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식은 돈까스를 삼키며 배운 것들

같은 공간, 다른 세계 : 연남동 카페의 안과 밖

by 민보
photo-1541167760496-1628856ab772?fm=jpg&q=60&w=3000&ixlib=rb-4.1.0&ixid=M3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x8fA%3D%3D 출처 : unsplash


오랜만에 몸을 쓰는 육체노동을 했다. 주요 업무는 설거지와 메뉴 서빙 및 정리. 부수적인 업무로는 린넨 정리, 오븐 예열, 식기 닦기, 메뉴 세팅 등 단순한 일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어떤 순서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마음 같아서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일잘러'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단기 아르바이트 특성 상 아는 것이 많지 않은 탓에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저 빈 틈이 보이면 채우려고 노력하고, 손님이 나간 자리는 빠르게 치우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매장 손님과 배달 기사님들을 여러차례 마주한 뒤 차갑게 식어버린 저녁을 먹으며 문득 회사를 다닐 때 먹었던 따뜻한 점심 밥상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어제의 저녁 메뉴는 햄버거, 오늘은 돈까스였다. 둘 다 기름진 요리라 그런지 식은 뒤에는 묘하게 비슷한 맛이 났다. 밥이 뱃속으로 들어가는지조차 모른 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겼다. 작은 주방 한 켠에 있는 간이 테이블 위 식사는 불편했고, 쫓기듯 빨리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배는 금세 더부룩해졌다.


하지만 육체적인 불편함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내가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선임자를 먼저 먹이고 싶었다.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했고,나이는 거의 10살 정도 더 어렸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기에, 순서를 정하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따라야 했다.


밥을 먹는 내내 목이 턱턱 막혔다. 식은 된장국으로 뻣뻣해진 돈까스를 겨우 밀어 넣고 나니 그나마 있던 입맛마저 사라져 버렸다. 도시락의 절반 가량을 비웠을 때 CCTV 너머로 보이는 건 사람들이 떠난 빈 테이블 위, 덩그러니 남은 잔과 접시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기물들을 쟁반에 담고 테이블을 쓱- 닦은 뒤, 다시 익숙한 싱크대 앞 자리로 옮겼다.


"이번 주말엔 어디 갈만한 곳 없을까?" 지난날, 주말을 앞두고 행복한 고민을 하던 내 모습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감사한 일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누군가는 웃으며 음료를 마신다. 하지만 그 음료 한 잔에는 누군가의 고된 노동이 반드시 녹아있다.


돈을 지불했으니 이만큼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카운터 안쪽의 세상에 들어와 보니, 그 당연함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완벽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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