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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Oct 25. 2018

말과 말

  '그 말은 내가 하는 건 괜찮은데 네가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싶을 때가 있다. 그 설명하기엔 좀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좀 조리 있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정리된 문장.


말에도 주인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말이 수십 개는 되지만 그중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좋아한다.


  말은 누구의 입에서든 나올 수 있지만, '다 너 위해서 하는 말', '내가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 같은 구실을 붙여 아무나 주인이 있는 말을 뺏어 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극사실적 발언과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난으로 사람을 해친다.


  내 계획, 내 꿈, 내 미련함, 내 인생, 내 일부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그것들의 주인이니까. 가끔 내가 타인의 앞에서 그것들을 꺼내 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것들에 대한 심사와 평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다. 조언을 바란 적도 없는 내 일부에 대해 제멋대로 판단과 조언을 붙이는 말들은 상당한 상처가 된다. 내가 바보가 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떤 이는 아빠가 편찮으시다는 나의 말에 '젊으신데 뭐, 금방 나으실 거야'라고 한 적이 있었고, 어떤 이는 내 작은 신념에 대해 '그건 오지랖이지, 네가 그렇게 신경 쓰는 거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 외에 수많은 이들이 친구 혹은 가족, 지인, 인생선배의 명찰을 내보이며 나를 유난스럽고 철없는 바보로 만들었다.


  나에게 상처를 입히겠다고 작정하고 흘린 말이 아니란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도 잘 안다. 타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로 숱하게 상처 입다 보면 이상형 목록에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항목이 생긴다. 달콤한 말을 할 줄 아는 게 아니고 내 기분을 어느 정도 배려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러니까 내 기준에서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는 말이다. 어느 행동보다도 말 한마디에서 사람의 인품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음이 없으면 말은 예쁠 수 없다.


  예쁜 말은 기분이 좋을 때 들으면 나를 더 기쁨에 취하게 하고, 슬플 때 들으면 꽁꽁 숨겨뒀던 눈물샘을 건드려 나를 울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간혹 어두컴컴한 지하에 들어온 한 줄기 빛이거나 시멘트 바닥에서 피어난 풀꽃 한송이였다. 마냥 즐거운 하루에 맛있던 연어 초밥도 좋고, 마냥 기뻤던 틈 사이 혀끝에 녹던 솜사탕도 좋지만 너무 힘겹던 날에 기울였던 술 한 잔의 쓴 맛과 울고 싶던 날에 들었던 말 한마디가 가장 좋다. 모든 것 중에 얻기 힘든 건 '예쁜 말'이다. 얻기 힘든 만큼 한 마디의 예쁜 말은 수명이 길다.


  예컨대 내가 상심해 있을 때 '힘내' 한마디로 상황을 종결시키는 사람보다 '진짜 고생했네, 얼마나 힘들었어' 하는 사람이 좋다. 내가 기쁠 때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 잘했어 정말' 해주는 사람이 좋고, 내가 슬플 때 '됐어, 울지 마. 눈물 아까워' 하고 등을 돌리는 사람보다 '그래, 울고 털어버려. 마음껏 울어' 해주는 사람이 좋다. 혹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꽃을 보니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같은 말도 참 좋다.


  예쁜 말을 좋아한다는 건 예쁜 가사가 담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자꾸 곱씹게 되고 들을 때는 황홀에 빠진 것 같은 기분. 어디에 반듯한 글씨로 적어두고 힘들 때마다 찾아보고 싶은. 잊었다가도 불쑥 생각나서 나를 살리는.


  말이 예쁜 사람은 당연하게도 말의 주인이 누군지 안다. 이 말은 내가 할 말이고, 저 말은 상대가 할 말임을 아는 것이다.  배려있게 조언할 줄 알고,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생각할 줄 알며, 쓴 말을 하고 난 뒤에는 쓰라린 상처를 보듬어 줄 줄도 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나도 예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말에 상처 받고, 마음은 무뎌져가고 있다. 말에 베인 상처로 숱하게 아팠던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 흉이 지고, 결국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상처 주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가워지는 이곳은 요즘 달고 예쁜 말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예쁜 말을 하는 사람 찾기가 힘들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이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참, 안타깝고 외롭고 쓸쓸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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