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기록지: 1차 항암_PART 3

7일의 기적과 14일의 기적

by 노엘


7일의 기적

항암을 하고 나면 그날 이후로 14일이 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항암 후 정확히 14일쯤이 되면 비로소 컨디션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효과가 확실한지 '14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다행히 나는 1차 항암의 고통에서 단 7일 만에 벗어날 수 있었다. 감기에 걸려 초반에 엄청나게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꽤 괜찮은 성적(!)이었다. 워낙에 운동을 즐겨하고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내게 집에만 갇혀 있어야만 했던, 심지어 처음 겪는 고통을 무방비로 감당해야 했던 7일은 외롭고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몸이 회복되자마자 목줄 풀린 강아지처럼 열심히 밖을 돌아다녔다. 다만 나의 컨디션과 반대로 면역력은 바닥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해야 했다. 내가 치료를 받던 2021년 가을은 코로나가 극성이었던 시기였기에 나의 가장 큰 과제는 코로나를 피하는 것이었다. 만약 코로나에 감염되면 몸이 아픈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병원에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치료 계획이 미뤄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실내외를 불문하고 항상 마스크를 썼고, 수시로 손 소독을 했으며, 사람이 많은 식당이나 카페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14일의 (전혀 다른 의미로서의) 기적

그렇게 예전과 크게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던 도중,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찾아왔다. 13일째가 되던 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첫 항암자에게 '14일'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첫째로는 항암의 고통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날, 두 번째로는 머리카락과 이별을 시작해야 하는 날.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머리가 빠지긴 하는 거야?', '항암을 해도 머리가 빠지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던데 그게 내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무 일이 없었는데, 오후가 되자 머리를 슬쩍 쓸어 넘기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과의 이별

사실 삭발은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나의 두상이 꽤나 예쁜 편이기 때문이다. 내 두상은 전통적인 한국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머리 전체가 마치 공처럼 둥글고, 이마와 뒤통수가 꽤나 많이 튀어나온 편이다. 뒤통수가 얼마나 둥근지 맞는 베개를 찾기가 어렵고, 자기 전에는 베개의 적당한 지점에 머리를 잘 놓아야만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나의 멋진 두상을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언젠가는 삭발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만 32세의 나이에 항암치료 때문에 대머리가 되어 두상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내가 꿈꾸던 그림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긴 머리카락으로는 두피가 아파 견딜 수가 없으니 미리 삭발을 하라'는 항암 선배님들의 조언에 따라, 14일째에 맞춰 미용실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머리카락이 빠지든 말든 상관없이 그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웃으며 작별하려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기대와 달랐다. 막상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 약 10년 넘는 시간 동안 짧은 커트머리를 유지해 왔기에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탈모의 충격은 머리 길이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대머리가 되면 '일반인'이 아닌 '암환자'로서의 본격적인 삶이 시작되고,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나의 세상은 또 한 번 무너졌다. 언제나 남과 다르게 살고 싶던 나였지만 이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르게 살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머리카락과 이별하기 전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항암 후유증으로 건강한 얼굴빛은 이미 사라졌고, 살이 빠져 초췌한 얼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남겨야만 했다.


다음 날, 비장한 마음으로 미용실에 갔다. 친한 동생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예약을 했기에 별도로 준비된 VIP룸에서 머리카락과 이별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옆머리와 뒷머리를 정리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던 이발기가 내 머리 전체를 훑고 지나가며 머리카락을 무자비하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숱이 많고, 튼튼하고, 두꺼웠던 나의 머리카락들은 그렇게 나를 떠났다.


한동안은 눈물이 날 것 같아 거울을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머리카락이 반 이상 잘려나가고 나서야 겨우 용기를 내어, 눈물을 흘릴 각오를 하고 거울을 응시했다. 그런데 거울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모습이 너무나 장난꾸러기 같았기 때문이다. 약 2mm의 길이로 머리를 깎아 놓은 내 모습은 '말 안 듣는' 동자승 같기도 하고, 만화 캐릭터 짱구 같기도 했다.

좌: 머리를 깎기 전 마지막 사진 / 우: 머리를 깎고 샴푸를 기다리며 찍은 사진
'그녀와의 이별'이 아닌, '머리카락과의 이별'

다행히도 나쁘지 않은, 심지어는 상당히 마음에 들기까지 했던 내 모습에 안심할 수 있었다. 분명 슬픈 상황인데 거울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울며 미용실을 나설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나는 웃으며, 이상하게도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용실을 나설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모자를 벗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나의 새로운 헤어스타일과 그토록 자랑하고 싶었던 두상을 구경했다. 난생처음 본 나의 두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둥글었고,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를 들어 첫 까까머리 사진을 찍고, 투병 사실을 알린 몇몇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다행히 친구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두상이 예쁘다', '까까머리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 끊이질 않았으니 적어도 반 삭발로 두상을 뽐내며 인기를 끌어보겠다던 나의 계획만큼은 성공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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