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는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by 노랑자

특유의 날카로운 지적 감수성을 가진 친한 동생 S의 추천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보통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논픽션 중심으로 책을 고르는 편이었지만, S의 추천사로 12월 마지막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결국 이 책을 결재하게 되었다. "언니, 어류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분류법이래. 그런데 그 분류법의 변화가 개인의 인생을 변하게도 하더라"


2025년의 연말은 머릿속에 혼란함이 맴도는 시기였다. 한 해 동안 겪은 또는 관찰한 대소사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삶은 무엇인가, 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의 방향성과 한 해의 목표, 삶의 태도들을 어떻게 정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나는 목표를 세우고, 하위 태스크들을 목표에 맞게 수립하고 관리하는 걸 좋아하는 정리충이다). 매년 기계적으로 세우고 있는 한 해 목표들,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득한 채로 노션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 책이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책장을 읽어 내려갔다.


한 위인에 대한 입덕 및 탈덕기


이 책은 한 위인에게 입덕하는 과정, 그리고 그 위인에게 푹 빠진 지점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발견한 그 위인의 오류로 인해 탈덕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입체적인 전기이다. 자신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류 수집에 광적인 집념을 보였던 초대 스탠퍼드 대학의 학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끝까지 파헤쳤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조던 교수의 일생을 탐구하며 자신의 구원을 다룬, 두 일생의 일대기를 다룬 복합적인 구성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새로운 어종을 발견하고, 분류하는 데 일평생을 쏟아부은 인물이다. 그렇게 생전에 발견된 어종의 20%를 그와 그 연구진이 학계에 처음 소개하고 생물들의 구분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한 해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그가 30년간 수집해 온 물고기 컬렉션이 한순간 박살 나고 만다. 물고기 사체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모든 걸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 순간, 조던은 파괴된 표본을 다시 보관하기 위해 엄청난 수고를 감행한다. 대량의 에탄올(보존제)을 다시 주문하고, 에탄올이 도착하기까지 48시간 동안 수돗물을 뿌려 표본의 부패를 최소화했다. 보존제가 도착하자, 기억할 수 있는 표본을 집어 들곤 지진과 같은 재해에 다시는 컬렉션을 상실하지 않겠단 의지로 학명 네임택을 직접 표본 살갗에 꿰매 넣는 작업을 단행했다.

그는 향후 기존에 보유했던 양보다 훨씬 거대한 어류 컬렉션을 보유하게 된다. 그는 어떻게 자연재해와 같은 절망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수 있었을까. 그가 가지고 있던 내면의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생의 좌절기에 있던 저자는 조던을 본받다 보면 자신의 상황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조던의 인생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작업을 시작한다.


조던이 그렇게 다시 자신의 컬렉션을 재구축할 수 있던 내면의 동기는 곧 실존의 문제였다. 그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순수한 식물 관찰가였던 조던이 자신을 확인받을 수 있던 기반은 "자연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질서를 수호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잃는 행위였기에, 그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이었다. 그 지점이 조던이 가진 투지(이 책에선 Grit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의 기제였다.

하지만 그 투지는 컬렉션을 재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했을지언정, 조던이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오류를 범하도록 방치한다. 재단 창립자의 암살 의혹, 우생학을 미국 내 들이는 데 앞장서고, 그것이 제도화되는 데까지 자신의 힘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등 께름칙한 행적이 이어진다. 나아가 조던이 일생을 바쳤던 어류학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현대에 폐기된 구분법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희망의 상징으로 탐구하기 어렵게 된다.


흥미로운 건 조던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였다. 단순히 탐구를 단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아가 조던의 과오가 낳은 잔재들을 추적한다. 그것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재정렬하게 되고, 나아가 슬럼프로부터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된다.


범주화는 비약과 폭력의 시작일 수 있다


생물의 분류/구분 기준은 그 생물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살아 숨 쉬는가가 기준이다. 겉모습이 아닌 실제 내부 구조에 의해 생물을 분류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류'라는 구분은 지나친 일반화다. 단지 바닷속에 산다고 해서 바닷속 모든 생물을 분류하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다. 마치 색이 노란 생물(나비, 병아리 등등)을 모두 노란 종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피상적인 것이다. 인간은 생물을 분류함에 있어 인류가 진화론적으로 가장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많은 비약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대용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최근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는 동생이 겨울 방학차 집에 들렀다. 동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동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장난으로 연애하고 있지 않은 동생의 상황을 놀렸고, 새로 볶은 히피펌을 무섭다고 놀렸다. 또 유학하면서 이전보다 통통해진 동생을 두고 식습관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언니로서 으레 동생에게 항상 해왔던 언행들이었지만, 유럽에 있던 동생은 내 언어들을 불편해했다. 되려 자신이 한국을 떠났던 이유를 가족을 통해 더 실감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몸 둘 바 모르겠는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꼴에 언니라고 자존심을 부렸다. 끝끝내 "가족이니까 이런 얘기하는 거야"라는 폭력적 언어로, 일률적인 사회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자연 위에 그은 선 너머에는 항상 또 다른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삶은 혼돈이다. 자연은 인간이 촘촘히 만들어 놓은 문명을 파괴할 수 있는 수만 가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으며, 언제라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즉슨, 한 개인은 털끝만 한 먼지와 다를 바 없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이다. 이 존재론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의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를 죽는 그 순간까지 붙들었고, 그 끝은 우생학에 의한 수많은 사회적 희생이었다. 아무리 인간이 질서와 범주를 만들려고 노력해도, 세상은 더욱 복잡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의 연속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복잡다단함을 인정하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질서"라는 당연한 확신,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너무 온실 같은 환경에 머무르며 스스로를 점검하지 않고 지내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스스로도 조던과 같이 사회적으로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것들 : 학업, 취업, 결혼, 재테크, 부동산, 다이어트 등을 좇아가기만 했던 삶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그 바깥의 가치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는 곧 동생에게 상처를 줬다. 우생학을 지지하여 수많은 비약적 제도들(사회적 아웃라이어들에 대한 강제 난임수술)을 만든 조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임에 스스로도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이유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는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인 것이다. 관점에 따라 민들레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 이것을 민들레의 법칙이라고 한다.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회 그물망으로 확대해 바라보면 이웃, 지역, 국가, 세계라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서로 엮여 있다. 이 그물망이 우리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매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원천이라는 것.


나와 동생은 가족이라는 그물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서도 서로 조금씩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그 가치가 의미를 발하는 커뮤니티에서 우리는 각자 또 다른 그물망을 형성한다. 그 그물망 안의 사람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의지하며 더 망을 더 촘촘히 잇는다. 동생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다른 것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정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동생에게 상처를 입혔고, 이 사건이 동생과 나 사이의 연결고리를 훼손할 수 있었음에 그 위험성을 더욱 인지하게 되었다.


"겸손"이라고 일컬어지는 흔히 사용되는 그 단어는, 어쩌면 인간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한 지지대인 그물망을 수호하기 위한 관념이 아닐까?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태도"라는 정의의 겸손이 단순히 사람들로부터 오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함이 아닌,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기 위한 관점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아닐지 곱씹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