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궁금해! 02 - 독서실과 야자
2016년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 전엔, 한국은 "Korean War, IT, K-pop" 정도만 알았던 포르투갈인 신랑이 한국에 와서 궁금해하는 별별 것들. 그리고 거기에 답하다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한국 이야기.
신랑이랑 같이 길을 걷다 보면 평소 생각 안 했던 것들을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에겐 일상적인 풍경과 사물들이 신랑에게 낯설고 신기하니, 자연스럽게 이건 뭐야? 저건 뭐야? 그건 왜 그래? 하는 질문들이 나오고, 거기에 대답하다 보면 "그러게, 왜 그러지?" 하면서 갸우뚱하게 되는 일도 많다. (아무래도 포르투갈에서는 보통 그 반대가 된다 - 내가 질문하는 쪽, 신랑이 대답하는 쪽)
해서 같이 길을 걷다 보면 이야기할 거리들이 모자라지 않다. 독서실도 그런 예중의 하나!
같이 길을 가는데,
"The Premium Library 000, The Premium Study Cafe 000
마음먹음을 실천하는 학습공간 00 독서실
대구 00점, 00 건물 7층"
이라고 쓰인 스탠딩 배너 광고를 보았다. 아주 세련되고 현대적인 내부 인테리어 사진도 함께 인쇄되어 있었는데, 약 20년 전 내가 고등학교 때의 독서실과는 아주 달라 보였다.
"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랑은 비교가 안 되네. 이게 말로만 듣던 요즘 독서실인가 보네."
"이게 뭐야? 스터디 카페와 라이브러리? 그런데 책은 어디 있어? 사진에는 책이 안 보여"
"음... 내가 알고 있는 독서실은, 그냥 각자 공부할 것들을 들고 와서 공부를 하는 거야."
"아 그래? 한국인들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나 보네."
"뭐... 그, 그렇지.
내가 고등학교 때의 독서실엔 거의 학생들이 많이 갔어. 고등학생들.
나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는, 아침에 7시까지 학교에 가서, 10시까지 야자를 하고... 에, 야자가 뭐냐 하면, 학교 수업이 끝난 저녁에, 자유롭게, 그러니깐 자기의 의지대로 스스로 공부를 한다는 건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야자를 안 하면 선생님한테 혼이 나기도 하고, 또 다들 하니깐 그냥 하는데...
(아, 사전 지식이 없는 제삼자에게 객관적으로 설명을 하려니 상당히 구구절절하게 들리는구나, 야자라는 것이!!)
암튼, 그 야자를 10시까지 하고, 그러고 나서 이 독. 서. 실.이라는 곳에 가서 또 공부를 했지!"
"오 마이갓?!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는다고?"
"그럼, 그러고 나서 독서실에 가서 자정까지나, 더 넘어서도 공부를 했지. 음... 솔직히 정말 항상 공부를 한 건 당연히 아니야. 하지만 공부해야만 한다라는 강박에 충실했다고나 할까."
"아니, 대체 왜?!"
"... 그러게!!!"
그렇게 공부해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좋은 집과 차를 사고 등등...이라고 많이들 믿기 때문이며, 또 사실상 그런 경우가 많기도 하고, 한국은 무척 경쟁적인 사회여서 '적어도 남들 하는 만큼 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혹은 그런 것들에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해도, 딱히 거기에 반기를 든다는 것이, 적어도 나는 쉽지 않았다 등등...으로 길게 설명을 하다 보니, 살짝 현기증이 났다.
"그러게 말이야. 그때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생각한다고 해도 다르게 행동하는 것, 모두 다 못했네"
라고 말하고 나니 씁쓸한 감정과, 지금은 적어도 조금씩은 하려고 하고 있어라는 뿌듯한 감정이 동시에 든다.
"당신은 어땠어?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말이야. 공부 많이 했어?"
"전혀!
마지막 학년 때는 3과목만 수강했어. 아마 한 주에 총 12시간 정도 수업을 들었을 걸?!"
"와, 진짜?!"
"그럼, 주중 하루는 학교에 안 갔어, 수업이 없어서"
"와~! 아니, 그럼 대체 뭐 했어?"
"글쎄... 잘 기억은 안 나. 책도 읽고 정원일도 하고 뭐 그랬었던 거 같아. 취미활동 그런 거."
"아니, 보통 그런 거야? 다른 포르투갈 고등학교 학생들도 다 당신 같았어? 그게 평균인 거야?"
"다른 애들보단 내가 좀 더 공부 열심히 한 축일걸?! 아하하하. 난 모범생인 편이었거든.
공부는... 대학 들어가서야 열심히 했지. 공부하려고 간 거니깐."
마흔 줄에 접어든 지금이야, 인생이 여러 다른 갈래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 획일화와 서열화의 숨 막히는 몰아붙임이 결코 건강하지 않음을 안다. 아니, 돌이켜보면 그때도 무언가 막연하게 "이건 뭔가 잘못된 건데... 입시지옥이라는 것이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아"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스템에 반기를 들거나 혹은 시스템을 뚫고 나가기엔 너무 어리고 용기가 없어서, 또 사실 어떻게 뭘 해야 할지도 잘 몰라서, 그냥 "일단 대학에 가면 생각해보자" 하고 넘겼다. 그리고 가끔씩 야자 땡땡이, 학교 앞 분식집 먹방, 수업 시간에 딴짓하기 등 소소한 일탈로 숨통을 트면서 정신없이 큰 흐름을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 되었다.
대학에 가니, 고등학교 때만큼의 표 나는 강요는 없었지만, 서열화와 획일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짝을 이룬 경쟁에 대한 압박은 여전했고, 좀 더 교묘해졌다. 직장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먹고 살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는 나이가 되니, 점점 알아서 길들여지는 쪽이 되어갔다.
"대학에 가서 생각해 보자"하고 미뤄왔던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의 느낌은 점점 더 불편해졌고,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어!라고 느꼈을 때쯤에야, 차고 나올 수 있었다. 차고 나오니 후련하긴 한데, 생활의 불편과, 맨땅에 헤딩하는 서투름과, 자아에 대한 성찰을 뒤늦게야 하는 것 같다는 불안감 역시 있긴 하다. 물론 아직까진, "그래도 역시 잘 한 결정이야!"라고 느낀다 - 어찌 되었든 나를 마주하고,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가려는 쪽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좀 엇나갔다. 다시 독서실과 야자 이야기로 돌아와...
신랑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
"내가 지금까지 해 준 -나 어렸을 적- 얘기 있잖아. 야자니, 독서실이니... 그게 글쎄, 지금도 그렇대!"
"아하하하하, 무서운 얘기라며... 뭐야 그게?!"
"아니, 나는 야자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 설마 20년 후에도 여전히 있을 줄은 몰랐어. 좀 무섭지 않아? 심지어 그때보다 지금이 더 경쟁적인 거 같아.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것도 있대. 요즘 한국에서 엄청 인기 있었던 드라마가 있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