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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한폭탄

초등방학일지 2.

by 달콤말랑떡 Jan 15. 2025

째각째각째각째각.

5.4.3.2.1

뻥~!

무슨 소리냐고요?

이 소리는 경상남도 김해시에 사는 어느 엄마의 참다 참다 끝내 폭발한 복장 터지는 소리입니다.  

아이고~ 터지고 나니 시원~하네!

근데 이 찜찜한 기분은 뭐지?


우리 집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방학이 시작된 지 열흘 째, 그분은 폐렴친구를 데리고 오셨고 끊이지 않는 기침과 더부살이하며 여전히 무인칩거 중이시다. (가! 가란 말이야!)

아이가 9살. 이때껏 입원과 응급실 한번 안 가고 건강하게 자라왔다는 자부심이 있었건만 이번 감기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 얼굴과 몸에 열꽃이 핀 것도 처음이요, 열흘 내내 감기를 달고 병원을 출퇴근하다시피 한 것도 처음이다. 아프고 나면 큰다더니 얼마나 더 크려고 그러니?


겨울방학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놀 생각에 가득이지만 열혈엄마는 '뭘 해야 될까? 무엇을 하나 완성할까?'라는 욕망이 가득하다. 방학이라고 해서 늦잠 자고 반나절이 지나는 것도 아니 될 일이요. 노는 게 제일 좋아 맨날 놀아서도 아니 될 일이다. 고로 열혈엄마는 계획한다. 방학이라고 나태해지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학교 방과 후 수업도 1주일 한두 개씩 꽉꽉 채워주고 독서도 해야 되니 백 권 읽기도 도전. 그동안 빠진 피아노와 수영도 '이제 매일 가야지'라고 야심 차게 계획한다.

방학은 또 가족여행으로 여러 체험을 경험해야 하는 기간이 아닌가. 이번 방학에는 시골영감 처음 타는 서울행 열차를 타고 2박 3일 일정을 잡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궁투어, 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서울 법원전시관 등  엄마의 머릿속에 프레젠테이션처럼 하나씩 설계했다.


하지만 엄마의 기똥찬 모든 계획은 올 스탑!

진짜 똥통에 엎어졌다.

"엄마, 나 힘들어."

"엄마, 머리 아파. 열 또 나는 것 같애"

"기침 때문에 가슴이 아파"

"엄마. 배 아파, 무서워. 닦아줘"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장에도 문제가 생겨 고장 난 수돗물처럼 좔좔 나오기 시작한다. 안 고장 난 게 어디니? 안 아픈 곳을 찾는 게 더 빠르겠다. 근데 니 똥이잖아. 무섭다고 닦아달라는 건 또 무슨 어리광인지.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아프다는 핑계로 아이는 왕이 되었다.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온갖 심부름과 요구사항을 쉴 새 없이 호령한다. 이에 엄마는 기꺼이 궁녀가 되어 왕의 두 손 두 발이 되어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서 낫기만 해 주세요.' 속으로 되뇌면서.

아픈 왕이 하는 일이란 이불동굴에 들어가 바보상자만 하염없이 보는 것이다.  흔한 남매, 캐리언니, 에그박사 등 친한 친구들을 차례로 소환하여 빠르게 눈으로 흡수한다. 이젠 하다 하다 각종 드라마까지 섭렵하신다. 눈이 떠서 감기기 전까지 이 행위는 계속된다. 그놈의 반갑지 않은 손님 때문에.


일주일은 그럭저럭 넘겼다.

 '힘드니까 어쩔 수 없지. 이번 기회에 푹 쉬고 다시 리셋하는 거야.'하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설령 티브이 속에 빨려 들어 갈지라도 입자물쇠를 잠그고 가만히 놔두었다. 하지만 티브이와 물아일체 되는 모습이 계속되자 지글지글 냄비가 끓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 모습을 봐야 되나, 아직 아프잖아, 참아야 해  VS 너무 심하잖아, 컨디션은 많이 돌아온 것 같은데 연기 아니야? 찬물과 더운물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한다. 그때 엄마의 마음을 알아챈 건지 

 "엄마 나 힘든 거 알지? 안아줘. 힘이 없어"하고 불쑥 품에 파고든다.

 '그래! 건강이 최고지!' 엄마의 마음은 금세 미지근한 중탕이 되어 돌아왔다.

 아주 더딘 속도이지만 밤에 잘 때도 기침소리가 잦아들고 장도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해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 내심 큰 병이면 어쩌나. 더 아프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던 마음도 편안해졌다.



"내일부터 이제 학교 가야 된다. 알았지?"

"왜~ 힝. 나 힘든데. 진짜 힘든데, 이번주 쉬고 다음 주부터는 꼭 갈게. 응?"

 아이의 말에 약자인 엄마는 또 다.

 "알았어. 월요일부터는 꼭 가."


2주일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

지이이잉~ 알람진동에 엉덩이를 발사하고 일어난다. 아이가 좋아하는 주먹밥으로 아침준비를 하고 아직 꿈나라에 있는 아이를 깨운다.

"햇님아~이제 일어나야지, 지금 안 일어나면 늦어"

"이이잉. 왜에~! 나 더 자고 싶은데! 왜 깨우냐고~!"

뭐 묻는 놈이 성낸다고 네가 학교 간다고 말해놓고 왜 엄마한테 트집이냐.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을 누르고 친절함은 빼고 다시 말한다.

"햇님이가 오늘부터 간다고 했잖아. 그동안 쉴 만큼 많이 쉬었어. 얼렁 일어나 빨리."

"아아아! 나 진짜 힘들다고! 아프다고! 으아아 앙~나 수요일부터 갈 거야! 오늘 안가! 진짜로 안 갈 거야!"

아프던 왕은 폭군이 되어 소리를 지르고 이불킥을 날린다.

이에 질세라 엄마는 폭동을 일으키는 백성이 되어 더 큰소리로 외친다.

"일어나! 빨리! 그만해~! 너만 힘들어!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아프다고 봐줬더니 어리광만 늘어가지고 어서 일어나! 안 일어나나!"


펑! 숨죽이던 시한폭탄 발사!

참고 참았던 폭탄이 터졌다. 쇼미더머니 래퍼와 견줄 정도로 속사포처럼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아이는 오늘은 절대 안가를 고수하고 이불속에 숨어버렸다. 폭탄이 터졌는데 시원한 건 잠시. 눈앞에 먼지들이 자욱했다.

나는 왜 아이에게 화를 낸 걸까. 넌 엄마잖아. 넌 애가 아니고 어른이잖아.

엄마의 시한폭탄에도 아이는 다가온다.

"엄마 안아줘."

"싫어. 엄마 안아줄 기분 아니야"

"그럼 언제 안아줄 거야?"

"몰라!"

난 3살짜리 아이가 되어 이불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책을 벗 삼아 시간을 보냈다. 달그락달그락 부엌에서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내가 챙겨둔 주먹밥과 눈칫밥을 세트로 먹고 안방문을 빼꼼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똑딱똑딱 시계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정적이 흐른다. 시간에 위로받고 싶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터진 마음이 금방 메꿔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가 다시 안방문을 열고 물어본다.  

"엄마 점심 먹어?"

잠잠했던 마음이 다시 폭발한다.

"몰라! 네가 알아서 챙겨 먹어!"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메꿔지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한폭탄은 왜 터졌을까. 깊은 곳에 있는 나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 그건 말이야.

나보다는 좋은 길을 걷게 해 주고픈 욕심, 나보다 잘할 거라는 기대, 지금부터라도 빨리 해야 된다는 조바심, 남들보다 잘해야 된다는 높은 기대가 네 마음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거야.

근데 천천히 생각해 봐.

넌 얼마나 했어? 넌 얼마나 잘했어?
 힘들다고 포기 한 적 없었어?


아이와 엄마는 서로 독립적인 인격체이지만 엄마는 항상 착각한다. 내 배에서 나온 분신이니까 나와 똑같다고.

한 몸이던 몸이 둘이 된 것이 아쉬웠던 걸까. 아이는 나와 다름을 알면서도 모른 척 인정하지 않는다.

엄마의 눈은 늘 아이를 향해 있다. 내가 이룬 꿈을 이루게 하고 싶고 나보다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게 채찍질한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라고  '이게 모두 너를 위한 거야'라는 암막을 씌우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시한폭탄의 진원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알았다. 나의 욕심과 기대로 가득한 마음들이 커지고 커져 결국 터지게 했음을.

자라나는 어린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곧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은 아마도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사랑의 형태일 것이며 어머니가 연약한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기만적인 것이 되기 쉽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난점 때문에 여자가 '사랑할'수만 있다면, 다시 말하면 그녀가 그녀의 남편, 다른 애들, 낯선 사람들,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여자는 참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사랑을 할 수 없는 여자는 어린아이가 연약한 동안에는 상냥한 어머니일 수 있으나 사랑하는 어머니 일수는 없다. 사랑하는 어머니인가 아닌가를 가려내는 시금석은 분리를 견디어낼 수 있는가. 분리된 다음에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아이는 하루종일 내 눈치를 봤다.

어른답지 못한 내 언행에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 맞지만 오늘도 아이가 먼저다.   

"엄마 미안해, 나도 힘들어서 그랬어.

 엄마는 내 보물이야, 사랑해. 이쁜 꿈 꿔 엄마"


엄마의 시한폭탄은 잠자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엄마의 욕심과 기대가 금방 사그라들진 모르겠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의 진정한 사랑은

사랑은 주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한발짝 물러서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엄마의 기본값으로 장착되어야 함을 안다.


어린왕자의 마음으로 사랑할꺼야.어린왕자의 마음으로 사랑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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