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엄마는 자주 하소연하신다.
“요즘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아.”
친구 누구는 수술을 받았고, 멀리 사는 사촌은 입원을 하셨다며 걱정이시다
며칠 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지인이 있으면 마음이 쓰인다며 그 이야기를 반복하신다.
그럴 때면, TV 소리는 예전보다 커져 있고, 전화벨도 몇 번은 더 울려야 들으시는 듯한 모습이 눈에 밟힌다.
걸음걸이에는 예전에 없던 느릿함이 묻어나고, 어깨는 조금 더 굽어 있다.
세월은 어느새 엄마의 뒷모습을 차분히 적셔간다.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에게 큰소리로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 때면, 내 목소리에는 피곤한 기색과 날선 짜증이 배어 나온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내 성급함이 엄마에게 상처가 되는 순간이다.
그런 날은 하루가 유난히 길고 무겁다.
이런 날이면 문득 헷갈린다.
너무 빨리 늙어버린 엄마에 대한 서운함인지, 아니면 젊고 다정하시던 그 시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인지.
희미해진 기억 너머에서 철없던 어린 날의 내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한 가닥에 오십 원”
그때의 엄마는 젊었다. 흰머리가 막 한두 가닥씩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보물찾기하듯 흰머리를 뽑았고, 엄마가 미처 찾지 못한 흰머리를 내가 찾아 내었다며
자랑하듯 한 가닥씩 바닥에 늘어 놓고는 돈계산을 했다.
"오늘은 여섯 가닥. 그러니까 삼백 원."
덜 희어도 곧 하얗게 될 거라 우기며 오십 원을 더 챙기기도 했던 철없는 어린 나였다.
가끔은 흰머리가 더 빨리, 더 많이 나기를 바라기도 했다.
시간은 참 빠르다.
어릴 적 철없던 바람은 자취를 감추고 , 이제 엄마는 백발의 노모가 되셨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짜증 섞인 목소리.
그 날선 말이 엄마 마음 어딘가에 닿아 오늘 엄마의 발걸음과 어깨를 더 무겁게 만들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야 깨닫는다.
앞으로 주어질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음에도,
나의 고질병 같은 막내의 말버릇은 엄마에게 화를 내던 그 순간마저 내 이기심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데 허비하고 말았음을.
이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인 엄마.
어린 시절, 내가 아플 때면 무릎에 앉혀 열을 재고, 약을 먹여 주시던 분.
지금 나는 가끔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필요한 것은 온라인으로 주문해 드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살아오면서 내 뒤에서 조용히 중심을 잡아주던 분.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조용히 혼자 견디고 계신다.
굳은 날이면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있는 자식의 안녕을 기원하시며,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혼자 동네를 걷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 한켠에서 홀로 누워 계신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조금씩 느려지고, 약해져 가는 존재.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에 그 시간을 더 잘 보내야 한다고 매일 되새긴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한 번 더, 더 크게, 더 다정하게
“엄마”라고 부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고.
이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의 미안함과 그리움,
그리고 엄마가 지금까지 조용히 짊어지고 온 크고 고요한 사랑을 대신 전해주기를 바라며,
다가오는 긴 연휴, 가까이서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욱 값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