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s.mark P01(본인)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늘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이다.”

by caus mark

‘우리의 상대는 오직 어제의 자신뿐이다.’
그 뻔한 말에 또 마음을 뺏겨 집을 나선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온도와 풍경을 배경 삼아,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모르는 나는 오늘도 등장한다.


주연이 나로 고정된 드라마.

호흡이 너무 길어 시청자도 나뿐인 대서사극의 한 편이 또 막을 올린다.
시나리오 없이, 카메라는 돌아가고
배경음악만은 내가 고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자유롭게 느껴진다.


우리는 매일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하나의 작품을 찍고 있다.
제한된 예산과 세트, 수정 불가능한 대본 속에서
배우이자 감독인 나는 오늘도 선택을 반복한다.
심지어 촬영을 멈추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꽤 오랜 시간 작품을 만들고 잊었다.
30년 넘는 시간의 필름이 쌓였지만,
기억나는 장면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최근 일주일간 찍은 에피소드 중엔
재미있게 본 것도 거의 없다.


문제는 배우일까, 감독일까.
결국 화살의 과녁은 하나라는 걸 깨닫고
씁쓸하게 웃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졌다.
새로운 인물과 배경을 등장시켜 시각적인 변화를 주고,
에피소드를 추가하며 흐름을 바꿔본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배경이 화려하고 인물이 많으면 좋은 작품일까?

좋은 작품은 아마도 의도가 분명한 작품이다.
제작자가 왜 이 이야기를 만드는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그 메시지가 끝까지 유지되는 작품.


하루라는 작품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만든다.
그것이 물건이든 감정이든,
하루의 시나리오 속에 녹아든다.

하지만 그 하루가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멈춘다.



우리는 모두 하루라는 드라마의
감독이자 주연이자 유일한 시청자다.
앞으로도 수십 년은 더 이어질 이 연재 속에서,
내가 만들어가는 작품이 대작이 될지 졸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의도만큼은 잊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