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응당 여행하는 사람의 취향을 기반으로 목적지와 일정이 그려지는 것이지만, 우리의 옥스포드 여행은 특히나 사적인 취향이 많이 반영된 여행이었다.
나는 ‘해리 포터(Harry Potter)’를 아주 좋아했다. 내가 키운 딸 역시 해리 포터 덕후가 되었다. 이런 우리에게 영국 방방곡곡 여행은 한편으로 ‘해리 포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다.
< 딸과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
해리 포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영국은 정말 천국과 같다. 일상적인 마트에서도 해리 포터 컨셉의 초콜릿, 잠옷 등의 아이템들이 많고,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살면서 해리 포터를 탄생시킨 에든버러(Edinburgh)를 위시하여, 영국 전역을 세트장으로 간주하고 영화를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구석구석 해리 포터 촬영지가 많다. 뿐만 아니라 해리 포터와 꼭 관련은 없지만 분위기가 꼭 닮은 장소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시간의 부족으로 모든 곳을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해리 포터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정을 ‘해리 포터를 찾아서’란 타이틀을 붙여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 영국의 일상에서 만나는 '해리 포터' >
< 영국 곳곳에서 만난 '해리 포터' >
‘해리 포터’를 찾아 처음으로 갔던 도시는 잉글랜드 남부에 위치한 ‘옥스포드(Oxford)’였다. 잉글랜드의 남부 지역에 가을색이 스며들던 10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옥스포드로 떠났다. 옥스포드는 내가 살던 바스(Bath)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에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했다.
< 옥스포드 지도 (출처 : 구글 지도) >
< 세계적인 대학, 옥스포드 대학교가 있는 옥스포드 거리 풍경 >
세계적인 대학, 옥스포드 대학교가 있는 '옥스포드'의 명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당일로 떠난 옥스포드 여행에서 우리는 ‘해리 포터’에 집중하느라 원래의 옥스포드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에는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은 유한하고, 인생에서 선택과 집중은 필수이며, 처음 말했던 대로 여행이란 사적인 취향에 바탕하기 때문이라는 변변찮은 변명으로 우리의 미흡한 옥스포드 여행을 미화해본다.
혹시 알찬 옥스포드 여행기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쉽지만, 블로그 등에 열과 성을 다해 정리되어 올라와 있는 다른 여행자들의 옥스포드 여행기를 참고하시길 권한다.
앞으로도 ‘해리 포터를 찾아 떠난' 몇 편의 영국 여행기가 가끔 올라올 예정이니, 부디 사적이고 ‘해리포터적(Harry Potter-Oriented)’인 여행자의 좁은 견문을 이해해주시길 미리 부탁드린다.
호그와트 마법학교 대연회장의 모티브, 크라이스트 처치 그레이트 홀
영화 <해리 포터>는, 모든 편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영화 초반에 호그와트 마법학교 대연회장에서 전교생이 다 모여 새 학년을 시작하고, 마무리도 대연회장에서 그해의 최고 기숙사를 정하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해리 포터> 영화 속 대연회장, 천정에 막 촛불이 떠 있고, 식탁에 음식이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고, 유령들이 날아다니는, 그 대회장의 모티브가 된 곳이 옥스포드 대학교에 있다. 옥스포드 대학교의 그레이트 홀(Great Hall), 정확히는 옥스포드 대학의 수많은 건물 중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의 그레이트 홀이다.
< '해리 포터' 영화 속 호그와트 대연회장 장면 (출처: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해리 포터 영화 속 대연회장은 실제로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옥스포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그레이트 홀'을 참고하여 제작한 세트장이다. 신입생들의 기숙사 배정도 진행되고, 지엄하신 교장 선생님 ‘덤블도어’ 교수님의 훈화 말씀도 듣고, 중요한 사건이 공표되기도 하는 대연회장은 높은 천장과 긴 테이블 등으로 장엄하고 엄숙한 느낌이 드는 곳. 이 호그와트 대연회장에 영감을 준 진짜 ‘그레이트 홀’은 어떤 모습일까?
< 옥스포드 대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외벽 >
옥스포드 크라이스트 처치의 관람객용 입구가 있는 건물의 외벽에는 담쟁이 덩굴이 붉게도 타오르고 있었다.
크라이스트 처치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지만, 방문할 날짜에 예약을 해야 관람 가능하다. 내가 옥스포드를 방문한 때가 코로나 시기여서 여행이 활발하지 않았음에도 미리 예매를 했으니,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진 지금은 여행 계획이 있다면 무조건 일찍 인터넷으로 예매를 해 두어야 할 듯하다.
이 크라이스트 처치 건물 맞은 편에 관람객을 위한 티켓 박스와 기념품 샵이 있다.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되어서, 그레이트 홀을 포함해 외부인에게 개방된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 내부를 자신만의 속도로 찬찬히 관람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 예상보다 훨씬 재밌게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아이들 >
호그와트 대연회장에 영감을 준 옥스포드 크라이스트 처치의 그레이트 홀은 영화 속 대연회장보다 좁고 작았다. 그러나 영화 속의 그곳처럼 근엄하고 고고한 분위기를 풍겼다. 목조로 된 높은 천정과 스테인드글라스 창, 벽에 걸린 초상화 액자들이 빈 그레이트 홀을 한층 경건하게 만들었다.
< 호그와트 마법학교 대연회장의 모티브가 된 크라이스트 처치 그레이트 홀 >
지금은 관람객을 위해 비어 있지만, 이 그레이트 홀은 현재도 여전히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데, 중요한 행사와 세미나는 물론이고 식당으로도 사용되어, 매 식사 때가 되면 옥스포드 대학교 교수와 학생 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성의 엄청난 대학교 옥스포드 학생들은 밥도 엄청나게 멋진 곳에서 먹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영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영국에서 지냈던 시간이 무척 그리워졌다. 그래서 옆에 있던 첫째 아이에게, ‘엄마가 다시 영국에서 좀 살고 싶은데 딱히 그럴 일이 없으니,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옥스포드나 케임브릿지 대학교에 가 주렴.’ 하고 부탁했다. 해리 포터처럼 근사한 대연회장에서 밥도 먹을 수 있다고.
첫째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조용히 동생을 불렀다. 그러고는,
“엄마가 다시 영국에서 살고 싶다고 나한테 옥스포드나 케임브릿지 대학에 가라는데, 아무래도 이 누나는 안 될 것 같으니 네가 옥스포드나 케임브릿지에 가렴.”
이라며 동생의 능력을 높이 사는 내리사랑을 실천했다. 동생을 향한 사랑도 사랑이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첫째 아이가 꽤 똑똑한 것 같다. 욕심이 난다, 크라이스트 처치 그레이트 홀. 어쩌면 가족 초청 행사로 나도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딸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하하.아, 참! 둘째 녀석의 대답은 누나와 달리 아주 심플했다. “싫어.”
쓸데없이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을 불태우는 멋진 그레이트 홀 밖으로 나오면, 그곳에도 '해리 포터'의 장면이 있다.
< 그레이트 홀 앞 계단 >
여기는 실제로 영화 촬영이 이루어 진 곳으로, 그레이트 홀로 들어가는 계단과 입구에서 해리 포터 첫 번째 이야기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촬영했다. 해리를 포함한 신입생들이 처음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들어와 대연회장으로 향하는 장면. 맥고나거 교수님이 계단 위에 서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장면과 ‘잘난 척쟁이‘ 말포이가 해리 포터에게 친구가 되길 제안했다가 거절 당하며 둘 사이의 갈등의 서막이 열리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맥고나거 교수님 (출처 :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
처음 호그와트와 조우하는 장면에서 해리가 가졌을 긴장감과 설렘을 떠올리며, 겉으론 근엄하지만 속으로는 해리를 아꼈던 ‘겉차속따’ 맥고나거 교수님처럼 계단에 서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다들 이렇게 재연하는 맛으로 '촬영지'를 찾는 것 아니겠는가. 하하)
크라이스트 처치의 상징과도 같은, 톰 타워
그레이트 홀과 계단을 구경한 뒤, 관람 동선을 따라 건물 밖으로 나가면 톰 쿼드(Tom Quad)가 펼쳐진다. 인터넷에서 옥스포드 크라이스트 처치를 검색하 제일 많이 나오는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크라이스트 처치의 안뜰 '톰 쿼드' >
'톰 쿼드'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가장 큰 안뜰이라고 한다. 사각형 모양의 넓은 잔디밭을 중심에 두고 사면에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공부에 열중하던 학생들이 가끔 밖으로 나와서 초록 잔디를 보며 한 숨 쉬어 가기에 참 좋을 곳처럼 보였다.
네 면의 건물 중 제일 유명한 것이, 그레이트 홀 방향에서 안뜰로 나왔을 때 잔디밭 너머로 보이는 시계탑 ‘톰 타워(Tom Tower)’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상징과도 같은 이 시계탑에는 ‘톰 벨(Tom Bell)’이라는 종이 있는데, 이 종이 밤 9시 5분이면 101번 울린다고 한다. 통금이 있던 시절, 밤 9시에 이 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기숙사로 돌아갔는데, 이제 통금이 사라졌지만 크라이스트 처치의 역사를 이으며 종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이 종이 치는 횟수 ‘101’, 크라이스트 처치의 최초 학생수를 기억하며.
< 톰 타워와 톰 쿼드를 둘러 싼 건물들>
종소리를 들을 만큼 늦게까지 옥스포드에 머물지 않아서 정말로 9시 5분에 101번 종소리가 울리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여전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톰 쿼드와 톰 타워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크라이스트 처치를 방문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그외 크라이스트 처치의 이곳저곳 >
< 크라이스트 처치를 나서는 길에 만난 아름다운 정원. 멀리 톰 타워가 보인다. >
옥스포드 대학교 안에는 또 다시 몇 개의 전체를 구성하는 구성 대학들이 있는데, 그 중 크라이스트 처치가 가장 큰 대학이라고 한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크라이스트 처치 출신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 또한 이 대학 출신이라고 했다. 어쩐지 학교 주변에 도착했을 때 거리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기념품과 그 컨셉의 카페 같은 것이 보여 무슨 일일까 했는데, 대선배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것이었다.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마음에는 여전히 '해리 포터'가 가득해 크라이스트 처치 기념품 샵에서 해리 포터 아이템만 사고 말았다. 하하.
< 해리 포터 덕후들의 옥스포드 대학교 기념품은 '스니치'와 '타임 터너'였다. (하하. ^^;) >
<해리 포터> 말고, 옥스포드 거리 구경
크라이스트 처치 밖으로 나가 <해리 포터>만 보고 가기에는 너무 근사한 도시 옥스포드 거리를 거닐었다.
거의 도시 전체가 학교 건물로 구성된 곳이라 거리 걷는 것이 학교 구경이었겠지만, 사실 여행자 눈에는 학교 건물과 아닌 곳이 구분이 잘 안되므로, 그냥 옥스포드 거리 구경이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 옥스포드 거리 산책 >
유명한 옥스포드의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를 만났다.
< 옥스포드 대학교의 '탄식의 다리' >
이 다리의 공식 명칭은 ‘허트포드 다리(Hertford Bridge)’로 크라이스트 처치와 같이 옥스포드 내 또 다른 칼리지인 허트포드 칼리지의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다. 그런데 이 다리의 생김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탄식의 다리(베네치아의 죄수들이 재판을 받으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외부를 볼 수 있었던 다리. 이 다리 위에서 죄수들이 한숨을 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와 비슷하다고 해서, 일명 ‘옥스포드의 탄식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옥스포드 학생들이 시험을 치고 이 다리를 지나며 탄식을 뱉는다는 농담도 생겨난 ‘탄식의 다리’. 어디 이 다리 위에서만 탄식을 할까. 이 다리뿐 아니라 옥스포드의 수많은 곳에서 탄식과 환호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을 학생들을 괜스레 응원하게 되는 옥스포드의 재미난 명소였다.
< 학교 앞 카페에서도 '열공'하던 옥스포드 학생들과 그들의 탄식을 재연한 남편(Thanks to 여봉봉!) >
또 하나의 옥스포드의 명물은 보들리안(Bodleian Library) 도서관 내 래드클리프 카메라(Radcliffe Camera) 도서관이다.
< 원형의 구조가 독특한 '래드클리프 카메라 도서관' >
보들리안 도서관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도서관 중의 하나로, 영국의 법적 납본 도서관 중 하나라고 한다. 보들리안 도서관은 몇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원형의 구조가 독특한 래드클리프 카메라 도서관이 특히 인기가 있다. 인기만큼 많은 여러 영화나 시리즈를 촬영한 곳이기도 한데, 내 사랑 <해리 포터>도, 영화 속 도서관 장면과 그외 몇몇의 장면을 보들리안 도서관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공에게 개방된 곳은 아니라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별도의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티모시 샬라메의 매력이 엄청났던 영화 <웡카(Wonka)>에도 이 래드클리프 카메라 도서관이 나왔다. 혹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 끝 부분을 곰곰이 한번 떠올려 보고(영화 속에서 도서관이 딱 한 장면 나온다!), 아직 안 본 이들은 영화를 보다가 이 도서관을 발견하면 반갑게 생각해 주길.
옥스포드 거리의 다리를 지날 때는 강물 위에 동동 뜬 작은 배들이 보였다. 좁은 강물 위에서 유유히 배를 타고 흐르는 풍경, 옥스포드와 케임브릿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좁고 긴, 선체의 앞부분이 사각형 모양으로 된 배를 ‘펀트(Punt)’라고 하는데, 막대기로 강 바닥을 밀어서 배(펀트)를 타는 것을 ‘펀팅(Punting)이라고 부른다.
< 펀팅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
옥스포드의 거리를 거닐 때만해도 '펀팅'이 뭔지 잘 몰라서 다리 아래로 구경만 했다. 그러나 다음해 케임브릿지에 가서는 나도 강물 위를 둥둥 떠다녀 보았으니 ‘펀팅 체험기’는 나중에 케임브릿지편에서 다시 나누도록 하고, 오늘은 옥스포드의 아름다운 풍경 중 한 장면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옥스포드 중심 지역에는 개인차량 진입이 불가해 주차를 해 둔 지역까지 꽤 긴 거리를 걸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옥스포드의 거리에는 노란 가을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 저물 무렵 옥스포드의 노란 빛 거리 >
지극히 사적인 감성 여행을 즐기는 내게는, 솔직하게 말해 앞서 돌아본 특별한 명소(물론 해리 포터 성지들은 제외한다!) 보다도 더 마음을 간질이는 풍경이었다. 울긋불긋한 가을이 오는 거리를 걸으며, ‘탄식’까지는 아니지만, 떠나는 아쉬움의 한숨을 불러일으켰던 옥스포드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