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조각가, 국민시인 까몽이스 01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리스본 시아두 언덕 중심, 관광객들이 항상 북적이는 한가운데 까몽이스 광장이 있다. 포르투갈 국민 시인의 이름을 딴 광장이다 - 루이스 드 까몽이스(Luís de Camões 1524~1580)
‘포르투갈의 날(Dia de Portugal)’이라 불리는 6월 10일, 이 광장은 나라 전체의 심장처럼 뛰기 시작한다. 그날은 까몽이스의 사망일이다. 포르투갈은 그를 기려, 국경일의 이름을 시인의 이름과 함께 묶었다 — Dia de Portugal, de Camões e das Comunidades Portuguesas.
‘조국의 날이자 까몽이스의 날, 그리고 포르투갈 사람들의 날’인 셈이다.
대통령이 취임하면 헌화하러 가는 곳은 까몽이스 무덤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포르투갈의 날은 까몽이스의 사망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포르투갈어 교육과 문화 교류를 담당하는 기관 이름은 까몽이스 재단,
포르투갈과 브라질 정부가 공동으로 수여하는 포르투갈어권 문학상의 이름은 까몽이스 상,
- 단지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국가의 상징, 까몽이스.
우리 동네 도서관 이름도 까몽이스도서관입니다. 도서관 명판 옆에 나란히 걸려있는 까몽이스의 초상화 - 한쪽 눈이 실명한 (혹은 작품에 따라 패치를 한 것도 있습니다) 채로 나오는 전형적인 까몽이스의 초상화예요.
리스본의 젊은 건달 시인
16세기 중반의 리스본은 세상의 항구였다. 인도에서 실려온 향신료 냄새가 거리마다 흘렀고, 선원과 시인, 상인과 귀족이 뒤섞여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처럼 들썩였다.
그 펄떡이는 도시 한가운데, 까몽이스는 책 보다 시와 연애, 술과 친구를 더 사랑했다. 궁정의 문학 모임에도, 뒷골목의 주점에도 어울렸다.
술잔이 돌고, 시가 오갔고, 음악과 웃음이 흩어졌다.
왁자지껄한 선술집에서 친구들은 까몽이스를 놀려댔다.
“루이스, 넌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 속에서 사는군!”
어느 날 왕궁의 무도회에서 그는 귀족 여인 카타리나에게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웠고, 그날 밤 그는 취한 듯 시를 썼다.
“Amor é um fogo que arde sem se ver, / É ferida que dói e não se sente...”
“사랑은 불타오르나 보이지 않는 불,
아프되 느껴지지 않는 상처...
— 까몽이스, soneto 「사랑에 대하여」
그러나 사랑은 신분의 벽에 부딪혔다. 허락되지 않은 연애로 그는 궁정을 떠났다. 술과 방랑으로 위안을 삼던 그는 어느 날 결투를 벌이다 한쪽 눈마저 잃었다. * 거리 폭행 사건으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
그의 삶은 천재성과 무모함이 동시에 번쩍였다. 리스본의 자유분방한 공기 속에서 그는 언어의 날카로운 결을 키우고 있었다.
바다로 떠난 추방자
감옥에서 풀려난 뒤, 그는 더 이상 리스본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인도 원정대에 참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처벌이자 기회였다.
리스본 항구를 떠나는 배 위에서 그는 테주강 하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강은 내 조국의 젖줄이지만, 오늘은 나를 삼켜 바다로 내보내는 어머니이리라.”
그의 항로는 포르투갈 제국의 영광을 따라가는 여정인 동시에, 망명과도 같은 길이었다. 인도 고아Goa에서는 군인으로, 행정관으로 일했고, 한때는 마카오에서 포르투갈 관청의 서기관으로 지냈다. 그곳에서 그는 식민의 현실을 목격했다.
향신료와 금, 신앙과 무역의 이름으로 펼쳐진 바다 위에서, 그는 '조국의 이상'과 '인간의 탐욕'이 맞부딪히는 장면을 매일같이 보았다.
서사시 《루지아다스》의 마지막 노래, 제10가에서 그는 신에게서 계시받듯 제국의 미래를 풀어놓는다. 영광 뒤의 탐욕, 항해 뒤의 고통, 정복 뒤의 침묵 - 그는 그 모든 것을 시 속에 새겨 넣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역사 속에서
까몽이스는 워낙 전설적인 인물이기에 전설 같은 이야기와 전설 같은 사실이 같이 많이 따라붙었습니다. 결투를 하다 눈을 잃었다, 아니다 전투에 나가서 싸우다 눈을 잃었다는 전승이 있고 (모로코에서의 전투 중 부상으로 실명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구체적 사실은 불명확), 왕궁 앞 폭행 사건으로 구속된 기록이 있지요. 인도 파견 역시 사료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연애담이나 난파된 배에서 원고를 붙잡고 가까스로 탈출했다는 것은 전설에 가깝습니다.
'루지아다스'Os Lusíadas는 표면적으로는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해를 그린 영웅서사시입니다. 왕과 조국, 신에게 바치는 장대한 찬가, 포르투갈의 애국적 대서사시죠.
하지만 작품 후반부에 까몽이스는 그 찬가 속에 날카로운 경고와 슬픔을 숨겨둡니다. '국가의 영광을 노래하되, 그 영광이 인간의 오만으로 변질될까 두렵다'라고 했지요.
10가(第十歌)에서는 천상의 존재인 테티스(Tétis)가 다 가마에게 제국의 미래를 보여주는데, 거기엔 찬란한 영광과 함께 탐욕, 타락, 내전, 식민지의 고통이 함께 비칩니다. 즉, “이 영광의 대가가 무엇이 될지 아느냐?” 하는 질문을 남긴 거죠.
“Ó vós que têm de Marte o nome e a glória,
Por que dais causa à vossa própria história?”
(오, 마르스의 이름과 영광을 가진 이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들은 스스로의 역사를 더럽히는가?)
...
“Que mais vos hei de dar, ó pátria minha?”
(내 조국이여, 내가 너에게 더 무엇을 바칠 수 있으랴?)
https://www.scribd.com/doc/227499546/Luis-de-Camoes-Vida-e-Obra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Luis-de-Camoes
https://pt.wikipedia.org/wiki/Lu%C3%ADs_de_Cam%C3%B5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