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마트에서 만난 익숙함, 세계로 퍼져나가는 K-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한국라면
해외에 나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그 나라의 마트입니다. 관광 명소보다도, 화려한 쇼핑몰보다도, 저는 현지 마트 구경이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진열대 하나하나를 구경하다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진짜로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를 엿볼 수 있거든요. 본격적으로 해외 출장이 잦아진 건 2017년부터였습니다. 처음엔 한국 라면을 찾기 어려운 나라들도 많았습니다. 한인 마트를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굳이 한인 마트를 가지 않아도, 예컨대 미국의 월마트에만 들러도 최소 3~5종류의 한국 라면이 매대에 놓여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신라면은 기본이고, 불닭볶음면, 짜파게티, 심지어 오징어짬뽕까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놀랐던 순간은 인도 첸나이의 한 마트에서였습니다. 거대한 매장의 한쪽 벽면이 통째로 한국 라면으로 채워져 있었거든요. 낯선 나라의 마트에서 익숙한 라면 봉지를 마주한 그 기분이란, 아마 여행을 자주 다니는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그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한국 라면이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는 걸까?”
그 물음에서부터 작은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식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K-라면의 세계화 이야기, 이제부터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한국 라면은 왜 이렇게 유명해지게 된 걸까?
생각보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계기들이 겹치고, 시기마다 다른 힘들이 작용하면서 오늘날의 ‘K-라면 붐’이 만들어졌더라고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콘텐츠의 힘이었습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라면 장면들, 끓는 물소리, 면을 들이켜는 클로즈업이 외국인들에게는 꽤 강렬하게 다가갔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 “기생충” 속 ‘짜파구리’ 장면은 아예 글로벌 화제가 되었고, ‘라면 스테이크’라는 이름으로 고급 식당 메뉴에까지 올라갔으니까요. 추가적으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히트로 인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 먹는 방식까지 전파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SNS, 특히 유튜브 및 숏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대표적이죠. 한국에서는 그냥 매운 라면 중 하나였던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는 ‘맵부심 도전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 매운 라면을 먹는 외국 유튜버들의 영상이 수백만 뷰를 기록하고, 사람들은 “나도 한 번 먹어보자”며 라면을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관심을 통해 한국 라면을 접한 사람들이 한국 라면만의 특유의 맛의 정체성, 특히 ‘매운맛’이 외국인들에게는 참신하게 다가간 것 같았습니다. 흔한 ‘치킨맛’이나 ‘쇠고기맛’ 라면 사이에서 한국 라면 특유의 칼칼하고 중독성 있는 맛은 일종의 이국적인 매력으로 느껴진 것이죠. ‘자꾸 생각나는 맛’이라는 말,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계로 보는 한국 라면의 성장세
한국 라면의 수출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 1억~2억 달러 규모에 머물렀습니다. 2010년 수출액은 약 1억 5천만 달러 수준이었죠. 하지만 2013년 《별에서 온 그대》 등 한류 드라마의 인기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높아졌고, 2015년에는 수출액이 2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후 《기생충》(2019)에서 짜파구리가 전 세계에 소개되며 라면에 대한 글로벌 인식이 올라갔고, 2020년 팬데믹 시기엔 간편식 수요 급증과 함께 6억 달러를 돌파합니다. 여기에 ‘불닭볶음면 챌린지’ 같은 유튜브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한국 라면은 하나의 문화 체험이 되었습니다. 2022년에는 7억 6천만 달러, 2023년에는 9억 5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2억 달러 돌파가 예상됩니다. 전통적으로 K-콘텐츠가 강세였던 중화권과 동남아를 넘어, 이제는 미주와 유럽까지 한국 라면은 진정한 글로벌 식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나라별 입맛에 맞춘 라면의 진화
재미있는 건, 이런 한국 라면들이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해외 현지의 식문화와 소비 습관에 맞춰서 말이죠.
예를 들어, 미국에 수출되는 라면은 전자레인지 조리가 기본입니다. 생수를 붓고, 뚜껑을 제거한 채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리는 방식이죠.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끓이는 방식’보다 훨씬 간편하게 느껴지는 조리법입니다.
또 어떤 제품은 할랄 인증, 비건 인증을 받아 이슬람권이나 채식 시장까지 노립니다. 매운맛이 부담스러운 지역에는 순한 맛 또는 해물 맛 라면이 인기고,
컵라면은 현지 언어와 조리법으로 포장 디자인을 아예 다르게 구성하기도 합니다.
제가 찍은 사진 속 라면들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Shin Green 비건 라면, 해물파티(Seafood Party) 같은 상품명, 그리고 중국어로 포장된 농심 컵라면까지… 각 나라의 입맛과 문화에 맞춰 현지화된 K-라면을 보고 있자면 정말 ‘글로벌 식품’이란 말이 실감 납니다.
마무리하며
어느새 우리가 한강에서 즐기던 ‘한강 라면’은 외국인들에게 하나의 로망이 되었습니다. 직접 한강에 가보면, 그 풍경 속에 많은 외국인들이 라면을 끓이며 한국의 일상을 체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죠. 또한, 이제는 해외 식당에서도 한국 라면을 베이스로 한 메뉴들을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해지는 문화의 힘은 참 강력한 것 같습니다.
멀리 타국에서 마주한 라면 한 그릇이
우리에게는 반가운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긴 여행 끝에 지친 입맛을 위로해 주는 따뜻한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해외에서 한국 라면을 만나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 여러분의 이야기를 댓글로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