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살인하는 재고와 테크네의 죽음

상징 디코딩 #008: 경영상의 이유라는 알리바이로 읽는 살인의 개연성

by 나인테일드울프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2025)』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원작으로 한다. 프랑스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이미 한 차례 영화화한 바 있는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오래전부터 탐내왔던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 돋보이며 대중의 감상과 해석도 주로 그 시각적 성취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기존의 해석 갈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 회계 장부'라는 전혀 다른 결의 홈을 파보는 데 있다.


살인의 개연성: 블랙 코미디가 은폐한 질서

태양 제지의 설비는 아직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오해 보인다. 유만수는 정리해고에 대항해 보지만 높으신 분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제지 공장에서 해고된 중년 남성이 재취업을 위해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설정은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사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이고, 유머는 사안을 비틀어 볼 때 성립한다. 즉, 이 영화의 공감하기 어려운 살인극은 현대 사회의 어떤 기괴한 이면을 비틀어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 비틀린 거울을 바르게 펴내면 숨겨져 있던 섬뜩한 개연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거기엔 이 이야기에 작용하는 어쩔 수 없는 흐름과 질서가 있다.


먼저 영화는 주인공 유만수(이병헌)의 입을 빌어서 해고가 도끼질, 모가지라는 사회적 살인이나 다름없다는 세간의 인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 관계자로 보이는 일행은 말을 시작부터 끊어 버리고 무심히 지나친다. 그리고 잘려 나가는 만수 그는 왜 잘린 걸까?


일반기업회계기준이라는 홈

태양 제지에 투입된 외국인 자본, 그 관계자들. 원래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국가는 영토 내에 여러 가지 홈을 판다. 그중 하나가 바로 회계 기준이다. 대한민국의 일반 기업들은 '일반기업회계기준(K-IFRS)'이라는 룰을 따라야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임금은 비용(Expense)이다. 인건비는 흔히 고정비로 분류되지만, 기업은 이를 단기적 변동비로 취급하고 싶어 한다. 고정비는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늦추고 시장 탄력성을 저해하는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반면, 자동화 설비는 자산(Asset)이다. 기계를 사는 것은 자본을 투여해 또 다른 형태의 자산을 확보하는 '투자'다. 장부상 자산 총액은 줄어들지 않으며, 감가상각 역시 즉각적인 현금 유출을 뜻하지 않는다. 결국 국가가 파놓은 이 회계적 홈은 경영자에게 "비용(인간)을 줄이고 자산(기계)을 늘리라"는 선택의 경로를 강제한다.


더욱이 이 기준은 국제회계기준(IFRS)과의 동기화를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유목성(Nomadism)'마저 획득했다. 과거 회계 기준이 국가가 기업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기업이 전 세계를 매끄러운 공간으로 점유하기 위해 휘두르는 '전쟁 기계*'의 배치물이 되었다. 국가조차 이 거대한 자본의 흐름과 타협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전쟁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전쟁 사례가 없지 않다. 그래서 영토 내 거주민, 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그 타협의 원 안에서만 가능하다.


극 중 제지 산업의 대량 실직 사태는 정확히 이 냉혹한 흐름에 부합한다.


들뢰즈(G. Deleuze) 철학의 핵심 개념.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탈영토화) 세계를 수평적이고 경계 없는 매끄러운 공간으로 규정하고 움직이는 유목민적 에너지. 본문에서는 자본과 회계 시스템을 비국가적 질서로 보는 데 사용됨.


불변자본: 재고가 된 인간

해고자이자 구직자인 사람들. 마트에서 하필이면 A4 용지를 나르는 만수. 제지 산업을 여전히 떠나지 못함을 상징한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노동은 투입된 비용보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유일한 원천, 즉 '가변자본'이다. 과거 자본가는 노동자의 숙련도를 쉽게 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본은 이 까다로운 가변자본을 통제 가능한 '불변자본(기계)'으로 대체하는 자동화의 길을 걷는다.


이 변화가 누적되면 노동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부품화된다. 들뢰즈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노동력이 더 이상 창조적 가변자본이 아닌 것으로 봤다. 현장의 노동은 물론이고, 길게 늘어선 구직 대기열 또한 '불변자본'으로써 창고에 쌓아둔 원료나 재고와 다를 바 없다.


미리(손예진)와 아라(염혜란)가 남편들에게 말하는 창업 혹은 재취업의 대안들은, 제지 공장의 재고 노릇을 그만하라는 고언이다. 하지만 그들은 "종이밥 먹은 지 25년"이라는 항변으로 계속 창고에 남는다. 그들은 실업 상태에서 조차 기계적 예속의 회로 안에 포함되어, 자본의 유연성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가 마트에서 일하는 만수를 비출 때, 그는 A4 인쇄용지를 나르고 있었다. 이 장면은 그가 여전히 제지 산업에 매여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재고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사용되거나, 악성 재고로 처분되거나 둘 중 하나다. 주인공 유만수의 살인은 표면적으로는 경쟁자를 없애는 잔혹한 범죄지만, 회계의 언어로 번역하면 시장에 과잉 공급된 '인간 재고'를 물리적으로 소각(Write-off)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희생자들을 관통하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를 살펴보자.


제지 테크네(Techne)의 불호환성

두 명의 수상자와 그중 한 명과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 이 셋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테크네'이다. 현직인 최선출은 여기 끼지도 못한다.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는 예술과 기술(노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뜻했다. 움베르토 에코가 『중세의 미학』에서 설명했듯이, 과거의 미(美)는 정확한 비례와 규칙을 구현하는 장인의 기술과 동의어였다.


이 영화의 실직자 셋은 모두 이 테크네라는 개념으로 묶인다. 특히 작중 유만수와 구범모(이성민)는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올해의 펄프맨 상'을 받은 최고 수준의 숙련공들이다. 또한 만수에게는 '분재', 범모에게는 '오디오 시스템'이라는 확고하고 수준 높은 취미가 있다. 만수와 범모의 수상 경력은 그들의 노동이 한때 예술의 경지에 있었음을 증명하며, 실직 후에도 남은 그들의 고상한 취미는 노동 현장에서 추방당한 '테크네'가 사적인 영역으로 망명한 흔적이다.


고시조(차승원) 또한 둘과 비슷하다. 그에겐 과거 범모와의 경쟁에서 이긴 전적이 있다. 이 사실은 그가 두 사람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제지 분야의 숙련된 기술자란 것을 말한다. 그런 그 역시 '제지도 예술'이라며 이 테크네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고시조가 일하는 구두 가게에서의 장면은 이들 테크네의 치명적인 한계, '불호환성'을 여실히 까발린다. 종이의 비례를 맞추는 데 평생을 바쳐 다져진 예술적 감각은, 정작 고객의 구두 취향 하나 맞추지 못할 만큼 범용성이 떨어진다. 공장 밖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규격 외 부품인 셈이다. 그들 스스로도 이를 직감하고 있기에, 어떻게든 말이 통하는 제지 산업으로의 재투입을 갈망한다.


이미리는 자신의 남편을 '식물인간'이라는 농담으로 불렀지만, 사실 이 셋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한 '분재 인간'들이었다. 이 은유의 시각적 완성이 분재 철사에 꽁꽁 묶인 고시조의 사체이다. 그리고 그 반듯한 모습은 적재하기 좋게 재단된 마르크스적 불변자본의 형태이기도 하다. 그가 묻힌 자리도 아이들이 훔친 스마트폰(상품-재고)을 묻은 곳이었다. 그들은 제지 산업의 재고 혹은 원료다.


숙련의 불필요

이런 공장에선 숙련된 제지 기술자가 전혀 필요 없다. 필요한 건 관리 능력뿐이다.


현대에도 기술과 예술 사이의 회색 지대는 있다. 그렇다고 둘이 같다고 말하긴 힘들다. 기술은 기술이고, 예술은 예술이다.


하지만 잔재는 여전히 남아서, 노동 환경에서의 창의적 발상은 아직 필요하며, 그것은 주로 숙련에서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HR에서 그렇게 많이 써먹는,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은 성립 안된다. 최고 단계, 자아의 실현은 단순히 기계 부품처럼만 작동하는 노동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숙련은 자본가가 쉽게 대체하지 못한다. 숙련이 필요한 노동은 불변 자본화가 불가능하다. 비용은 고정되고, 리스크는 커진다. 그래서 자본은 숙련의 필요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자동화한다. 기업의 경영 정보 시스템들 또한 숙련자들의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는데 전념한다. 잘 만들어진 ERP 시스템은 능숙하게 영수증을 분류하던 숙련된 경리직을 필요 없게 만든다. 문 제지(Moon paper)는 이 과정을 정점까지 이뤄 낸 회사이다.


두 명의 경쟁자 제거는, 만수 개인의 입장에선 전혀 할 필요가 없는 헛짓거리였다. 이 숙련자들은 그가 목표로 하는 문 제지에서는 원하지 않는 자들이다. 면접장에서 테크네를 드러내는 순간 바로 탈락이다. 인공지능으로 완벽하게 자동화된 공장을 보라. 테크네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곳, 고시조와 구범모의 숙련이 필요 없는 곳이 바로 거기다. 거기에 더해 고시조는 파피루스에 합격해서, 그 회사에 입사를 희망할 일도 없었다.


영화가 블랙 코미디로 가장 어이없게 사람을 웃기는 점은, 바로 애초에 하지 않아도 될 살인을 정말 비극적으로 완수한다는 것이다.


현직 관리자로의 전이

물리적인 상태마저 완전히 비슷해지는 순간 진짜 목표에 대한 살인을 완수한다.


문 제지의 관리자 최선출(박희순)이 상을 받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 장인들의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런데 현직이다. 자본이 원한 것은 테크네를 가진 장인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숙련자들을 대체할 수 있는 부품형 관리자였다. 영화에서 선출은 만수를 쫓아내기 위해 등장한다. 그게 그의 첫 장면이다. 만수를 술집으로 안내하는 건, 바로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최선출은 영화 내에서 유만수의 안티 태제로 작동한다. 유만수가 금주와 금연을 위해 애쓰는 반면, 선출은 술을 즐기고, 시가를 태운다. '올해의 펄프맨' 상을 받은 적도 없고, 부각되는 테크네 속성도 없다. 유만수가 경제적 궁핍에도 가족들과 집을 버리지 않는 것에 반해, 그는 집도 버리고 가족과도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그는 유만수가 그토록 바라는 현직이다.


이 간극은 유만수가 문 제지의 관리자가 되기 위해 메워야 할 결핍된 자격 조건들을 상징한다. 그는 그 차이를 좁힌다. 그 결과로 가족 안에서 불신과 두려움의 씨앗이 생기는 것은, 결국 선출의 현재와 그의 미래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아내의 마지못한 포옹, 만수만 듣지 못하는 리원의 연주가 바로 가족 내 소외의 시작점이다. 그는 다시 누구에게나 공평한 개가 될 것이다.


구범모가 죽은 것은 엄밀하게 말해 유만수의 소행은 아니다. 그가 저지른 살인은 두 건, 그 첫 번째인 고시조의 사체 처리에는 그의 숙련된 그의 분재 기술을 활용한다. 이것은 숙련가로서의 자기 존재 지우기이다. 자신의 기술로 동종을 네모 반듯하게 정리하는 것, 그건 시스템이 원하는 방향 대로 자신을 틀에 맞추는 것에 동의하는 최종적인 입장정리이다. 마지막으로 만수는 그것을 땅에 묻음으로써 세상에서 자신의 테크네를 지운다.


유일하게 필요에 부합하는 최선출의 살해는 훨씬 기술적이다. 시체를 숨기는 데 급급했던 고시조 때와는 달리, 사고사로 위장하는 치밀함을 선보인다. 희생자의 시신을 놓고,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까지 술잔을 다시 떨어뜨려 보는 꼼꼼한 관리자로서의 재탄생. 이는 그가 현직의 자리를 찬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최선출이라는 부품형 관리자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만수가 선택받은 이유

가지를 치고 다듬어서 잘라낸 원목이나 사람이나 영화에선 모두 불변자본이다.


결국 유만수는 원하던 대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문 제지 면접장의 그에겐 과거 대량 해고에 맞서던 결기가 이제 없다. 손바닥에 메모를 적어가며 더듬거리던 어리숙함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는 자신이 완벽하게 포맷된 '단순 부품'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능수능란하게 어필한다.


만수의 취미인 '분재'는 가지를 치고 철사로 옭아매어 인위적인 모양을 강제하는 일이다. 이는 곧 인간의 숙련을 거세하고 규격화된 불변자본으로 만드는 자본의 폭력과 닮아있다.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거대한 벌채 장면은 이 구조적 폭력을 거시적으로 재확인시킨다.


만수가 문 제지의 면접장에서 유창하게 입을 열 수 있었던 것은, 필요 없는 숙련에 대한 자부심을 빼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고시조를 네모 반듯하게 접어버리며 자신의 낡은 '테크네'를 폐기했고, 최선출의 살해 현장을 꼼꼼히 조작하며 감정이 거세된 '관리자'의 시선을 획득했다. 그는 살인을 통해 자본이 원하는 완벽한 불변자본이자 부품형 관리자로 진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스템은 타인을 옭아매고 잘라내는 만수의 적응력을 알아보았고, 만수 역시 동료를 폐기 처분하며 그 인정에 부합함을 증명했다. 재취업을 위해 살인까지 한 자에게 자동화 공장의 낯선 동선 따위는 금방 적응할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결론: 사라지는 테크네의 빛

살인이 어떻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느냐는 윤리적 항변은 장부의 논리 앞에서 무력하다. 창고에 쌓인 악성 재고를 지우는 것은 관리자의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태양 제지의 인수자가 만수에게 내린 지시는 해고자 명단의 작성이었다. 회사가 만수에게 기대했던 역할은 처음부터 이것이었다.


'경영상의 이유'라며 수백 명의 목을 자르는 기업의 ‘어쩔 수가 없다.’ 영화는 바로 그 서늘한 알리바이를 비추기 위해 분재의 가지처럼 비틀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르게 곧게 폈을 때 보이는 것은 한 개인을 불변자본의 재고로 만들려는 흐름과 질서 속에, 사라지는 숙련의 가치였다.


공장에서 차례로 소등하며 암막이 되어가는 장면은 사라져 가는 테크네의 빛을 말하는 것 같다. 새로운 일자리야 생기겠지만, 시대가 만든 그 문을 통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다. 넓어 보이지 않는 문을 바라보며, 아마도 그래서 문 제지였을 거란 억측을 마지막으로 영화의 감상을 마친다.



『어쩔수가없다(2025)』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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