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전날, 서해안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뉴스에서는 ‘대설주의보’라는 건조한 단어가 흘러갔고, 밤새 창밖은 소리를 잃은 채 하얗게 쌓여갔다. 눈은 늘 그렇게 모든 것을 덮는다. 세상의 구별을 지우고, 경계를 흐리며, 잠시나마 만물을 무죄처럼 보이게 만든다. 서정주 문학관으로 향하기 전날 밤, 나는 그 눈이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이 문학기행의 핵심적인 은유가 되리라는 예감을 어렴풋이 느꼈다.
아침에 길을 나섰을 때, 들판은 아직 발자국을 허락하지 않은 채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고창으로 들어서는 길은 평소보다 더 느렸고, 차는 마치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내듯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질마재로 향하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이미 한 시인의 언어와 그 언어가 남긴 거대한 그림자 사이를 걷고 있었다.
서정주 문학관은 눈 속에 깊이 잠겨 있었다. 폐교(선운초등학교 봉암분교)를 개조한 건물의 윤곽은 쌓인 눈에 의해 부드러워졌고, 운동장과 길의 경계선은 사라져 있었다. 이 풍경은 어쩐지 '미당(未堂)'이라는 이름이 우리 현대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모호한 위치를 닮아 있었다. 분명 실체로서 존재하지만, 무엇을 어디까지 긍정하고 부정해야 할지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태라는 듯 눈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덮는다는 것은 보호이기도 하지만, 지독한 가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깥의 차가움과는 다른 농밀한 공기가 전해졌다. 전시는 조용히 시작된다. 연보, 낡은 사진, 생전의 손때가 묻은 육필 원고들. 그가 평생을 바쳐 벼려낸 언어들은 종이 위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서정주의 시 세계는 생의 가장 밑바닥, 즉 원형적인 층위에서 말을 건다. 그의 초기작인 화사집에서 보여준 흙과 피, 살과 숨의 감각은 한국 시사(詩史)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태어남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거대한 순환으로 엮이는 그의 세계관 속에서 인간은 문명적 존재가 아니라 꿈틀거리는 자연의 일부였다.
특히 ‘질마재 신화’에 이르러 그는 한국적 샤머니즘과 불교적 윤회관,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전설을 현대적인 시어로 완벽하게 부활시켰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그는 하찮은 사물 하나에도 온 우주의 인연 설화를 불어넣는 연금술사였다. 그의 언어는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유연하고 풍성한 가락을 가졌으며, 이는 그를 '시선(詩仙)'의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했다. 전시된 시 한 편 앞에 서서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시는 귀 안쪽에서 울렸다. 언어의 아름다움은 이토록 무력하게 판단을 유예시킨다.
그러나 전시의 중반부를 지나며 눈의 장막은 걷히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시의 숲 뒤편에는 그가 남긴 뼈아픈 역사의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1940년대, 그는 일제의 국민문학 운동에 가담하며 총후봉공(銃後奉公)을 외쳤다. "마쓰이 오장 송가"를 통해 가미카제 특공대를 찬양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천황을 위해 죽으라고 종용했던 그의 붓끝은 날카로운 흉기였다.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해방 후 그는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종천순일(終天順日, 하늘의 뜻에 따라 일본에 순응함)"이라는 궤변으로 자기를 합리화했다. 나아가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 대통령의 생일을 찬양하는 축시를 쓰고 텔레비전에 나와 그를 지지했던 행보는 권력에 밀착한 예술가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문학관 한쪽에는 이러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자료들도 배치되어 있으나, 그 무게는 시의 화려함에 비해 조심스럽고 절제되어 있다. 마치 ‘우리는 자료를 제시했으니, 비난할지 칭송할지는 관람객인 당신의 몫’이라고 말하는 듯한 방관자적 태도가 느껴졌다.
사실 이 문학관이 세워질 당시의 진통을 기억한다. 지역 시민단체와 역사학계는 반민족 행위자의 기념관을 공공 예산으로 세우는 것에 대해 격렬히 반대했다. 반면, 문학계 일부와 지자체는 그의 문학적 성취가 한국 문화의 자산임을 강조하며 건립을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문학관은 세워졌지만, 이곳은 '기념'의 공간과 '성토'의 공간 사이에서 여전히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나는 다시 문학관의 풍경과 밖의 눈을 번갈아 보았다. 눈은 모든 것을 같은 색으로 만든다. 높낮이를 지우고 상처를 가린다. 이곳의 전시 역시 어떤 면에서는 그러했다. 시적 성취와 역사적 책임이 평평한 평면 위에 나열되어 있을 뿐, 서로를 충분히 침범하거나 치열하게 논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과연 그렇게 평화롭게 나란히 놓일 수 있는 것일까.
전시를 모두 보고 나와 다시 눈 쌓인 마당에 섰다. 발자국은 아까보다 늘어 있었지만, 여전히 하얀 면적이 더 넓었다. 눈 위에 남은 발자국은 기온이 오르면 금세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언어 위에 남은 흔적은 결코 녹지 않는다. 시는 오래 남고, 시인의 이름은 그보다 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렇기에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 이상의 엄중한 책무를 지닌다.
서정주 문학관을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은 왜 이런 곳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다. 질문은 더 복잡하고 아파야 한다. 우리는 왜 이 시인을 지금, 이 방식으로 기억하는가 그리고 위대한 예술적 재능이 도덕적 눈감음과 결합했을 때, 우리는 그 결과물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가. 현재의 문학관은 찬양의 문법에 더 익숙해 보인다. 업적은 전면에 배치되고, 논쟁은 주석처럼 뒷면에 숨겨져 있었다. 이는 비단 서정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부끄러운 과거를 관리해 온 관성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늘 '천재'가 필요했고, 그 천재성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적 결함'이나 '역사적 과오'를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해 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문학관은 안식처가 아니라 전장이 되어야 한다. 서정주 문학관이 진정한 의미를 얻으려면, 그가 일궈낸 언어의 극치뿐만 아니라 그 언어가 침묵하거나 곡해했던 역사의 현장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해야 한다. 친일 시를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가 당대 청년들의 삶에 어떤 물리적 고통을 주었는지, 그리고 시인이 자신의 과오를 외면함으로써 우리 문학사에 어떤 도덕적 파산을 가져왔는지 안내해야 한다.
마을을 내려오는 길, 쌓였던 눈이 녹으며 흙길 위로 검은 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덮여 있던 것이 맨살을 드러내는 과정은 축축하고 질척이며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어떤 진실에도 닿을 수 없다. 서정주의 시 역시 그러하다. 덮어두면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하지만, 걷어내면 비릿한 역사의 냄새가 진동한다. 우리는 이제 그 비릿함을 감당하며 시를 읽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서정주는 위대한 시인인가? 그렇다. 그는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인물인가? 또한 그렇다. 이 두 문장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두 문장을 동시에 발음할 때에만 우리는 미당이라는 거대한 모순의 실체에 가까워진다. 문학관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서정주를 계속 읽어야 한다면, 그것은 무비판적인 찬미가 아니라 가장 치열한 비판의 방식이어야 한다
눈은 그쳤고,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멀어지는 문학관 건물은 다시 또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젠가 이곳이 찬란한 시어 뒤에 숨은 시인의 비겁함까지도 당당히 기록하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시의 아름다움에 취하면서도, 동시에 역사 앞에서 눈감지 않기를 배우는 장소. 그럴 때 비로소 질마재의 눈은 시인의 허물을 덮어주는 은폐의 막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투명한 거울이 될 것이다.
차에 오르기 전,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 눈은 모든 것을 덮지만, 시는 끝내 남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를 읽되, 덮이지 않은 질문 위에서 읽어야 한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나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작가소개 :
서정주(1915~2000)는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1936년 「벽」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한 그는 한국적 정서와 토속적 언어,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 초기에는 생명과 원초적 욕망,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노래했고, 이후에는 불교·샤머니즘·민족 신화를 아우르며 존재의 근원을 탐구했다. '화사집.'귀촉도''신라초' 등은 그의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대표 시집이다. 한편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과 군사정권 찬양 등으로 인해 문학적 업적과 별개로 윤리적 역사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정주는 찬사와 논란을 동시에 안고 있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복합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문학관 정보 ;
서정주 문학관은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 2-8에 위치한 문학 공간으로, 시인 미당 서정주의 삶과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곳이다. 문학관은 전시관과 시인의 생가, 주변 산책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창의 자연 풍경 속에서 그의 시적 정서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전시관에는 육필 원고, 초판 시집, 사진 자료, 연보 등이 전시되어 있어 서정주의 문학적 여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한국적 토속성, 신화적 상상력, 불교적 사유가 어떻게 그의 시로 구현되었는지를 주제별로 정리해 놓아 이해를 돕는다. 한편 문학관은 그의 친일 행적과 정치적 논란을 함께 언급하며, 문학적 성취와 역사적 평가를 병행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문학 애호가뿐 아니라 비판적 독서와 성찰의 문학기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문지가 될 것이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