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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Feb 15. 2020

왜 굳이 입양을 해야 해?

"왜 굳이 입양을 해야 해?"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강아지를 입양하자고 했을 때였다.



신혼 1년 차인 우리 부부는 둘 다 강아지를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키워왔었고, 그래서인지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강아지만 봐도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곤 했었다. 때로는 길거리를 걸으며 있지도 않은 상상 속의 우리 강아지 이름을 부르곤 했었다. (<두치와 뿌꾸>에서 따와 뿌꾸라고 이름을 지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첫 신혼집이었던 10평 남짓의 조그마한 투룸 빌라에서 작은 거실이 딸린 18평 남짓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소파를 둘 거실이 있고 집에 해가 든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만끽할 무렵부터 우리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강아지를 좋아하긴 해도 강아지를 키움으로써 오는 수만 가지 걱정거리와 불편함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우리 출근하고 나서 열댓 시간을 혼자 있어야 하는데 어떡하나, 분리불안이 있으면 어떡하나, 배변을 못 가려 집에서 냄새가 나면 어쩌나, 털이 많이 날리면 어쩌나, 짖음이 심해서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혹시 아프거나 할 때 병원도 비쌀 텐데, 여행 갈 때는 누구한테 맡기나 등.


이러한 걱정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우리 둘 모두 강아지를 통해 얻는 행복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들은 우리가 어떻게든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리불안, 배변, 짖음? 우리가 교육해보고 안되면 훈련사한테 도움을 청하자. 털 날림? 청소를 자주 하고 자주 빗겨주자. 병원비? 예산 잡아서 미리 조금씩 저금해두자. 여행? 가족들도 다 강아지 좋아하니까 가족한테 맡기든지, 아니면 애견 호텔 있으니 맡기면 되지.


이렇게 우리 둘 나름대로 결정을 내린 이후, 우리는 주말에 종종 분양 샵도 가보고 어떤 강아지를 키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018년 4월 무렵이었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을 먹는데 아내가 말했다.

"우리 강아지, 입양할까?"

"응? 입양? 강아지 입양?"

내가 놀라 되물었다. '강아지 입양'이라는 단어를 내 입으로 말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응, 요즘 네이버 이런 데에서 강아지 입양할 사람 찾는 글들 좀 보는데, 너무 귀엽고 예뻐. 왜 이런 애들을 버리지?"

"입양이면 새끼 말고 좀 큰 애들 입양하는 거야?"

"응, 거의 다 유기견들이야. 사람들이 버리거나 주인 잃어버린 애들."

"..."

나는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그리곤 말했다.

"아니, 왜 굳이 입양을 해야 해?"

"그냥, 불쌍하잖아."

"물론, 불쌍하긴 하지. 근데 굳이 입양을 할 필요까지? 분양 샵도 있고 새끼 때부터 키우는 게 배변훈련이나 이런 것도 잘 시킬 수 있고 좋을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아내와 달리 나는 분양 샵에 있는 강아지들이 일명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점, 그리고 강아지 공장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알지 못했다. 분양 샵이라는 말을 들은 아내는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분양 샵은 별로야. 걔네는 강아지 공장에서 오는 애들이잖아. 그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지 않아. 물론 분양 샵에 있는 애들도 불쌍하긴 해.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서 떨어져서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저 조그만 케이스 안에 갇혀서 상품이 되어버리는 게. 그래도 분양 샵에 있는 애들은 어리고 예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찾잖아. 근데 유기견들 이미 다 큰 애들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도 않는대. 불쌍하지 않아?"

"그래, 알겠어. 근데 꼭 입양을 해야 할까? 강아지를 키우는 게 뭐 한두 달 키우고 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키우게 시작하면 10여 년을 함께 해야 하잖아. 여보가 말한 것처럼 분양 샵에 있는 애들도 불쌍하니까 우리가 보살펴줄 수도 있는 거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버려진 강아지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강아지를 버린 사람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버려진 강아지에게도 버림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짖음이 심하다든지, 분리불안이 심하다든지. 이런 것들은 교육하면 될 텐데, 혹시 얘네들은 교육이 안될 정도로 심했던 게 아닐까? 아니면, 설마 이런 문제 말고 더 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아내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강아지를 키울 거면 조금이라도 더 불쌍한 애들을 키우는 게 좋잖아. 어딜 가서도 사랑받을 애들보다 꼭 우리가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애들을 키워야 우리도 더 행복할 것 같은데."

"..."

아내는 내 대답을 기다렸지만, 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불쌍한 강아지를 키우자는 아내의 말에, 만약 남의 이야기였다면 백번은 동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키울 강아지라고 생각하니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내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듯 이야기했다.

"입양이 정 그러면, 일단 입양 캠페인장에 가서 한 번 보기라도 할래?"

"입양 캠페인장?"

"유기견들 입양 보내주는 모임 같은 건데 매주 토요일마다 이태원에서 캠페인장 여는 곳이 있데. 어차피 주말에 할 것도 없고 요즘 날씨도 좋은데 이태원에 놀러 간다고 생각하고 가는 길에 한 번 들러서 보는 건 어때?"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입양을 전제로 가는 것도 아니니 부담도 덜했다.

"그래, 한 번 가보기나 하자."



강아지 입양은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강아지를 좋아했고, 강아지를 키우려고 결심한 사람에게조차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얀 도화지처럼 새하얀 강아지들을 분양 샵에서 얼마든지 데려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유기견을 입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한때 마음의 상처로 인해 나를 경계하던 강아지가 이제는 내가 집에 올 때마다 너무 좋아서 귀를 내리고 꼬리를 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끼 때부터 항상 나를 좋아하던 강아지가 반기는 것과는 또 다른 행복을 준다. 한때 작은 소리만 나도 화들짝 놀라던 강아지가 이제는 내가 옆에서 무슨 소리를 내든 눈을 감고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Ryan 소속 직업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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