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에서 취재 프로그램 할 떄였는데, 학생들 구해준 어민들을 인터뷰 해보잔 얘기가 나왔다. 몇 시간동안 전화를 돌려서 어찌어찌 대마도 주민 분이 인터뷰를 해주신다고 섭외가 됐다. 바로 녹음기 들고 일단 진도로 내려갔다. 밤에 도착했는데 취재진이 몰려서 진도 안에는 잘 수 있는 숙소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진도대교 타고 나와서 해남에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4시쯤 택시를 타고 다시 진도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택시가 잠깐 멈췄었다. 그땐 몰랐는데 진도 대교를 건너던 유가족들을 스쳤던 거였다.
오전에 팽목항에 도착했는데 사고로 모든 배편이 중단됐다. 대마도에 가려면 먼저 조도라는 곳에 들어가서 다시 배편을 갈아타야 했는데 조도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실상 취재가 어렵겠다 돌아가려는데 MBC 중계차 한 대가 배에 실리고 있었다. 보도국에서 준비한 배 편으로 보도국 취재진이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보통 작가들은 명함이 없는데 취재프로그램은 하도 소속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서 파둔 명함이 있었다. 덕분에 보도국 배편을 얻어타고 조도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조도에서는 대마도로 가는 배편이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조도에 내리니 모든 배편이 끊겼다는 안내를 받았다. 인터뷰 해주기로 했던분은 그 사이에 취재진 연락에 질려서 인터뷰 안하겠다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멍 때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배가 끊긴 섬이었으니까. 몇 시간 지나고 조그만 배가 한 대 들어왔다. 대마도로 들어가는 배라고 했다. 배편이 끊겨서 인근 섬 주민들이 오갈 수 있게 마련된 배 편이었다. 신분을 밝히고 사정을 얘기하니 일단 태워주신다고 해서 대마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궁금증이 많아 이런 저런걸 사정을 물어보셨다. 유독 짐이 많은 어르신이 계셔서 배에서 내릴때 도와드렸는데, 이장님의 어머님이셨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또 구구절절 사정을 얘기했다. 사고 나고 며칠 뒤여서 이장님도 방송 취재진이라면 질리고 질린 이후였다. 계속해서 내 신분을 물으셨고, 심지어 방송국에 소속이 맞는지 통화까지 하고서도 못 믿겠단 눈치셨다. 어차피 배가 끊겨서 나가지 못하니까 저녁에 같이 술이나 먹고 자고 가라고 거실을 내주셨다. 난 거기가 당연히 이장님 댁인줄 알았는데 다음날 돼서야 알았지만 이장님 댁도 아니었다. 그냥 다른 아저씨네 집인데 사랑방 처럼 거기들 모여 계셨던 거였다. 저녁이 되니까 거실에 몇몇 주민분들이 모였는데 인터뷰를 거절하셨던 분도 만날 수 있었다. 주민분들이 워낙 취재진에 반감이 심해서 취재는 포기하고, 그냥 술이나 마셨다. 사고 현장에 나가셨던 분들은 술을 마시다가 많이 우시기도 했다. 애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뉴스에선 실컷 인터뷰를 해가고 엉뚱한 얘기만 한다고 화도 내고 그 불똥이 나한테 튀기도 했다.
술을 많이 마셨는데, 일어나니까 이장님이 짠하게 보고 계셨다. 방금 진도 나가는 배가 지나갔다고. 오늘도 못 나갈거 같으니까 밥 먹고 놀다 가라고 하셨다. 이미 많은걸 포기한 상황이라 나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 집에는 초등학생 딸이 있었는데, 아침에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함께 밥 먹고 등교를 했다. 분교가 있었는데 선생님도 한 분, 학생도 한명 뿐이었다. 나도 같이 학교에 갔다. 분교는 학생 한 명이 다니기엔 꽤 컸다. 이 아이가 졸업하면 학교가 없어진다고도 했다. 학교에 있다가, 바다 보러 나갔다가. 아저씨들이랑 담배 피면서 수다 떨다가. 그러다가 이장님이 와보라길래 갔더니 배에 시동이 걸려 있었다. 조그만 통통배였는데 섬이나 한바퀴 돌고 들어오자며. 사고 지역이랑 가까워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섬 주변을 돌아봤던 거였다.
그날도 술을 꽤 마시고 잤던것 같다. 거북손을 따서 끓여주신 국을 안주로도 먹고, 밥때 국으로도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다음날엔 혹시나 싶어서 일찍 일어나서 항구 쪽에 나가 있었는데 지나는 배는 없었다. 아침밥을 먹는데 이장님이 그래도 일은 하고 가야하지 않냐며 인터뷰해주실 동네 동생 한분을 데려오셨다. 외지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신 분이었는데, 살아오신 이야기도 듣고, 사고때 이야기도 들었다. 말씀을 수려하게 잘 하시는 분이 아니기도 했고, 워낙 취재진에 경계심이 많으실때기도 했고. 나도 반 이상은 일하기를 포기한 상태여서 결국 방송으로 내기는 어려웠다. 점심때까지 항구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외신들을 태운 배가 정말 많이 왔었다. 일본 방송이 참 많이 왔었다. 들어오는 배는 있는데 나가는 배는 없어서 오늘도 못나가나… 싶었는데, 조금 큰 배 한척이 들어왔다. 수색에 참여하고 싶어서 왔다가 돌아가는 민간배였는데, 팽목항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또 사정을 한참 얘기하고 얻어탈 허락을 받았다. 시간이 없어서 정말 허겁지겁 이장님이랑 아저씨들하고 인사를 하고 섬을 빠져 나왔다. 섬에서 며칠을 보냈더니 그땐 집에 가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팽목항에서 정말 한참을 걸어 나와서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탔던 것 같다. 차가 끊겨서 택시타고 해남에 갔고. 해남에서도 목포까지 나가서야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탈 수 있었다. 막차 직전인가 겨우 타고 올라왔던것 같다.
몇 년 지났다고 기억이 헷갈리긴 한다. 대마도에서 하루를 잤는지 이틀을 잤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헷갈리는데 핸드폰에 찍혀 있는 사진 시간들로 오전, 오후 일정들을 생각해보니 이틀이 맞는것 같다. 취재는 엉망에 방송도 못내고, 한 이틀을 밥이랑 술만 얻어먹고 왔다. 감사한 마음은 표시하고 싶어서 묵었던 집에
따님 드시라고 간식거리를 잔뜩 보냈는데, 같이 보낸 편지를 읽고 간식 주문했던 업체에서 주문한거 이상을 보태서 보내드렸단 답도 받았었다.
매년 이 날이면 그때가 기억나는데 이젠 백업을 날려서 사진도 몇 장 없고(눈치 보느라 많이 찍을 수도 없었다), 썼던 원고도 없고, 점점 희미해진다. 가끔 방송국 사람들이랑 술 먹을때 내가 더 힘들었네 고생배틀이 시작되면 꺼내서 얘기하는 정도. 나는 그런 날이었다. 거북손은 그 이후로 한 번도 못먹어봤다. 재워주고 밥도 챙겨주셔서 지금도 그때 만난 아저씨들 감사하다. 건강하시길. 벌써 2020년이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