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장하드를 정리하다가 옛날에 관심 있던 사람과 나눴던 카톡 캡처를 발견했다. 실소가 났다. 과연 이게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태도인가 싶어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단답 그 자체,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말투.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철벽 치는 거 아닙니다
나의 20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안하무인' 아닐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중화사상보다 더한 강한 자아를 표출하며 살았다.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다. 야생에 처음 나온 하이에나처럼 그게 뭐든 늘 덤볐다. 좋게 말하면 에너지가 넘쳤고, 나쁘게 말하면 건방졌다.
앞뒤 생각 없이 무조건 돌진하고 보던 행동파 인간에겐 모든 게 쉬웠다. 일도 사람도. 청춘에게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행운인지도 모르고, 내가 잘난 사람이라서, 내가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서 얻어낸 거라고 생각했다. 회의와 냉소가 몸의 70%를 채우고 있었을 때는 주변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곤 했다. 생각 없이 툭툭 던졌던 말 한마디가 칼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상처받고 싶지 않아 먼저 선빵을 쳤다. 미련이 없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니까. 바운더리에 들어오려 하면 날을 세우고, 철옹성을 더욱 견고히 했다. 그리고 스스로 쿨한 인간이라며 자위했다.
하지만 사람은 성장하는 법.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나는 사회화를 거쳐 드디어 겸손한 사람이 됐다. 여러 문제 상황에 맞닥뜨리고 해결하면서, 역시 세상은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일도 사람도 전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 걸 수도, 학습을 통해 세상의 험난함을 배워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깡통 로봇 같던 내게 따뜻함이 생겼다는 것.
운이 좋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 사랑과 이해, 배려, 관용을 배웠다. 한없이 예쁘고 멋진 이야기를 해주던 사람들. 나의 멋진 면을 봐주고, 응원해 주던 친구들. 그 덕에 마음을 나눌 줄 알고, 사람을 챙길 줄 알게 됐다. 30대의 시작과 동시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유해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이젠 사람 귀한 줄 아니, 지난날 아쉽게 놓쳐버린 인연들이 생각난다. 내 아픔에 취해 상대를 보듬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안하무인이었던 20대를 반성하며, 30대는 조금 더 겸손했으면. 베풂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