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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Oct 11. 2018

위로의 방향

  2018년 1월 1일, 지웠던 인스타그램을 설치하고 떠오르는 짧은 문장들을 게시했었다. 1일 1 글이 목표였지만 새해 계획은 끝까지 지키지 않아야 인지상정이니까. 4월까지는 무리 없이 기록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무슨 뚜렷한 이유 없이 우울함이 최고치로 치솟았던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을 기점으로 한몇 달은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축 처진 마음을 질질 끌고 다녔다. 땅에 쓸리고 돌부리에 차인 마음을 아무도 수습해주지 못했다.


  그래도 1일 1 글을 잊지 않고 실행해야 했으니까 또 인스타그램 앱을 눌렀다. 잠깐의 흰 창이 비치고 어플은 곧 내가 팔로우한 사람들의 글을 불러와 나열했다. 분명 마음이 끌리는 글이 있는 계정을 팔로우해뒀었는데, 그때는 어떤 말도 내 마음에 닿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음이 꽉 닫혀있었으니 아무리 달콤하고 따뜻한 위로도 나에게 닿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 위에 마음과 같은 모양으로 널브러져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이는, 무의욕의 표본이 되는 그런 때가 되면 항상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굴뚝같은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 번은 남들보다 내가 평이한 인생을 사는 걸 텐데 뭘 굳이, 하는 생각에 참았고 한 번은 가격이 비쌀까 봐 참았고 또 한 번은 만나보지도 않았지만 아무도 내 속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일방적인 방어기제 때문에 그만뒀다.


  그 날은 그렇게 마음만 수만 번을 집어먹다가 행동으로 옮기진 않고 안 보이는 곳에 묻어두 3년 차에 접어들던 때였다. 한 밤에 또 찾아든 공허함에 들러본 인스타그램에서 타인의 게시글만 살피다가 내 피드를 한 번 둘러보는데 뭐랄까, 마음이 다시 말랑해지는 기분이랄까. 분명 마음을 움직일 만큼 대단한 문장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엄청 길고 애틋한 글도 아니었다. 그냥 나 홀로 주절거렸던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 읽는 느낌이었다.


  난 간혹 그렇게 별일 아닌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한 과한 양의 눈물을 쏟아낼 때가 있는데 그날도 그랬다. 내가 바랐던 사랑의 모양, 내가 바랐던 위로의 말이 그대로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처럼 우울의 세포가 많은 이들을 위해 문장을 게시해놓았던 건데 그곳에 모인 말은 되려 나를 위로했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은 조용하다. 저쪽 어디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정원이다. 가끔 관리인이 잡풀이나 뜯으러 들르고, 새로 들어온 씨앗이나 뿌려두는 정원. 나를 위로하던 나 덕분에 지금도 나는 계속해서 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저장하고 있다. 처음엔 나를 좀 알려보고자 시작했던 SNS가 이젠 나의 임시 전시장, 메모 보관함, 언젠가 또 힘겨워질 나에게 위로가 될 곳이 되었다.


  나를 위한 위로가 타인에게도 위로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고, 내 짧은 한마디 한마디가 꾸준히 쌓여 보기 좋은 전시장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제 남은 한 해의 목표는 조금 더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를 헤아리고 타인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하는 위로는 곧 나의 또 다른 목소리가 되어 내게 메아리쳐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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