾아온다.
크로커다일이 통제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세상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국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