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블록체인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켰을까?
지난 3월 23일부터 7월 28일까지 대한민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인 국립현대미술관은 《불온한 데이터》 전시를 선보였다. 해당 전시에서는 오늘날 개인의 일상과 생각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감정마저도 데이터화시키는 현 사회의 디지털 환경이 가진 양면성을 드러내며, 이를 바탕으로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한 작가들의 예술적 시각을 소개하였다.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 다수는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선보이는 뉴미디어 아트 작품들이었으며, 그중 블록체인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선보인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조각이나 회화와 달리, 뉴미디어 아트의 기원은 이미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 ‘백남준’이 그 창시자이다. 1960년대 백남준이 미디어 아트를 창시했을 당시에는 비디오 아트가 기술 발달의 최전선에 자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오늘날 뉴미디어 아트 현장에는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햅틱(Haptic) 기술은 물론이며,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기술을 예술의 영역에 도입하여 대중들과의 교감을 시도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움직임은 예술이 과학 기술과 만날 때 새로움과 놀라움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과 움직임은 거대한 부를 쫓아가는 일반적 비즈니스맨 혹은 사업가들의 행보와는 굉장히 다르다. 이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메시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늘은 블록체인을 예술에 접목시킨 아티스트들의 수많은 작품들 중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작의 작품을 소개해 보겠다.
1982년 뉴질랜드 태생 작가 사이먼 데니(Simon Denny)는 기술적 유토피아를 홍보하는 영상 형태의 작품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What is blockchain)>(2016)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이 사회에 불러올 긍정적 가능성에 대해 시사한다. 약 3분에 달하는 영상에서 작가는 블록체인이 국가 간 경계를 허물고, 개인이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함으로써, 금융 거래에 있어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신뢰를 구축하는 기술이라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은행, 국가, 무역단체와 같은 제3의 중개인을 통해 거래에서 파생되는 정보를 신뢰하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던 중앙집권적 관리 시스템은 정부, 미디어, 그리고 기업과 같은 거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부패로 인하여, 소수의 권력층이 데이터를 위변조하는 것이 용이해짐에 따라 개인의 진실이 왜곡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개인 간의 신뢰는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작가는 근 미래 수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부터 탄생한 블록체인 기술이 무너진 개인들 간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할 것이며, 현 사회가 가진 불신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해결하여 탈 중앙화된 새로운 형태의 사회 구축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라 제안한다.
작가는 블록체인이 가진 특성 중 하나인 데이터 위변조의 불가역적인 부분을 바탕으로 개인들 간의 신뢰가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 보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특성의 맹점은 오라클(Oracle)이라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완전한 해결책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오라클이란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닌, 블록체인 밖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블록체인 안으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실세계와 블록체인 간의 연결고리라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상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1과 0으로 데이터화시켜 컴퓨터상에 입력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3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첫 번째,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세상에는 중앙화된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에게서 데이터를 받아와 어떻게 입력하도록 할 것인가? 두 번째, 만약 누군가에게 특정 데이터를 받았다면 우리는 그 데이터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세 번째,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받았다는 가정이 있을지라도, 데이터를 전송받는 과정에서 데이터의 위변조가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획일화된 기술적 해결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으며, 결국 이 과정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와 같은 지점에서 작가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유토피아를 구축하는 과정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해당 작품을 통해 진정으로 시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오라클 이슈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한 후에 프로그램을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순수히 인간의 역할에 달려있다. 결국 사이먼 데니가 바라본 기술적 유토피아에 대한 미래 사회의 방향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세계적인 뉴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모리스 베나윤(Maurice Benayoun)이 토비아스 클라인(Tobias Klein), 니콜라스 멘도자(Nicolas Mendoza)와 함께 작업한 새로운 신작 <가치의 가치(Value of Values)>(2019)는 인간의 감정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2016년에 소개되었던 브레인 팩토리(Brain Factory) 작업의 연장선으로서, 뉴로 헤드셋을 착용한 관객이 자유, 평화, 돈, 사랑, 힘과 같은 무형의 단어에 대해 상상할 때 인간의 감정에 기반하여 측정되는 뇌파를 3D로 형상화하여 마치 공장에서 나온 제품의 형태로 보여주었던 작품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였다.
새롭게 소개한 ‘가치의 가치’ 작품은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형상화한 감정의 형태가 가지는 가치의 가치를 보여준다. 작품에 참여하는 관객의 상상이 만들어낸 각각의 3D 형상에는 이름과 번호가 부여되며, 관객은 자신의 뇌파로 만들어낸 형상 ‘아이디어’의 소유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관객은 소유한 형상을 이더리움으로 변환할 수 있으며, 해당 형상을 판매 또는 교환도 할 수 있다. 작품은 기존의 참여형 작품에서 관객 스스로가 능동적 감상의 주체로 참여함으로써 경험을 소유하는 단계를 넘어 관객 스스로의 상상으로 빚어낸 형상을 하나의 작품으로써 전시하는 작가이자 큐레이터가 되는 경험과 해당 작품을 판매, 구매, 교환하는 콜렉터이자 딜러가 되어보는 확장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예술경제학 학문에서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항상 다루며, 철학적으로 가치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가지게 되는 중요성’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경제적 가치라는 척도를 기준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가치에 대한 개념은 문화예술에 있어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논하는 경제적 가치와는 상충되는 부분이 발생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문화예술이 가지는 가치는 경제학적으로 환순 가능한 단순 재화나 용역의 가치를 포괄하는 객관적 가치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시간을 포함한 주관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품 가치의 가치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고유한 가치이자 인간이 특정 단어를 형상화시켰을 때 생산되는 형상이라는 주관적 가치에 대한 개념을 객관적 가치로 보여주기 위하여 수치화하고 데이터화 시킨 후 이에 부합되는 경제적 가치를 블록체인을 통해 부여하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도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야기된다. 인간이 가진 감정이라는 고유한 가치를 데이터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할 때,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간주되었던 창작이라는 부분이 침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이 가진 감정과 생각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게 되는 기준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설계한 후, 특정 수식화되어 있는 기준에 의해 경제적 가치를 부여한 결괏값을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블록체인 기술과 뉴로 헤드셋 기계를 활용하여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측정한 후 이를 평가하고 계산된 값에 의해 인간의 감정과 생각이라는 가치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는 행위인 것은 아닐까? 감정과 생각 같은 주관적 가치를 객관적인 경제적 가치 척도의 기준으로 계산하고 평가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와 같은 수많은 질문들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 우리가 객관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었던 수많은 가치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새로운 가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은 사회 여러 부분에서 다양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이 미래 사회를 유토피아로 이끌 수 있다고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며, 디스토피아로 가는 지름길이기에 규제에만 급급할 수도 없는 이유는 블록체인이 현 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해결하고자 하는 현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기술이 세상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그 배경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불신이 팽배한 오늘날 개인은 자신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며, 세상은 더욱 각박해졌고 이로 인해 인간 고유의 가치로 여겨지던 감정이라는 정서적 가치는 예전만큼 그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사회 변화는 자본주의 극대화로 이어졌고 모든 것들의 가치는 숫자로 평가되기에, 이와 같은 경제적 가치 평가 척도에 부합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감정과 같은 가치의 추락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예술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을 바탕으로 한 소통을 끊임없이 제안한다. 미디어 아트의 역할은 단순히 기술과 예술의 결합에서 파생되는 예술성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과의 소통을 직접적으로 유도함으로써 관객의 가슴을 두드리고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바라보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시각과 이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중심에는 이 새로운 기술이 불러올 미래의 중심에는 ‘나’ 즉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기술로 인해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작가들은 그럼에도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미래를 더욱 긍정적인 유토피아로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가올 근 미래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의 세계 유토피아에 가까워질 수 있을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noder.foundation/blockchain-arts/
노더 구독하기: https://t.me/noder_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