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카 Feb 10. 2021

중국의 머리엔 뿔이 없다

아서 크뢰버 <127가지 질문으로 알아보는 중국경제>


중국은 파악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공간도 넓고, 역사도 길면서 정보 소스도 적습니다. 미국은 주요 언론사에서 워싱턴과 뉴욕특파원 두 명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은 1명이거나 없습니다. 국제부 기사 상당수가 미국 언론이 전하는 미국 기사죠. 중국 기사는 그저 쇼킹한 해프닝을 전하는 게 많습니다.


그래서 각자 갖고 있는 이미지로 판단합니다. 많은 분이 중국을 싫어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면을 보고, 미국에 치우친 정보원도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중국이 주는 위협감 때문에 잘 안되길 바라는 '소망'도 더해집니다. 동시에 중국의 성장을 긍정하는 분들은 '필승론' 같은 과도한 희망을 갖고 있고요.



담백하고 정확하게 한 권에 담은 중국 경제

<127가지 질문으로 알아보는 중국경제>는 제목 때문에 선뜻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줄줄이 나열하거나 여러 작가가 옴니버스 식으로 쓴 책은 별로인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저 거대한 중국을 한 권으로 그것도 건조하고 탄탄하게 정리한 좋은 책입니다.


중국을 '미친 나라'로 보거나 '(곧) 위대해질 게 자명한 나라'로 보고 시작하는 다른 책과 다릅니다. 저자인 아서 크뢰버가 글로벌경제 분석업체 창업자여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튀어나온 부분을 사포질하듯 과장된 낙관과 비관을 다 반박합니다. 저는 삼국지에서 담백하면서 정확한 정세 판단이 빛나는 곽가를 좋아하는데요. 꼭 작가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중국 정치를 분석한 첫 장부터 상식을 깹니다. 보통 중국공산당은 경직성이 매우 강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소련 붕괴에 대한 공산당의 분석을 보면 놀랍습니다. ①충분히 시장 경제 메커니즘을 사용하지 않았고 ②선전과 정보 체제가 너무 폐쇄적이라 관료들이 내·외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반면교사의 포인트로 짚은 게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언론과 시장이었던 것이죠.


언론에 대한 언급도 재밌습니다. 국영 언론 중심이지만, 의외로 지방 언론의 자유는 꽤 허용합니다. 지방에서 일어나는 부패나 문제를 중앙이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초 신경이 살아 있어야 다친 걸 알 수 있듯, 그 역할은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죠. 이걸 보면 중국의 언론 통제는 단순히 독재국가의 흔한 '무조건 통제'보다 섬세합니다.



'환율 조작·그림자 금융·국영기업'이라는 편견

달러당 위안화 환율 차트. 중국 경제 성장이 이어지던 1995년 이후 약 10년 간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출처: 매크로트렌드

환율·금리 조작과 보조금 지급으로 성장했다는 시각도 반박합니다. 일단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위안화-달러 환율은 같았습니다. 이 시기는 경제가 굴기하던 때입니다. 환율이 급격히 상승한 2010년부터 3년동안도 세계 수출시장서 점유율을 1%p씩 늘렸습니다. 환율 조작 덕분에 성공한 경제라는 주장과 어긋나는 데이터입니다. 환율보다 이 기간에 있었던 약달러 기조, 중국의 생산성 증가가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지적 재산권을 훔쳐서 성공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너희도 다 그랬어'라고 반박합니다. 18세기에는 예수교 선교사가 중국 도자기 기술을 훔쳤고, 19세기에는 미국이 유럽의 기술을 훔쳤습니다. 20세기에는 한국과 일본이 서구의 기술을 역공학으로 분석해서 활용했죠. 이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경제성장하는 국가는 누구나 그랬다고 얘기합니다.


매년 돌아오는 그림자 금융 타령도 반박합니다. 일단 규모가 미국보다 훨씬 작습니다. 국제기구인 금융안정위원회에 따르면 중국의 비은행 자산 규모는 GDP의 9%입니다. 미국은? 60%입니다. 은행 중심 경제인 중국이 오히려 제도권 안에서 관리되는 자산 비중이 높습니다. 반면 '선진 경제'와 달리 자산구조화증권이나 신용부도스와프 같은 파생상품이나 구조화 금융기구도 없죠 오히려 구조적인 위험이 큰 건 미국이라고 지적합니다..


중국 은행에 대한 이미지는 국영기업 주머니 노릇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90년대 거의 0%였던 민간 대출 규모는 2014년 기준 40%를 넘었습니다. 증가 속도도 빠릅니다. 중국 은행 대출 특성상 예금과 대출이 사실상 일대일로 매칭된 수준으로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어 갑작스런 부채 위기 가능성도 낮다고 진단합니다. 언론이 애용하는 '빚더니 중국' 이미지와 다른 부분입니다.


이외에도 '늙어가는 중국', '국진민퇴(국영기업 재약진)'에 대한 오해를 데이터로 반박하는데 데이터가 탄탄하고 예측이 보수적이라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중국의 문제, 외국 기업 의존·불평등·기술 후진성


여기까지만 보면 '뭐야, 중국 낙관론자가 쓴 책이네' 할 수 있는데, 사실 책의 절반은 한계를 짚는데 할애합니다. 


중국의 모델인 동아시아 발전국가보다 불평등 문제는 훨씬 심각하고 개선 가능성도 낮다고 보네요. 서구나 미국에서는 중산층이 시민 다수를 차지합니다. 불평등 개선 요구도 높고 역동적이죠. 반면 중국에선 20% 내외에 그칩니다. 더 공산당에 영합하면서 소수의 기득권을 지키는 경향이 강합니다. '20대 80 사회'라는 책에서 기득권 20%의 공고함을 지적했는데, 중국은 그 정도가 더 심각한겁니다.


한국·일본과 달리 미국의 기술을 마음껏 들여올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국기업 중심으로 키운 경제도 약점입니다. 여전히 수출 대부분이 외국 기업이 찍어 판 상품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름만 대면 알수있는 중국 기업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심지어 내연기관 자동차조차도 제대로 못만드는 게 '1만불 국가' 중국의 현실이라고도 지적합니다.

중국 1위 통신망 업체 화웨이. 중국공산당이 사실상 소유한 회사라는 의혹이 크다.

전 이 부분 읽으면서 "화웨이랑 융기실리콘 같은 기업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통신망과 태양광 업계에선 큰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곳이죠. 그런데 곧바로 '이와 달리 중국 기업들은 복잡성이 덜한 기술집약적 산업에서는 큰 우위를 보여준다. 특히 고객이 소비자가 아닌 기업일 때 더욱 강한 면모를 보인다. 자동차 부품, 발전 설비, 통신 네트워크 장비 등이 대표적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국가가 나서서 키워주는 일부 B2B 제조업이 한계라는 거버니다.


저자는 서구의 '중국 필패론'은 부정하지만, 정보 교환이 제한된 정치 구조는 결국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합니다. 근본적인 한계죠. 중국이 1만불을 넘어 2만불, 3만불로 가려면 더 많은 혁신은 필수입니다. 자유로운 정보 교환이 필요한거죠. 또 수 억명에 이르는 농민의 도시화 문제도 해결해야 하며, 도시민과 토지 소유권이 없는 농촌의 빈부 격차 문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경제 규모 1등 중국' So what?

127가지 질문을 던진 끝에 아서 크뢰버는 이렇게 맺습니다. '중국은 세계 1등 경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봐야 미국인 소득의 4분의 1에 불과한 저소득 국가입니다. 1등을 했다는 건 그저 중국이 인구가 많다는 뜻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을 존경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문화적 영향력은 전무하며 오히려 국내 문화는 한국 문화에 침식당한다고 합니다. 이 책이 2014년에 나온 책인데 그때부터 한류의 영향력은 컸나 봅니다.


중국은 온순하게 국제 경제 질서를 따르며 '상인'의 멘탈리티로 성장했습니다. 아서 크뢰버는 많은 동맹국과 국제기구, 국제법으로 쌓아둔 국제 질서를 고려하면 미국과 중국의 일대일 규모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중국이 일원으로서 할 일을 하면 국제사회엔 좋은 일이라는거죠. '중국은 카이저 빌헬름 황제 치하의 독일이 아니며 소비에트 연방의 환생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얼마전 한 연구기관서 2028년쯤 중국이 미국 경제 규모를 넘어설 거라고 예측했죠. 중국이 빠른 시일내에 (아마 예상보다 빨리) 미국의 경제 규모를 제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변하는 건 별로 없을 거라는 전망에도 동의합니다. 오히려 저성장에 진입한 한국에는 기회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빈사 상태였던 경제가 살아날 수 있었던 건 중국의 급격한 성장 덕분이었습니다. 경제의 축이 동아시아로 오면 좋은 일이기도 하고요.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 국가처럼 치열하게 경제성장을 했고 또 문제도 많은 나라, 이렇게 중국을 '보통 국가'로 보는 게 가장 좋은 자세가 아닐까요. 저자의 주관대로 과장하는 책이 아닌 이런 담백하면서 탄탄한 책이 많이 출판되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근마켓이 중고나라보다 30배 비싼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