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요일 공연하는데 오늘이 첫 연습
KMH에서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같은 걸 하길래 지원해 봤다.
https://www.kmh.se/in-english/concerts--events/all/symfoniska-poeter-med-generationsorkestern.html
제너레이션 오케스트라는 말러, 라벨, 알프벤, 리스트의 음악으로 관객을 유럽을 가로지르는 시적인 여정으로 안내하는 교향악 프로그램을 선보입니다.
'심포닉 포이츠' 콘서트에서 제너레이션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유럽 음악 세계와 표현을 넘나드는 음악 여행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시적인 감성, 이야기, 그리고 강렬한 감정이 중심이 되는 네 편의 교향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콘서트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1악장인 '죽음의 날(Totenfeier)'로 시작됩니다. 이 곡은 어둠과 화해 사이를 오가는, 실존적이고 강렬한 작품입니다. 이어서 모리스 라벨의 '암탉의 어머니(Ma mère l'Oye)'가 연주됩니다. 이 모음곡은 동화 같은 환상과 다채로운 색채, 서정적인 기교로 가득합니다.
스웨덴 레퍼토리 중에서는 휴고 알프벤의 '군도의 전설'이 연주됩니다. 이 작품은 자연, 신화, 드라마가 어우러진 민족 낭만주의 교향시입니다. 프로그램은 음악과 시가 거대한 극적 흐름 속에서 하나로 결합된, 교향시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프란츠 리스트의 '전주곡'으로 마무리됩니다.
제너레이션 오케스트라는 스톡홀름 왕립 음악원 및 기타 음악 교육 프로그램의 학생들과 전문 음악가, 열정적인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왕립 음악원 1학년 지휘 전공 학생 네 명이 선보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를 교향악으로 풀어내는 콘서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휘과 학생들이 지휘경험을 쌓기 위한 프로젝트오케스트라로 추측되는데 우연히 모집공고를 학교 안에 모니터에서 보게 되었다. 그때는 라흐마니노프교향곡 2번이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지원을 했었다. 하지만 자리를 얻지 못했고 또다시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다. 큰 기대 없이 그래도 한번 넣어나 보자며 넣었는데 운 좋게도 4곡 중 1곡에서 한 자리를 얻었다. 꽤 편성이 큰 곡들을 해서 플루트 피콜로 포함 최대 4명이 필요했는데 웬일인지 나까지 다섯 명을 뽑아준 것. 4명이서 다 하면 좀 힘들거라 생각한 건지 아니면 내가 간절해 보이니 하나라도 해보라고 기회를 준건지.. 아무튼 그렇게 한 자리받은 게 말러 2번 교향곡 1악장에서도 third flute. 클래식에서 번호가 뒤로 가면 갈수록 곡에서 비중이 없어지기에 내가 받은 자리는 앞 구르기 하고 뒷구르기해서 봐도 비중이 없는 것. 심지어 다른 단원들은 최소 두곡 이상은 있었기에 깍두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냐.. 늘 박 터지는 오케스트라 플루트에서 한 자리라도 얻은 게. 심지어 십 년 만인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악보를 열어보았는데 아뿔싸, 말러 2번 교향곡 third flute은 피콜로도 같이 해야 하네. 피콜로가 없는데 어쩌나..
그런데 이 좋은 학교는 악기도 빌려준다. 피콜로도. 사실 다른데 지원 영상을 찍으려고 피콜로를 빌리고 싶어 작년 가을 이미 문의했던 상황. 그런데 아쉽게도 학교에서 가지고 있는 세 개의 피콜로가 이미 다른 학생들에게 대여되었단다. 그때 빌려간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주며 나눠 쓸 수 있으면 함께 쓰라고 했는데 이름을 보니 그중에 두 명이 이번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더라. 그래서 파트를 알려주는 메일에 전체 답장으로 나는 피콜로가 없는데 지금 준 파트에는 피콜로를 불어야 한다. 피콜로를 안 쓰는 다른 파트로 바꿔주거나 아니면 학교 피콜로 누구 누가 쓰고 있다던데 그거 같이 쓰는 것도 방법이라고 써서 보냈더니 세컨드플루트로 바꿔주었다.
신기한 건 연습을 월 화 딱 두 번만 한다는 것. 일정 잡혀있기로는 3시부터 7시까지였는데 공연 전주에 온 스케줄을 보니 각 곡당 한 시간이어서 나는 3시부터 4시까지 딱 한 시간만 연습하면 되었다. 그렇게 두 시간 연습하면 수요일 드레스 리허설 뒤 바로 공연. 말러 2번 교향곡 1악장만 약 25분 정도 되는데 고작 2시간의 연습시간을 운용해서 연주가능한 퀄리티로 만들지 기대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길게는 일 년, 짧아도 두 달 이상은 연습한 뒤 공연한다)
합격메일이 온 건 연습 한 달 반 전이었다. 급한 연습을 끝내고 나니 2주의 시간이 남았더라. 나빼고는 왠지 다 전공생일 거 같아서 미리 잘 준비하지 않으면 혼자 어버버 하다가 기회를 놓칠 느낌. 악보도 미리 봐놓고 손가락도 돌려놓았다. 중간에 조 바뀌면서 플랫이 여섯 개 붙는 부분이 있는데 (인간적으로 파 빼고 모두 플랫인데.. 플랫 여섯 개는 너무한 거 아니냐는…) 틀리지 말라고 한글로 다 음이름을 적어놨다.
오케스트라는 아무리 개인연습을 해도 같이 하면 틀리는 부분이 있는 터. 쉬었다가 나오는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유튜브로 스코어 나오는 음원을 들으며 쉬었다 나오는 부분들 전에 어떤 악기들이 멜로디를 연주하는지 다 적어놨다. 그렇게 흐름을 파악 한 뒤 그 음악을 들으며 함께 연습했더랬다.
십 년 만의 오케스트라 연습은 두근두근 설렜다. 반가운 관악기 소리들.. 오랜만에 들으니 바순이며 오보에며 호른 소리가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아직 세팅 중인 무대 위로 올라가 조금 일찍 가서 손을 풀었는데 나와 세컨드을 바꿔준 마리아가 먼저 와서 앉아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연습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피콜로가 도착했다. 의외로 남학생. 조금 지나자 퍼스트 플루트를 하는 미나가 도착했다.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지만, 인사를 하니 악수를 청한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는 각자 연습에 빠져들었다.
정각 3시가 되자 어린 지휘과 학생이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소리를 낸다. 조용해진 무대 위로 오보에의 A음이 울려 퍼지고 그 음에 맞춰 너도나도 튜닝을 시작한다. 이 또한 너무 오랜만이다.
튜닝하는 소리가 잦아들자 지휘자는 본인 이름만 말하고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에 약간 박자가 어그러지는 부분들이 몇 군데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연주를 마쳤다. 그리고 난 뒤 잘 안 되는 부분들만 집어서 연습했고 정확히 절반만큼 진도를 나가자 연습을 끝냈다. 그때가 연습 시작한 지 딱 53분 지난 뒤였다.
이토록 효율적인 연습이라니.. 이래서 프로 오케스트라는 두 번 맞춰 보고 무대에 올라간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어려운 부분의 손가락은 미리 돌려놓고 나오는 곳도 미리 다 파악해 놓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현악기가 적어서 퍼스트 바이올린 3, 세컨드 3, 비올라 3, 첼로 4, 베이스 2 뿐이었는데도 소리가 채워진 게 신기했고 그 와중에 타악기는 또 4명이나 있고 또 특수 악기인 콘트라 바순이랑 잉글리시 호른, 하프는 다 있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바순에는 나이 많아 보이시는 어르신들이 앉아 계시고.. 뭔가 여러모로 신기한 구성이었다.
십 년 만에 오케스트라 연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에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더 재밌게 즐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