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시와 현실

앉는 법을 모른다 — 김수영 시 <거대한 뿌리>로부터

by 이제월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 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 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4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기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寅換)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로부터는 썩어 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 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김수영 시, 「거대한 뿌리」(1954) 전문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 전문입니다. 1964년 『세대』지(誌)에 발표된 이 시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역사에 대한 시인의 치열한 인식을 담고 있는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시에 대한 일반적 해석은 시가 구한말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 여행가 비숍 여사의 기록을 매개로, 우리가 흔히 '전통'이라 부르는 것들의 이면에 숨겨진 비루함과 생명력을 동시에 긍정한다고 합디다. 시인이 서구적인 세련됨보다 오히려 '전통'이라는 이름의 거칠고 투박한, 때로는 부끄러운 역사적 현실을 자신의 <거대한 뿌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실존적 결단을 보여준다고 합디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알 듯도 하고 말 듯도 합니다. 기분도 오르락내리락하고 생각도 오락가락합니다. 그것의 갈피를 잡을라치면 그게 꼭 그렇게 잡아야 하는 건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첫머리를 열고 나서는 제일구. 즐겨 곱씹습니다.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앉는 법을 모른다고? 아직도?

하필 앉는 법?

내가 말고 나-는?


그래, 그렇구나.

그러고서는 이내 앉는 법을 모르는 이 사람이

무지할 자유를 누리는 뭇사람에 비해 얼마나 민감하고

얼마나 연약하면서 얼마나 반듯한가를 생각합니다.

반듯하고 풀처럼 흔들리는구나 생각합니다.

시 속에서 나오듯 설령 다수의 방식을 모르거나 알아도 무시하고

저대로 한다 할지라도 그게 상관없는 강자(强者)가 있습니다.

그러나 앉는 법을 몰라 어찌할 바 모르는 이 시인은

약자(弱者)입니다.


시인은 천생(天生) 약자입니다.

약해서 쉬이 아픈 게 아니고

아파할 줄 알아서, 그 예민한 감각으로 피로하고

노동하는 자의 피로처럼 쉬면 나아지는 게 아니라

쉴 수가 없고, 숨 쉬듯, 존재함만으로 피로가 쌓이고 상처받으니까요.

아파할 줄 알고

둔감하지 않으려, 스스로 저항하고 있는 시인은

천생 약자입니다.


그리고 이 민감성은 책을 읽으며 저자와 대화하고

연애-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무수히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고 상처를 더 간직하니 어찌 약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기에

살아 있는 시인은 강자입니다.

모진 고생을 치르며도 살아 있으니 실은 강자입니다.

더 많은 이와 이어지고

더 많은 생과 합(合)할지니 큰 사람[대인(大人)]입니다.


약하고도 사니 그냥 강한 것보다 더 크고 강합니다.

이런 걸 위대하다고 하지요.

시인은 약하여 위대합니다.

앉는 법을 몰라 쩔쩔매면서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를 상상합니다.

불가능을 행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를

천상(天上)과 이어 줍니다.


김수영 시인은 더욱이 사다리도 아닙니다.

동아줄도 아닙니다.

에스칼레이터입니다.

마법의 포트키입니다.


거대한 뿌리를 감히 상상도 못한다더니

순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다는 말이지

시인은 가서 보고

만지고

한 입 물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그려.


그에 비해 나는

아직 앉는 법모릅니다.

말하는 법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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