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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Oct 19. 2018

꿈이 뭔가요?-2

  초, 중, 고등학교의 산을 넘었으니 나는 이제 세상살이에 조금 초연해졌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내가 기특했다. 여전히 꿈에 취해 살았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던 나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현실이란 건 온갖 장애물을 다 섞어놓은 난이도 대재앙의 던전이었다. 난 고3이 되어서야 다음 스테이지 이름이 '현실의 도입부'라는 걸 알아차렸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내 장래희망은 작가와는 일개 연관성도 없는 '공무원'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장래희망'이란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상관없었다. 나에게 '장래희망'이란 장차 미래에 내가 가져야 할 직업쯤으로 인식됐다. 지금 생각하면 종잇장보다 가벼운 팔랑귀였다. 부모님의 제안이 마치 숙명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결국 대학 진학조차 생각하지도 않던 내가 대학 입학 원서를 작성하고 있었고, 공무원 시험 과목이 뭔지도 모르는 나는 관련 학과로 보이는 과에 가리지 않고 원서를 넣어재꼈다.


  멍청했다. 멍청한 나를 '이건 부모님이 원한 일이니까, 난 착한 딸이니까' 하며 합리화시켰다. 사실 부모님은 내게 제안을 했던 거지 강요를 했던 게 아닌데도 나는 그랬다. 운명이라 생각했던 내 꿈과는 그렇게 허무하게 헤어졌다. 미련이 남아 문예창작과에 원서 하나를 넣었었는데, 실기에서 보란 듯이 낙방한 후로는 미련도 버렸다.


  그리고는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나는 글 한 줄 쓴 적이 없었다. 다이어리도 2개월 뒤면 책장 한 구석에 쓸쓸히 박혔고, 빌려보는 책도 많이 없었다. 쓴 거라고는 레포트뿐이었다.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에만 충실했다. 나는 확실히 내 꿈과 완벽하게 헤어졌다. 그런 줄 알았다. 누군가 꿈이 뭔지 물으면 나는 그냥 '생각해 본 적 없어요'라고 답했다. 조금 친한 사람이라면 '예전엔 작가가 꿈이었어요' 했다.


  대학생활 조각조각 살피면 파란만장했다고 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서는 크게 의미 부여할 만한 것은 없었다. 시끄러웠지만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무미건조했다. 졸업을 앞두고 다른 동기들이 취업 걱정을 할 때 나는 다시 4년 전과 같은 혼란에 빠졌다. 고3이었을 때의 문제가 객관식이었다면 이제는 철저한 주관식이었다.


  이제 과제를 내주는 교수님도 없었고 반드시 해야 할 공부도 없었다. 4년의 퀘스트를 깬 나는 다시 허공에 내던져졌다.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고 공허함에 갇혀 부유하다가 불쑥.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을 내뱉고 싶은 욕구가 다시 피어올랐다. 꿈과 헤어진 지 4년 반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재능이 없어', '취직을 해야지' 따위의 말로 나를 뜯어말렸다. 그렇게 천만번의 망설임 끝에 나는 결국 다시 펜을 들었다. 구질구질한 미련을 마저 끊어내기 위함이었다. 도전해보고 처참히 실패한 후 미련을 접을 요량이었는데, 몇 년의 공백이 생각보다 거대했다.


  꿈과 다시 친해지기까지 3년의 시간이 있었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 지쳐 '역시 나는...'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애를 써보고 나를 자책도 해보고 충분히 괴로워하고서야 느꼈다. 나는 이야기를 풀어야만 행복한 사람이었다. 구질한 미련 이래도 좋았고 뒤끝 있대도 좋았다. 헤어져있던 4년 반, 다시 가까워지기까지 3년. 어쩌다 멀고 먼 길로 돌아왔지만 다시 되돌아보아도 꿈이 있다는 건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꿈이 형체를 찾다 간다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설레는 일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나는 지금 나의 이야기와 내 환상 속 이야기를 어느 곳에든 늘어놓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면 고달프다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고달프긴 하다. 글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신나게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좋아해서 견딘다. 좋아해서 고달픔을 떨쳐낼 수 있다. 전교 1등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와 같은 말이겠지만, 이게 인생의 작은 진리다.


  나는 현재 글을 단 하나의 업으로 삼은 사람은 아니지만 행복함을 느낀다. 나는 이제야 행복하다. 그래서 난 내가 존재하는 동안 힘껏, 하고 싶던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모조리 읊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누군가 친절하게도 내게 꿈이 뭔가요, 물어준다면 난 이제 서슴지 않고 답할 수 있겠다.


 "제 꿈은 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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