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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Oct 18. 2018

꿈이 뭔가요?-1

  나는 나에게 직업으로서의 '꿈'이 생겼던 그 날을 제법 또렷하게 기억한다. 초등학생 신분을 가졌던 시절, 앞으로 내가 언급할 수도 있는 가정사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전학을 다녀야 했다. 환경이 자꾸 바뀌어서 전학이 지겨워질 무렵 우리는 한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마지막 전학은 5학년 2학기가 되던 해였다. 입학하던 날, 엄마는 그날따라 내 머리칼을 더 꽉 묶어주었고 아빠가 지름길이라고 알려준 길은 상당히 음산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새로 입학한 학교는 날씨 탓인지 구조 탓인지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나는 전학 간 첫날부터 같은 반 친구에게 미움을 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말을 걸면 표정이 냉랭해졌다. 누가 봐도 날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유를 모르니 나는 주눅이 들었다. 나 자체가 잘못인 것만 같았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당사자로부터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와 가장 친한, 소위 말하는 '베프'였던 친구가 전학생이 오니까 전학생에게 관심이 쏠렸고 전학생이랑만 놀아서 그 전학생이 싫었다고 했다. 하필 나는 그 이야기에서 '전학생'을 맡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나의 마지막 전학과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첫날부터 졸업까지 순탄치 못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미리 스포일러 하자면 '심적으로 어렵던 시절에 나에게 글 쓰는 행위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는게 결말이다. 상당히 뻔하지만 대개 꿈은 그렇게 생기니까.


  전학 간지 이튿날부터 나는 빠른 속도로 '낮은 자존감'과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차가웠고, 나는 처음부터 학기가 끝날 때까지 이방인이었다. 처음 내게 말 걸어준 친구 두어 명이 있었지만 원래 사람이란 어리석어서 눈앞에 꽃밭이 있어도 주변에 어둠이 깔리면 공포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나이도 어렸으니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그 외 서른 명에게 받는 눈총이 내게 더 영향력 있었다.


  집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말수는 적어졌고 우울해하고 혼자 울고. 다들 내가 사춘기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서,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아서 아무도 나를 그 어두운 우물 안에서 구해주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학교나 졸업하면 되었다.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고. 그렇게 6학년이 되었다.


  나는 조용히 출석만 하다가 졸업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쯤. 학교에서 의례적으로 치르는 독서활동에서 담임선생님은 '책 속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라는 주제를 내주었다. 나는 내 인생작 『어린 왕자』의 장미에게 편지를 썼다. 제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어린 왕자에게 투정만 부리는 게 딱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라는 내용이었다. 주제넘기도 하지. 


  내가 쓴 독서노트는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도장을 받기 위해 내 손을 떠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의 편지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고 교내 방송실로 갔다. 내 독서노트가 방송을 탔다! 내가 직접 방송에 나간 것도 아니고 서툰 글씨가 빼곡한 독서노트만 TV 화면에 비쳤는데 그때 그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편지가 교내 방송에 나오다니! 타인의 목소리가 그것을 읽고 있고, 전교생이 저걸 듣고 있다니.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고작 12살 먹은 나는 재수 없지 않게, 겸손하게 자랑하는 방법을 배우질 못해서 그 방송을 보는 내내 입꼬리를 끌어내리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몇몇 애들은 나를 보며 '오~'하며 환호를 보냈지만 나는 반응할 수 없었다. 칭찬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함박웃음을 참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빨개진 얼굴로 인자하게 미소만 짓고 있었지만 내 인생의 첫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그날의 환희를 잊지 못하고 학생기록부 장래희망란에 항상 '작가'를 적었다. 나는 작가라는 꿈이 나와 찰떡궁합 내 운명인 줄 알았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 약 7년가량 나는 오매불망 작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며 살았다.


[꿈이 뭔가요?-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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