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성의 나를 만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by 비누

Be kind. 마지막까지 머릿속에 맴도는 대사. 크레딧이 끝나고 필름이 덜컥하고 멈춰도 나는 텅 빈 극장에서 멍하니 검은 화면을 응시했다. 다정하자. 지금 나는 다정한 사람일까

어느 순간 사람들이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 속 npc처럼 느껴졌다. 그저 길을 막아서고 시끄러운 무의미한 마네킹 같았다. 방해가 되고 귀찮았다. 길을 묻는 사람, 엘리베이터를 잡으러 뛰어오는 사람,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한참이나 땀을 흘리던 사람 모두 마치 나에겐 보이진 않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생각했다. 굳이 불필요한 곳에 시간과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바쁜 현대인의 덕목일 뿐 내가 모난 사람일 리 없다고 넘겨버렸다. 실은 남는 게 시간과 마음이었음에도 그냥 버려지게 두었다. 우연찮게 만난 이 영화는 그 버려진 마음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이글. 모든 것이 베이글로부터 시작됐다. 베이글은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 총에 맞은 것 같기도 하고, 비워둔 것 같기도 한 게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채우지 않으면 텅 비어있는 버려진 공간. 모든 것을 올려두었더니 진실이 되어버린 공간. 무의미해져 버린 블랙홀.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설명 말고 제대로 된 베이글을 설명하기 위해선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

영화는 크세 세 파트로 나뉜다.

1부 '에브리씽' 여러 가능성의 나.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은 삶에 필수적이나 지겨운 모든 것들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세탁소 파티를 준비해야 하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끼니를 챙겨야 한다. 동시에 종일 따라다니며 대화를 요청하는 남편과 딸을 피해 미국 국세청의 세금조사까지 준비해야 한다. 숨 쉴 구멍 하나 없는 그녀에게 남편이 지구를 구할 사람은 에블린 단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늘 귀찮고 짐만 되던 남편 웨이먼드가 립밤을 풍선껌처럼 씹더니 007 못지않은 무술 실력을 발휘해 악당들로부터 그녀를 구해준다. 그것은 남편이 아닌 또 다른 멀티버스의 알파 웨이먼드. 쉽게 말하자면 지금의 삶과 다른 결정을 내린 가능성의 또 다른 웨이먼드인 것이다. 현재의 웨이먼드는 에블린과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작은 세탁소를 전전긍긍 꾸려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의 남편도 아니며, 세탁소가 아닌 멀티버스의 혼란을 해결하러 온 남자다. 악의 세력으로부터 공격받아 알파 웨이먼드가 사라지고, 다시 약해빠진 남편 웨이먼드가 돌아오게 된다. 에블린은 힘을 잃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직접 싸우기 시작한다. 그가 알려준 버스점프를 이용해 힘을 얻는다. 이는 신발을 반대로 신기 같은 평소엔 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걸 통해 또 다른 멀티버스의 나와 연결돼 그들이 가진 다양한 힘을 빌려오는 것이다. 광고판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로부터 방패를 돌려 공격하는 힘을 얻고, 액션배우인 나로부터 무술능력을 빌려온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태어난 다양한 그녀로부터 힘을 빌려와 그들을 물리치려 하지만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녀가 싸워야 했던 적이 바로 딸 조이였기 때문이다.

2부 '에브리웨어' 허무주의에 대해.

쓰러진 에블린은 결국 조부 투바키(멀티버스의 조이)의 베이글을 만나게 된다. 참깨와 양귀비 꽃 애인 엄마 모든 것을 올려 둔 베이글은 동시에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는 블랙홀과 같다. 조부는 사실을 고백한다. 실은 베이글은 세상을 망치기 위한 게 아니라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에블린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생명체가 존재하기 전의 우주의 돌멩이가 된 이 둘은 허무주의에 대해 말한다. 지치고 피곤한 인생을 연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은 시간과 감정의 낭비일 뿐 공허함만이 남는다고 호소한다. 모든 것들에 지친 에블린 역시 조부를 따라 시끄러운 세상과 멀어지기 위해 베이글을 향해 걷는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그녀의 멍청한 남편이 있었다. 긍정적인 내면과 강인함을 가진 남편 웨이먼드가 그녀를 또다시 구해줬다. 이번엔 거창한 무술도 이상한 버스점프의 힘도 아닌 늘 그랬듯 다정한 말 한마디로 그녀를 구했다.

이방인인 그녀의 가족을 위해 에블린은 늘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시간에 쫓기고 세금에 쫓기고 진상에게 쫓기면서 전쟁같이 살아왔다. 가족과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 한채 그와 손잡고 도망쳐 온 미국에 뿌리내리느라 지치고 힘들어서 그 순간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그가 없는 여러 멀티버스의 그녀는 모두 하나같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하지만 그녀가 몰랐던 사실은 약해빠졌다고 생각한 웨이먼드 역시 외롭고 전쟁 같은 인생을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 곁을 늘 다정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그녀가 놓치고 있던 순간들을 그가 대신 기억해주고 있었다. 에블린이 쌓여있는 빨래더미에서 그와의 결혼을 후회하고 있을 때도 그는 아무리 멋진 인생을 산대도 그녀와 세금조사를 받고 밀린 빨래를 하며 그녀와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선택들을 할 것이고 이에 따라 좌절도 겪게 되겠지만 쓸모없는 순간은 없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다. 물론 그 현재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거나 볼품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대학에 갔더라면, 오디션을 봤더라면 하는 식의 불평의 기저에는 더 멋진 선택을 했다면 더 멋진 내가 되었을 텐데라는 막연한 후회가 있을 것이다. 막연한 후회에는 어떠한 책임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종종 하며 과거를 탓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갑자기 나는 슈퍼파워를 갖게 되지도 않는다. 후회의 상상은 늘 과장되게 행복하게 그려낸다. 서핑하는 방법은 파도를 타면 되는 것이다. 지나간 파도를 돌아보지 않고, 다가올 파도를 겁내지 않는 것이다. 그저 현재 파도 위에 있는 나의 순간을 즐기면 된다. 꼭 온 힘을 다해 음미하고 추억하길 바란다. 생각보다 파도가 부서지기까지의 시간은 짧기 때문이다.

3부 '올 앳 원스' 키스가 가진 힘

무섭게 달려들던 국세청 직원은 웨이먼드가 솔직하게 그들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녀도 그녀 안에 있던 다정한 진심을 꺼냈다. 그녀는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고, 에블린이 딸을 이해해 주자 그녀 역시 에블린 곁에서 세금 조사를 도왔다. 마지막으로 에블린은 웨이먼드에게 키스했다. 엄청난 이벤트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다정하게 말하는 게 아직은 쑥스럽다면 그저 키스하면 된다.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뺨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전하는 것부터 해보면 된다. 우리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툰 것이 당연하다. 길고양이에게는 허리를 숙여 한참이나 다정했으면서 정작 나에겐 냉랭한 우리인데 남을 돌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우린 다정함을 연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다정함은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곧 주변도 빠르게 물들인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다정한 사람은 에드워드 단 한 사람이었다. 에블린이 이혼서류에 사인하고, 딸에게 상처를 주고 세탁소를 때려 부숴도 그는 모든 엉망진창을 청소하고 국세청 직원에게 그녀를 변호했다. 그의 그 다정함이 에블린을 변화시켰고, 결국 이 모든 해피엔딩을 이끌어냈다. 친절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은 주위를 그렇게 감염시킨다. 세상을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변화시킨다. 우리가 여전히 다정함을 연습한다면 분명히 우리도 우리를 구원하고 사랑을 지켜낼 것이다. 에드워드가 그리고 에블린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영화는 화려하고 정신없고 어지럽다. 우주를 들먹이며 한껏 거창해 보이나 허무맹랑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독하게 우리의 현실과 닮았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는 악당은 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딸의 몸부림인 것이다. 에블린을 현실에서 꺼내와 지구를 살리려는 요원은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정신이 팔려 진정 사랑하는 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 에블린을 구하려는 남편인 것이다. 가족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존재하는 게 아니다. 오리가 물 위에 뜨기 위해 끊임없이 수면 아래서 발장구를 치는 것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돌보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봐줘야만 곁에 있는 것이다. 물론 살아가기 위해선 세금정산도, 세탁소 손님도, 그 많은 우편들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진정 우리 삶을 이루는 건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눈에 담긴 나의 유년기와 그들이 들은 나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 남아 나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에블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의 존재들이 아닐까. 영화처럼 멀티버스의 나란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힘들을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뜻밖의 행동을 하면 무한한 힘이 뻗쳐 나오는 버스 점프는 사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여러 번 시도해 왔을 수도 있다. 무심했던 사람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지는 것처럼 소심했던 내가 택시 기사에게 새해 인사를 던지고, 싸웠던 친구에게 용기 내 사과하는 일들. 모두 사소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예상 밖의 돌발행동인 것이다. 그런 버스점프를 통해 새로운 내가 되듯이, 그렇게 우린 여러 면의 나, 제각기 다른 능력, 성격, 멀티버스의 나와 연결되는 것 같다. 영화에서처럼 머리가 푸석해지고, 커피 맛이 변한 것 같다면 우리 모두 조금씩만 서로에게 다정한 버스점프를 추천한다. 치열한 사회에서 친절함이라는 무기로 뛰어든다면 반드시 우린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날게 될지 혹시 모르는 일이다. 우린 매일 사소하지만 다양한 도전들을 통해 새로운 내가 된다.

모든 날, 모든 곳에서 새로운 잠재력으로 가득 찬 나와 이 순간을 함께하는 우리라는 존재들을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