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달빛독서

마르코 폴로. 주체이자 객체로서

by 이제월



이탈로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은 흥미로운 데칼코마니입니다.

딱 접어서 맞닿으면 나비처럼 대칭을 이루는.

그러나 나비 날개와 다르게 동시 발생하지 않고

한쪽이 다른 한쪽에 전사(轉寫, 영어: transcription)한.


칭기스칸의 손자이자, 네 번째 대칸, 중국왕조로는 원나라 시조인 쿠빌라이칸은

역사상 최대 강역을 통치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의 궁궐에는 지구상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넘쳐났는데

그들은 문화와 인종, 종교 등 모든 면에서 다채로운 이들로서

칭기스칸 이래 몽골의 칸들은 여러 종교의 인물들에게 토론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이들의 체험과 견문을 경청하고 질문했습니다.

가장 넓은 영지를 가진 이는

수도를 떠나 자기 영지에 갈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정복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정복한 자는

자기 세계를 직접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대신 그는 세계의 곳곳에서 온 이들로부터 그들의 눈을 빌려 대신 보고

대신 맛보고

대신 만져 봅니다.

쿠빌라이도 그러하였고,

그에게 가장 먼 데서 온 사람은

베네치아에서 온 마르코 폴로입니다.

지중해 세계는 그에게 낯설고 이상하며, 조금은 ‘떨어진’ 세계였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동방으로 떠났던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감방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구술하여

『동방견문록』을 썼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일 밀리오네’(Il Milione) 그러니까 ‘백만 가지 이야기’입니다.

곳곳에서 ‘불가사의의 서’라든가 다른 제목으로도 옮겨졌지만

가장 흔한 건 예의 ‘동방견문록’이고요.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는 않는 이 이야기는 ‘견문’(見聞) 그러니까 ‘본 것’과 ‘들은 것’을

아우르고 있어서 사실과 환상, 이해와 오해가 뒤섞여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본래 좀 허풍쟁이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보고 겪은 놀라운 것들은 그가 들은 것들의 진위를 판별하기를 방해하고

기이하고 이상한 것들조차 ‘그럴지도 몰라’ 하며 믿게 만들었을 겁니다.

고향을 떠난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 시절을 견디었고,

현대 이탈리아의 작가인 칼비노는

그 마르코 폴로를 상상하여

동방견문록과는 반대로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여러 도시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를 도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좀 더 현실적이다가 점차 환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쉰다섯 개의 환상의 도시들이 결국은 모두

그의 고향인 베네치아(Venezia)가 아닌가 상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이야기에 황홀하게 빠져들던 쿠빌라이가 더는 아니다,

너의 이야기는 이제 별로다 하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환상의 여행을 하던 중 내면의 여행, 자기 중심을 탐색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르코 폴로가 주체로서 쓴 책과

마르코 폴로를 객체 삼아 써낸 책 모두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어느 책을 먼저 집어도 좋습니다.

서로 닮았지만 정말로 하나가 원본, 하나가 사본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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