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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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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Oct 07. 2020

장맛비를 맞고 있자면
떠오르는 잡념들.

「효원」 128호

삼한사온(三寒四溫).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부 아시아의 겨울철 날씨가 그렇단다. 누가 그랬던가. 삼한사온은 지금의 장마철에도 적용된다. 3일은 한날 비가 오고 4일은 온종일 비가 온다. 일주일 기상예보 가득히 차 있는 비구름을 설명하기 딱 좋은 말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매일이 축축한 하루의 연속. 장마는 우리가 외출하는 것을 망설이게끔 한다. 약속을 잡기 전, 유리창에 부딪히는 물방울의 유무를 살피는 것이 낯설지 않다. 우산이 채 가려주지 못한 몸 곳곳에 흔적이 남는 것. 생각만 해도 싫지 않은가.

     

이렇듯 몸이 활동 범위를 줄여나갈 때, 생각은 반대로 그 반경을 넓혀나간다. 평소에 일관된 한두 가지에 쏠려있던 생각의 세포들은 꽉 막힌 터널을 벗어난 차들과 같이 뿌리를 뻗어가고, 방을 가득 메운 습한 공기처럼 꾸덕하게 머리 속 공간을 메운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장마란 참 신기한 존재다. 사색에 젖어 촉촉하게 젖은 뇌는 과거의 박했던 추억을 몽글하게 포장하기도 하며, 갑작스레 팟-하고 떠오른 상념에 정신을 사로잡히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그것의 시작점을 떠올리려고 해도 도통 알 수 없다. 고개를 꺾어 하늘을 바라보더라도 비를 뿌리는 구름의 뿌리를 정확히 알 수 없듯. 다소 뿌리 없이 시작한 이 글은 그런 내용이다. 장마, 그리고 장마와 이어진 경험, 추억, 잡념.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일본 침수 소식을 접하며

     

손님도 적겠다, 어머니와의 단란한 식사를 하기에 알맞은 가게였다. 메뉴는 알싸한 맛이 일품인 회덮밥. 밖에선 추적하게 비가 내리는데 날생선이 무슨 말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 영화 <인셉션>에서 조셉 고든 레빗이 말했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가 생각난다”는 비유가 참이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것이리라. 꼬들한 회의 식감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 소닥했던 가게의 공기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것의 뿌리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침수에 대한 소식. 생각보다 피해가 컸다. 곧이어 보인 자료화면은 정제된 앵커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급박해 보였다. 흙탕물이 마을에 들어차고, 나중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물 한가운데에 건물들이 들어선 것 같은 모양새가 나왔다.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말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저런 참사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그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인 듯,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내내 우리의 입에서는 일본 침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배수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는 등의 말들. 이렇게 별 생각 없이 했던 말들은 집에 도착해 습관적으로 켠 TV를 보곤 싹 들어갔다. 부산의 도심에서도 침수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구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배수시설은 그 한계를 토로하듯 도심 한가운데에서 흙탕물을 뱉어내고 있었고, 애꿎은 자동차들이 도로를 이탈해 머리를 처박았다. 그 옆에서 우산을 팽개친 사람들이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와 어머니는 불편하게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무안한 듯 우리가 나눴던 대화가 틀렸음을 인정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집이 산에 있어서 잘 느끼지 못했을 뿐, 우리의 관심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했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찾아왔다. 무엇을 향한 미안함일까. 남의 일로 치부해버린 일본 침수 피해자들? 아니면 일어날 수 없다고 멋대로 정의 내려버린 부산의 피해 소식? 연민도 동정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에 꼭 들어앉았다. 불편함은 뉴스가 끝나고 이어진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까지 이어졌다. 밤이 깊어져 어머니가 잠자리에 들고, 혼자서 기사를 찾아봤다. 부산 침수, 홍수라는 간단한 키워드 하나에도 수많은 검색 결과들이 얼굴을 비췄다. 스크롤을 따라 내려가던 중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7년 전의 온천천 범람. 그러고 보니- 하고는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장맛비와 내가 이어진 하나의 악연. 너무나도 지독해 평생을 술자리 안주 삼아 떠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던 사건. 내가 이날의 일을 어떻게 잊을까. 장마 때문에 입대한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 혹시 들어나 보았는가. 그 사람이 바로 여기 있다.

     


날 최전방으로 몰아세운 장마라는 놈

     

“넌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 군대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받아봤을 질문이다. 물론 이 질문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조금 곤란하다. 대개 ‘별로 궁금하지는 않지만 내가 지금 심심하니 시간이나 좀 녹여봐라’는 의도가 녹아있다고 봐야 한다. 나도 언젠가 이 질문을 받았더랬다. 평소 같았다면 ○○○병장님 보고 싶어서 왔다고, 본능적으로 이곳에 지원했다고 ‘군 생활’을 했을 터지만, 어쩐 일인지 그 질문의 주체가 중대장님이었던지라 기억을 더듬어봤던 경험이 있다. 이곳이라 하면 남쪽 지방에서는 구경도 못 했던 뾰족한 산들이 사방에 널려있고, 산양과 멧돼지가 날카로운 절벽 위를 뛰어다니는 곳.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그러자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기억들이 있었다.

     

때는 약 3년 전. 그날의 나는 기분이 꽤 좋았었다. 국방의 의무를 사회복무로 대체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나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시력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신체 등급표 상으로는 4등급, 즉 사회복무로의 조건에 부합하는 교정시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시력검사 자체가 가지는 객관성의 부족 때문에 최소 2년 전의 시력검사 기록이 필요했고, 수소문 끝에 단 하나의 안과 기록을 찾아낸 것. 해당 안과의 문을 열기 전 설레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심호흡을 몇 번이나 들이켰던가. 한 걸음 한 걸음이 설레었다. 사회복무요원을 향한 전진이랄까.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이곳을 나설 때의 나는 곧 사회복무‘요원’의 자격을 갖춘 남자가 되어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한낱 코흘리개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과 기록 찾으러 왔어요. 이 한마디를 전했을 뿐인데, 원무과 직원분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황한 듯 키보드를 두드리시더니 누군가를 찾으며 자리를 비운 직원분. 거기서부터 조금 이상했다. 인간의 본능은 무서운 법. 왜인지 땀방울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끝내 등과 맞닿은 옷자락이 눅눅해질 무렵, 아까의 직원분이 연세 지긋한 분과 함께 다가오셨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지긋한 분이 운을 떼었다. “혹시 5년 전 장마철에 있었던 홍수 기억나세요?”

     

지금으로 따지면 7년 전의 일. 온천천의 기록적인 범람이 있었던 그때를 말씀하시는 듯했다. 당연히 기억한다. 온천천이 넘쳐 올라와 동래 롯데백화점 1층에까지 물이 들어차고, 4차선 도로에서는 오리 일가족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풍경을 잊을 수가 있나. 당시 1층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집에 들어오려고 울컥대는 똥물 덩어리를 무력하게 바라보며 제발 비가 멈추기를 기도했더랬다. 기억한다는 나의 말에 직원분이 조금은 안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평온한 그 얼굴에서 쏟아지는 말들이란. 나에게 너무 잔인했다. 당시에 안과의 기록실이 지하에 있었는데, 온천천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그간의 기록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는 것.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다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나들의 심심한 위로를 뒤로하고, 난 군 입대를 신청했다. 그리고 한 달 후 군복을 입었다. 이것이 내가 자연재해에 처음으로 부닥쳤던 경험이었다.

     

다시 중대장과의 대화로 돌아와서. 어쩌다 이곳까지 왔다는 질문에, 나는 ‘장마’라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의아하던 표정을 짓던 중대장님은 뒤이은 나의 설명에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민선아, 너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나와 함께 나라를 지킬 운명이었나 보다!” 그 말에서 느껴진 너무나도 순수한 진심에, 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하얀 설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얗게 옷을 갈아입은 동물들이 뛰어다녔다. 그래, 그때의 장마가 아니었다면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겠지. 정말로 아름다운 세계라고 생각했다. 옆자리에서 나 때는-을 시전하시는 중대장님만 빼고.

     


내 머리에 떨어진 한 방울은 어디까지 흘러갈까?

     

폭우가 쏟아지는 밖. 집을 나서기 전 우산을 고른다. 믿음직하게 생긴 놈을 하나 골라잡는다. 투명하지 않고 검게 물들어 위를 제대로 가려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좋아, 오늘은 너에게 몸을 맡겨 보겠다. 공동현관문을 열자 거센 빗소리가 들린다. 이제껏 도로 위에 쌓였던 먼지가 씻겨 내려간 듯 새까맣기만 했던 아스팔트가 반짝이고, 그 위에 우산을 쥔 내 모습이 비친다. 우산을 펴자 그 위로 느껴지는 빗방울들. 톡톡거리며 노크를 하고는 이내 작은 물골을 이루어 우산 밑으로 떨어진다. 일부 겁 없는 것들은 검은 천 자락을 뚫고 내 머리에 떨어진… 내 머리에? 고개를 드니 구멍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에 송글하게 맺힌 물방울도. 점점 크기를 키워가던 물방울이 떨어진다. 내 머리에. 그렇다. 하필이면 골라도 하자 있는 놈을 고른 것이다. 우산 위로만 이어지던 노크 세례가 내 피부에 전해졌다. 곧이어, 물길이 두피를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바짝 깎아 짧은 내 머리는 아무래도 물방울들을 잡아둘 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머리에서 목으로, 팔뚝을 따라 이어지던 물길은 손가락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는 툭- 떨어졌다. 그것을 좇다 보니 자연스레 도로 구석을 흐르던 물길에 눈이 갔다.

     

내 몸을 훑고 간 놈아. 내 체취를 품고는 떠나간 놈아. 잘 가라! 하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이내 궁금증이 하나 피어올랐다. 방금 떨어진 그놈, 1호는 어디까지 흘러갈까? 물방울에 이름까지 지어주고는 괜히 센치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2호, 3호가 차례로 낙하하고 있었다) 1호는 아마 저 물길에 합류했을 거다. 도로의 모퉁이를 흐르는 물길은 하수구를 따라 온천천으로 들어가겠지. 거기서 다른 물방울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금방 수영강이 나올 테고. 수영강물은 곧 해운대 바닷가로 이어진다. 비가 많이 올 때면 쉽게 불어나는 강물과 달리 바다는 불지 않는다. 달의 인력으로 인한 물의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만조와 간조의 움직임에 따라 물방울 1호의 행동반경도 크게 넓어진다는 것. 가는 김에 태평양까지 가버려라! 내 체취를 가득 품은 물방울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상상을 하고 있자니. 짜릿하다. 인간은 정복 욕구가 있다고 하던데. 드넓은 대양에 내 자취를 남기는 것에 쾌감을 느낄 줄이야.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나온 것에 내심 안도한다. 기왕 남기는 체취,  땀 냄새보다는 향긋한 바디 워시 내음이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잡념. 물고기는 비를 반가워할까?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움직임의 범위를 줄여나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물고기들은 불어난 물속에서 한층 자유로워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들에게 더 넓은 집을 선사해주는 단비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비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센치해지듯이, 꾸리한 생각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다음에 이 주제로 글 한번 써봐야지 하며 혼자 킥킥대는데, 문득 티셔츠의 목이 축축해진 것이 느껴졌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을 실제로 경험할 줄이야. 손끝에서 다이빙하는 물방울의 이름이 대략 50호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어느덧 시간은 30분이 흘렀고, 나를 기다리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에는 분노에 찬 욕설이 눈에 띈다. 1호와 함께 태평양까지 흘러간 잡념을 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우산을 쓰는 이유

     

비가 오는 날이면, 운동화보다는 샌들이나 슬리퍼가 끌린다. 아끼는 신발이 비에 젖어 흐물해지는 것이 슬픈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라고 하면 맨발에 느껴지는 찹찹한 물의 감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비 소식이 있는 것을 안 이후에는 하루의 착장을 신발에 맞추곤 한다. 날을 맞춰 입고 싶었던 옷들은 잠시 미뤄놓고, 신고 나갈 샌들과 슬리퍼에 어울리는 것으로 골라 입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칙칙하고, 또 펑퍼짐한 옷과 샌들을 매치하는 것을 즐기는데, 그 때문일까, 비 예보가 연이어지는 장마철에 나의 착장은 다소 샌님 같아 보이게 된다. 그렇게 보이는 것을 무릅쓰면서도 굳이 샌들을 신는 이유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이 있을 것이다.

     

발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빗물을 느끼고 있자면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단편적으로나마 떠오른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발견한 비 웅덩이에 괜히 발을 넣고 참방참방. 함께 걷던 친구가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하지만, 돌이 발에 껴서-라고 얼버무린다. 실은 그 감촉이 좋아서 그러면서 말이다. 어릴 적에는 그 감촉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데 우산을 쓰지 않았던 기억. 하늘에서 내려오는 굵은 빗방울들을 맞으면서 즐겁게 웃어댔던 기억. 그러고는 집에 들어가 흠뻑 젖은 옷을 벗느라 낑낑거렸던 기억. 그랬던 기억들만큼은 너무도 행복해 오래도록 되새겨진다.

     

하지만 나는, 또 우리는 그때의 소중했던 추억을 그저 간접적으로 느끼고 싶어 할 뿐, 그대로 재연하지 않는다. 발을 웅덩이에 넣고 흔들기만 할 뿐, 우산을 접은 채 비속을 뛰어다니지는 않는다. 비를 맞으며 마구 뛰어놀면 그 때문에 걸렸던 감기에 고생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코를 닦고 있자면 반드시 날아왔던 엄마의 질책 또한. 그래서 우리는 우산을 쓰고, 젖더라도 몸의 일부분만이 비에 닿는 것을 허용한다. 아픔을 경험한 후에는 가림막을 찾는 것.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 또한 이렇게 바뀌어 가는 듯하다.

     

첫사랑은 우산을 쓰지 않아 아프다. 온몸을 내어준다.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것에 미숙하고, 자신의 마음을 상대하는 것도 벅차기에. 그 결과는 이미 잘 알지 않나. 우리는 몸살감기에 시달리고, 지인들의 뒤늦은 조언을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아파한다. 마음껏 좋아했다가 미련 없이 아파했던 경험은 마음 깊은 곳에 남는다. 그리고 찾아온 다음 사랑들에는 우산을 찾는다.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고, 젖더라도 조금만. 쏟아져 내리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 아프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가 아닐까.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서 덜 아프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대상이 이성이든, 혹은 친구이든 간에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릴 적 온몸이 흠뻑 젖도록 받던 사랑을 항상 그리워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때문인지,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우산 너머로 맞고 있자면, 종종 우산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방울들이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싶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잠시 접어두고 마구 뛰어다니고 싶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런 생각들은 속에서 갈무리되고, 우리는 우산을 쥔 손에서 힘을 빼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은 비 오는 날 굳이 샌들을 신고 나와 과거를 추억하곤 한다. 우산에 몸을 감춘 채. 웅덩이만 참방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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