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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Oct 12. 2018

감정의 나이

  스무 살을 채웠을 무렵과 지금의 차이를 말하자면 한 서른 가지 내외가 될 것 같다. 눈에 띄게 변화한 부분 중 하나는 메신저나 SNS에 어두운 감정은 최대한 숨기려 애쓴다는 점이다. 아주 숨기지는 못하지만 스무 살 때만큼 격동적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내가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에도 성숙한 정도가 있다. 많은 감정 중에서도 특히 기쁨과 슬픔의 표출 방법에서 그 정도가 보인다. 편의상 간단히 분류해보자면 떠오르는 대로 내뱉어버리는 영˙유아기, 조금 생각해보고 드러내는 청소년기,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표출하는 청년기, 모든 것을 숨기는 중년기, 감정이 없는 노년기쯤이 되지 않을까. 이것을 우리는 이 글을 읽는 잠시 동안만 ―내 맘대로― '감정 나이'라고 정의하도록 하자.


  대학시절, 그러니까 나이는 성인인데 감정 나이는 영˙유아기에 머물러 있거나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쯤인 시절. 그 당시 감정 나이라면 당연하게 표출이 서툴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내 안으로 점점 파고들었고, 그 속에서 맴도는 문장을 쓰는 걸 즐겼다. 문장을 써도 풀리지 않는 감정은 SNS 게시글이나 메신저 상태 메시지로 드러냈다. 마치 '내 상태를 좀 알아줘', '누군가 내 기분이 왜 이런지 들어줘'하며 티를 내는 것처럼.


  저기 어디 쓰레기장 한 구석에 박혀있는 개똥보다도 못한 사람과 사귀었을 때는 더 심했다. 그때는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상태 메시지가 바뀌었다. '힘들다', '우울', 'ㅠ_ㅠ' 같은 문구들로. 하지만 대부분의 지인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묻지 않았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거나, 이미 내가 왜 힘들고 우울한지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사실 나도 누가 물으면 흔쾌히 대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무언가를 잊을 수 있도록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기를 기대했다.


  육체적 나이를 집어먹으면서는 내 어리숙한 행동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더 나이를 먹은 후에는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쏟아내기보단 감싸 안고 나와 대화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좋아하는 마음도 삼켰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싫어하는 마음도 숨기려 애썼다.


  그렇게 나는 '감정 조절을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방법을 습득했다. 좋은 감정만 적당히 표출하고, 슬픔과 고통은 속으로 조금 삼켜내는. 어른의 감정이 이런 게 아닐까 하며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그런 게 성숙함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네가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해도 돼'라는 말을 잘 하는데,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무조건 삼키고, 숨겼다. 이 모순을 해결하고자 나는 나에게만큼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그제야 과도기를 지나 청년기에 안착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상황이 불가피하여 쏟아내지 못했던 기쁨과 눈물은 혼자 있을 때라도 곱씹으며 분출해낸다. 감정의 표출에 상대가 필요 없었다. 사랑의 감정이 아닌 이상 그랬다.

  그에 따라 어른의 감정에 대한 정의가 조금 더 확실해졌다. 이제 나에게 어른의 감정이란 [상황에 맞는 감정을 표출하되 나 자신에게는 숨기지 않는 것]이었다. 감정은 묵힐수록 검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표출해야 할 대상이지만, 상황에 따라 표출하고 숨길 줄 아는 게 어른다운 감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감정 나이에 관한 노력을 이쯤 해두기로 했다. 감정 나 중년기까지 접어든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을까. 그러니 나는 지금만큼만 감추고 표출하기로 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노을이 아름답다 느낄 수 없으니까, 좋은 노래에 눈물 흘릴 수 없고, 기쁨에 도취하여 함박웃음을 지을 수 없으니까. 그런 건 내가 바란 인생의 모습이 아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먹을 육체적 나이에 비해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더라도 나는 평생 감정 나이만큼은 청년기, 기분이 좋을 땐 청소년기쯤에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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