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 너무 쉬워진 시대에, 군중 속 개인으로 남아보려는 기록
이 글은 어떤 입장을 세우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적어두기 위한 기록이다.
나는 내가 군중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에 과몰입하지도 않고, 언론을 맹신하지도 않는 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읽는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기사보다 댓글을 먼저 보고, 사실보다 반응을 먼저 훑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멈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방식이 더 빠르고 편했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이미 정리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뉴스는 설명보다 단정이 많다.
조건보다 결론이 먼저 나오고, 맥락보다 태도가 앞선다.
누가 옳은지를 말하기 전에, 누구 편에 설 것인지를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대답하게 만든다.
나는 점점 “이해했다”기보다 “정렬됐다”는 감각을 더 자주 느꼈다.
복잡한 설명을 끝까지 읽는 대신,
확신에 찬 문장을 고르고, 그 문장을 말해주는 사람을 신뢰했다.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는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이 변화가 정치 때문인지, 언론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 때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뉴스를 읽는 방식이 예전보다 훨씬 감정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확신은 안도감을 준다.
특히 불확실한 시기에는 더 그렇다.
모호한 설명보다 명확한 적이 편하고,
조건을 따지는 말보다 단정적인 말이 마음을 놓이게 한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점점 “누가 맞는가”보다
“누가 시원한가”를 기준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를 조금씩 한쪽으로 기울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러워진다.
혹시 이것마저 또 하나의 입장이 되지는 않을지,
또 다른 확신으로 소비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지금은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한 가지 태도만은 붙잡아보려 한다.
분노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추고,
확신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더 남겨두는 것.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왜 이렇게 쉽게 확신을 전염시키는지,
그리고 그 확신이 왜 그렇게 빨리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려 한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군중 속에서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록이다.
다음 기록은 다음 주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