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vs 엄마

(질문) 아내가 엄마가 될 때는 언제일까?

by 글 쓰는 나그네


얼마 전 어머니가 패혈증 증세와 신장에 이상이 생겨 입원하셨다. 차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하며 고통을 호소하시다 응급실로 실려 갔다. 작은누나와 자형이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처음 병원 갔을 때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시다 지금은 조금씩 움직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자녀는 많지만 홀로 되신 어머니가 유할 곳은 마땅치 않다. 스스로가 불편해하시며 자식들 집보단 사시던 고향 집이 편하시다고 하신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는 싫다는 표현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팔십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다른 이의 손을 잡고 싶지 않으신 게다. 그 다른 이가 자녀들일지라도.


퇴원 후 자주 통화하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목소리만 들으면 어떤 환경인지 가늠이 간다.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시고 먹는 것부터 제대로 못 드시는 듯하다. 통화내용을 가끔 듣던 아내가 먼저 말한다.


“어머니 댁에 가자. 밑반찬거리 챙겨 드려야겠어. 아무 날짜라도 좋으니 자기가 잡아!”


아내의 말 한마디에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말에 살가움과 정겨움이 묻어있다. 사람으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에 충실할 수도 있지만, 마음만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의지가 고마울 뿐이다. 밑반찬 몇 가지 만들어서 고향 집으로 향했다.


전날 내려간다고 전화하니 절대 오지 말란다. 어머니는 항상 그렇다. 다섯 시간 정도 거리라 멀다며, 돈 많이 든다며, 고생한다며 오지 말란다. 자신의 말만 하고 끊어버린다. 예전엔 다시 전화해서 그래도 간다며 전화했었는데 이제는 서로의 말만 하고 끊는다.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은근히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안다. 막내에 대한 정이 누구보다 많다는 것도, 보고 싶다고 마음은 말하지만, 입으로 내뱉지 못한다는 것도.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신다. 그냥 아무것도 필요 없이 안전하게 오라고 하시는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물을 사 오라고 하신다. 항상 보리차 끓여 드시는 분인데 물 끓여 드시기에도 힘겨우신가 보다. 마음이 짠하다. 그러면서 괜찮다는 말만 계속하신다. 나도 나이 들면 마음에 없는 말을 저리도 잘할까?

잠깐 이마트에 들려서 이것저것 샀다. 아내는 마음이 부산하다. 시골집에 가서 챙겨드려야 할 것들, 꼼꼼하게 메모한 내용을 한 손에 꼭 쥐고 살핀다. 낳아 준 어머니는 아니지만 ‘시’ 자만 붙으면 부담스럽다던 아내의 모습이 아니다. 시댁이 아닌 친정에 가는 모습이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구부정하게 흰 어머니가 앉아 계신다. 반갑다며 나와서 반기시던 모습은 없어지고, 방에 앉아서 맞이하신다. 그래도 좋다. 이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반길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손주들 안 데려왔다며 한마디 하셨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기에 에둘러 대답했다.


“교회 여름행사가 있어서 못 왔어요”

“애들 보고 싶었는데…….”


말끝을 흐리시는 모습에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싶었다.

아내는 도착하자 냉장고 속부터 들여다본다. 이것저것 많이 있지만 버리고 정리해야 할 것이 더 많다. 이제는 점점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못 버리고 쌓아만 두면 썩는다. 썩는 줄 알면서도 못 버리는 게 어머니의 삶인가 보다. “아깝다. 절약해야 한다”가 삶에 녹아들어 삶 전부가 되셨다. 그래서 자신의 것, 자신의 몸뚱이도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서만 사용하시다 이제는 고장이 난 상태가 되셨다. 냉장고엔 먹다 남겨진 국과 음식들로 차 있다. 거의 죽 위주로 드셔서 힘이 없으시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으신다. 그래도 오늘은 아들 내외 온다고 힘이 났다고 한다. 저녁엔 밥과 반찬 그리고 큰누나와 자형이 가져온 싱싱한 야채와 함께 먹었다. 모처럼 만에 잘 드셨다며 만족해하셨는데 너무 많이 드시는 것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밤에 주무시다 답답하셨나 보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방으로 옮기셨다. 새벽 4시 반쯤 깨어 어머니께 가보니 뒤척이시다 부르신다. 소화가 안 되고 온몸이 가려워 한숨도 못 주무셨다며 하소연하신다. 이렇게 힘들다고 얘기하신 적이 없으셨는데 진짜 힘겨우신가 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 목욕탕 갈란다. 한참을 못했다.”

“네? 이 시간에 어디로 가요?”

“연초에 가면 안 하겠나?”

“지금은 안 하죠!”

“그러면 너 아침 일찍 먹고 가자!”

“그 몸에 어떻게 목욕해요. 어머니 혼자서는 못해요”

“때밀이 아줌마한테 하면 된다”

함께 있던 아내와 조카도 일어났다. 물끄러미 듣고 있던 조카가 안 된다며, 미끄러지면 어떻게 할 거냐며 걱정했고 나 또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잠깐 옥신각신하며 정적이 흘렸다. 얼마나 힘드시면 이 새벽에 시골 마을에서 목욕탕 가자고 하실까?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하고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어머니 제가 집에서 씻겨 드릴게요”

“......”

“조금 불편하셔도 저한테 맡겨 주세요. 지금 목욕탕 열지도 않았고 제가 할 수 있어요. 어머니!”


며느리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 싫어하시는 어머니가 좋다고 하신다. 의외다. 얼마나 힘겨웠으면 저리도 쉽게 동의하실까. 그 마음도 아팠지만, 아내의 말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평소의 아내에게서 보지 못한 행동이다. 이제는 진짜 시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 엄마로 생각하게 된 걸까? 착각이든 혼돈이든 무엇이면 어떠냐? 아내의 따뜻한 마음에 하얗게 지새운 어머니의 마음이 열렸으면 되었지.


따듯한 물을 받기 위해 보일러를 켰다. 보일러에 에러 메시지가 뜬다. 이것저것 쉽게 되는 게 없다. 어쩔 수 없다. 우선 물을 받아 끓여서 목욕물을 데웠다. 그 데워진 물을 들고 욕실에 붓고 또 부었다. 욕실에 먼저 들어가신 어머니를 뒤따라 아내가 들어갔다. 살포시 보이는 문틈 사이로, 어머니의 등을 조심스럽게 미는 아내의 모습이 참 곱다. 한여름이라 더운 욕실에서 시어머니와 막내며느리가 함께 목욕하는 모습이 어릴 적 어머니가 큰 대야에 나를 목욕시켜 주시던 모습과 오버랩된다. 세상은 이렇게 돌고 도나 보다. 시어머니가 어머니, 아니 엄마가 되는 모습처럼.


착각이어도 좋다.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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