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동료가 돼라!

2023 르세라핌 콘서트 ‘FLAME RISES' 후기

by nohhmadic
신인이기에 예측 가능한 세트리스트 속에서
신인이기에 예측불가한 신선함을


지난 8월 12일과 13일 르세라핌의 첫 단독 투어 ‘FLAME RISES’가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서울 콘서트를 진행하며 시작되었다. 파격적인 오프닝 퍼포먼스부터 신나는 앵콜곡까지, 르세라핌의 에너지 넘치고 인상 깊은 무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분명 강렬한 등장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등장과 동시에 백드롭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오프닝은 강렬하다 못해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웠고 공연의 시작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에 완벽히 성공하였다. 앵콜곡 역시 공연의 여운을 남기는 노래나 팬송을 선곡하는 경우와 신나는 노래로 팬들과 함께 제창하며 마무리하는 경우로 보통 예상되었는데, 힘이 넘치는 그룹답게 후자를 택했고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도 쭉 “Fire in the Belly”로 이들의 공연을 마무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객과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탁월한 선곡이었다. 무엇보다도 퍼포먼스 강점 그룹임을 확실히 보여줌으로써, 더욱 공연장과 무대가 커질 경우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지 그 잠재력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준 시간이었다.



너 내 동료가 돼라!


곡의 분위기와 의상, 연출의 느낌에 따라 섹션이 나뉘었고 그 구분이 분명하여 좋았다. 그만큼 수록곡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콘셉트, 색을 소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다음 콘서트와 앨범에서는 어떤 구성을 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이날의 기대감이 빠져나간 자리에 자연스레 채워졌다. 워낙 행사나 연말 무대에서 수록곡 무대를 고루 보여주기도 했고, 늘 ‘연말 무대’, ‘시상식 무대’스러운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비슷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 어쩌면 르세라핌을 많이 사랑한 팬일수록 뻔할 수 있기에. 그러나 심심하지 않았다. 르세라핌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실 무대를 잘하는 아티스트라면, 결국 그 무대 위에서는 관객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그것을 이번 콘서트를 통해 증명하고 각인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새 무대로 기억될 Unforgiven


공연을 통해 재주목한 노래는 예상외로 정규 1집 타이틀곡 “Unforgiven”이었다. 수록곡 무대를 많이 선보였기 때문에, 최초 공개인 노래와 무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대감과 호기심은 있었다. 그것과 별개로 타이틀곡 무대를 새삼 집중하게 된 것은 나로서는 의외의 감상이었다. 후속 활동이었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큰 인기를 얻으며 오히려 타이틀이었던 “Unforgiven”의 존재감이 애매해졌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활동 당시의 인기의 차이라기보다는 정규 1집의 ‘대표곡’이 무엇인지 떠올렸을 때, 뒷심을 강하게 이끌고 있는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꽤 강렬하다. 그러나 무대를 직접 본 순간 왜 타이틀 곡이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몰아치는 퍼포먼스를 긴장감 있게, 숨을 죽인 채로 감탄만 연발하며 볼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아티스트만으로 이끌어나가는 스타일보다는 관객이 함께 했을 때 시너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놀랍고 인상 깊었다.


단연 최고의 호흡은 “Antifragile” 무대였다. 무대가 진행될수록 팬들의 응원법과 마치 기합과 같이 박력 있는 르세라핌의 라이브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큰 함성과 에너지가 공연장 전체를 채웠다. 다음으로 인트로 “The Hydra”를 시작으로 집중도 높은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인 후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로 이어지며 점점 분위기를 가열시켰다. “Unforgiven”으로 넘어가면서 팬들의 응원법과 함성도 더욱 커졌고, 앵콜 전 공연장의 열기를 가장 뜨겁게 만들었다. 콘셉츄얼 한 연출과 강렬한 퍼포먼스가 최적화된 느낌을 주는 만큼 그 촘촘하고 치밀한 구성 사이에 관객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지만 거침없이 관객을 끌어들였다. 불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번 콘서트의 폭발적인 콘셉트, 이미지와도 르세라핌의 색깔이 잘 들어맞아 훨씬 부드럽게 즐길 수 있었다.



아쉬움은 기대감으로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10점 만점에 10점!’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고 이것이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가 관건인 것이다. 무대 연출 활용이 많았고 이동을 자주 하며 동선이 넓었지만, 그것에 비해 관객석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일 경우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시야가 가려져 아쉬웠다.


VCR 역시 짧지 않은 편이었지만 토크 시간도 자주 가졌다. ‘콘서트’라는 틀에서 흐름이 조금 끊기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신인으로서 첫 번째 콘서트의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고 느꼈다. 절대적인 곡 부족과 공연을 이끌어나가는 경험 부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토크가 루즈하지 않게 잘 이어져 나간 것은 아무래도 멤버 김채원과 사쿠라의 역량이 작용한 부분이라고 추측된다. 공연 전 커버곡 중심의 솔로나 유닛 무대도 기대해 봤지만 아직은 첫 콘서트인 만큼 개인 역량보다는 강도 높은 단체 퍼포먼스나 그룹 전체의 콘셉트를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흐름에 집중한 것처럼 느껴졌다.


덧붙여 보호자와 함께 온 어린 팬들을 많이 목격했고, ‘이제는 멤버를 다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대화를 관람 후 나오는 길 들을 수 있었다. 첫 콘서트의 역할이 위와 같은 ‘보호자의 뿌듯함’뿐 아니라 호감 정도의 관심으로 온 관객에게도 한 명 한 명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충분히 만족시켰다고 느껴졌다. 여담으로 오래 전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에 멤버 수가 많은 그룹이 출연하여 멤버 소개 및 개인기 관련 토크만 방송 시간의 절반 이상을 보낸 것을 시청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 그룹의 팬이었던 친구는 이미 아는 것을 또 반복하고 뻔하다며 지루해했지만, 나는 꽤 흥미롭게 시청하였고 방송이 끝난 후 10명이 넘는 멤버에 대해 기억할 수 있었다.


지난 시상식과 연말 무대들이 매우 웅장하고 강렬했기 때문에 오히려 단독 콘서트의 인상이 약한 느낌이 될 수도 있지만 공간적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 남은 투어를 고려한 완급 조절도 추측해 본다.



무장해제의 순간, FEARNOT!


투어를 진행하면서 더욱 성장하여 돌아올 르세라핌이 기대된다. 지금보다 더 넓은 무대가 주어져도 넘쳐나게 뿜어낼 이들의 에너지가 기대되는 것이고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기대인 것이다.


땀범벅이 된 얼굴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할 여유도, 컨페티를 떼어낼 정신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응원봉으로 가득한 공연장을 바라보면서 팬들의 열기와 함성에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감동을 덜어내지 못하는 신인의 순간이 절실히 느껴졌다. 아직 팬들과의 공연, 콘서트의 경험이 부족하여 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은 소녀들이다. 무대가 끝났는데도 뒤로 이어지는 인스트에 맞추어 갑자기 떼창하고 응원법을 하는 팬들을 보며 깜짝 놀라 감동받는 순간. 마치 팬들의 이벤트를 처음 본 순간처럼 이 날 그 감동의 크기와 울림을 뛰어넘는 순간은 앞으로도 아마 쉽게 마주하지 못할 것이다.


르세라핌도, 함께 한 팬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