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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로 유지된 침묵

조용한 독재자, 살라자르 01

by 마싸

밤의 리스본은 마치 시간을 잃어버린 도시처럼 고요하다.

테주강 위로 안개가 내려앉고, 전등빛은 오래된 돌길 위에서 노랗게 흔들린다.

골목 저편에서 트램이 지나가면, 쇳소리가 벽을 타고 천천히 번져간다.
모든 소리가 천천히 사라지고 오직 침묵만이 공기를 메울 때,

한 남자가 야간열차를 타고 들어온다.
스위스에서 온 라틴어 교사, 이름은 그레고리우스.
그가 찾는 건 이름 없는 한 인간의 발자취 — 아마데우 드 프라도,

살라자르 정권 아래에서 고뇌와 침묵 사이를 오가던 의사였다.


1200px-Night_train_to_Lisbon_(29360861151).jpg TGr_79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바로 이 순간, 독재가 지배하던 시대의 공기를 되살린다.

그레고리우스가 마주하는 리스본은 침묵의 도시다.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보다 침묵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모두가 조용한 때 - 너무 조용해서, 누가 문을 두드리기만 해도 심장이 멈출 것 같았던 시대.

공포는 총이 아니라 침묵으로 유지되었다.

침묵이 가장 안전한 언어였던 시기.


그 침묵의 시대를 설계한 사람이 바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 (1889~1970)였다.

그는 군인도, 혁명가도 아니었다. 경제학 교수로, 오히려 숫자와 신앙으로 세상을 읽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유럽의 수많은 독재자들 중 그만큼 오래, 그리고 조용히 권력을 쥐고 있던 이는 드물다.



경제학자 총리 – 살라자르의 등장

1920년대 초, 포르투갈은 혼란 속에 있었다. 제1공화국 체제(1910~1926)는 이상적으로 출발했으나, 짧은 기간 동안 40여 차례의 내각이 교체될 정도로 불안정했다. 인플레이션, 실업, 거리 시위, 파업... 국가는 방향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조용한 코임브라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살라자르였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사제가 되려 했던 그는 경건하고 절제된 생활로 유명했다. 정부는 1928년 그를 재무장관으로 기용했다. 단기간이라는 조건을 걸었지만, 순식간에 예산 균형을 맞춰버렸다.

“국가 재정은 가정의 살림과 같다. 들어오는 만큼만 써야 한다.”

이 단순한 철학으로 그는 포르투갈의 재정을 회복시켰고, 국민은 ‘기적의 교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1932년, 그는 총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가 만든 새 체제,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새로운 국가, 1933~1974)’ - 그는 민주주의의 혼란 대신, ‘질서·도덕·신’을 강조했다. 살라자르의 신조는 “모든 자유는 질서 안에서만 가능하다”였다.


Antonio_Salazar-1.jpg by Manuel Alves de San Payo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시끄러운 민주주의보다는 조용한 질서가 좋지... 어디 보자, 검열할 것들이..."



질서와 신의 이름으로 – 에스타두 노부

살라자르는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법과 제도를 이용해 전체주의 국가를 설계했다. 헌법을 개정하고,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검열했다.
언어는 그럴듯했다.
“우리는 국민을 위해, 국민 위에 있지 않다. 그러나 국민이 혼란 속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의 정권은 ‘가톨릭적 도덕’을 근간으로 했다. 학교에서는 순종과 근면, 가정의 신성을 가르쳤고, 여성의 사회 활동은 억제되었다. 신문은 하루 전 승인 없이는 인쇄될 수 없었고, 라디오에는 ‘국가가 승인한 음악’만 흘러나왔다. 비밀경찰 PIDE는 반체제 인사와 언론인을 감시했다.

고문, 추방,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인지, 거리에는 평온이 흘렀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지 않았다. 단지 평화를 원했을 뿐이다.”
당시 혼란의 시대를 지나온 이들에게, 질서와 침묵은 안도감을 주었다.
그래서 살라자르 정권은 단지 한 사람의 독재가 아니라, 공포 속에서 안정을 택한 사회 전체의 무언의 합의였는지도 모른다.




해리포터와 살라자르?

'해리 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 마법학교 기숙사 중 슬리데린이 있는데, 책 읽어보신 분들은 기억하실까요? 슬리데린 창립자의 이름은 Salazar Slytherin입니다. 살라자르Salazar는 포르투갈 및 스페인권에서 흔하지 않은 성씨로, 20세기 중반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표 인물은 사실상 이 독재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영국 작가가 ‘Salazar’라는 이름을 주요 인물 이름으로 택했다면, 그 선택에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역사적 연상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죠.


실제로 작품 속, 슬리데린은 순수혈통, 엘리트주의, 질서를 강조하고, 배타적 기숙사 문화라든가 '순혈주의'나 '마법사 혈통의 순수성' 유지에 대해 강한 입장을 보이죠. 볼드모트(Tom Riddle)는 슬리데린의 후손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슬리데린의 '순혈주의'를 극단적으로 계승해 인종적/혈통적 우월주의를 주장합니다. 독재자 살라자르 역시, 전통, 질서, 순수, 강한 국가를 강조했지요. 배타적 세계관을 가졌다는 데서 상당히 유사합니다.


작가인 롤링은 여러 인터뷰에서 “슬리데린의 이름은 단지 고풍스럽고 뱀과 어울리는 음운적 느낌이 좋아서 지었다”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포르투갈 독재자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하거나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팬 위키에서는 어느 정도 이를 의식하거나 암시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답니다.

“The name ‘Salazar’ evokes authoritarian imagery familiar to European readers, recalling António Salazar’s nationalist dictatorship in Portugal.” — Bethany Barratt, The Politics of Harry Pott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57.

“The first name ‘Salazar’ may have been inspired by António de Oliveira Salazar, the authoritarian Portuguese ruler (1932–1968).”— Harry Potter Wiki, Fandom




2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digitarq.arquivos.pt/documentDetails/3da7dbee885c4244937279e2fd97f9f3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17761153

https://pt.wikipedia.org/wiki/Ant%C3%B3nio_de_Oliveira_Salazar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Antonio-de-Oliveira-Salazar

https://www.portugal.com/history-and-culture/portugals-dictatorship-salazars-estado-novo/

https://www.museudoaljub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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