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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Mar 11. 2020

소토 보체 (Sotto Voce)

소리를 낮추어 혹은 낮은 목소리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광화문 풍경도 변했다. 언젠가 부터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외침도, 대통령을 향한 저주와 악담도 사라졌다. 성조기와 태극기의 물결 또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확성기 소리가 없다. 그 악다구니와 아비규환의 소음은 차라리 고문에 가깝지 않았던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의도치 않게 세상의 소리를 조금 낮게, 사람들의 소리를 부분적이나마 '소토 보체' (Sotto Voce) 풍으로 만들었다.

소토 보체는 '소리를 낮추어 혹은 낮은 목소리로'라는 의미를 가진 이태리 성악 용어. 언어도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있는지 지금은 여러 분야에 두루 쓰인다. 기록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특히 중요한 소절을 강조할 때 '소토 보체' 라고 악보 위에 표기했다. 이 위대한 음악가는 작은 소리가 더 힘이 세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던 모양이다.

소토 보체를 연상시키는 낮은 목소리를 오래전 토론토 지하철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넥스트 스테이션 칼리지. 칼리지. 저 짧은 문장 속에 승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다. 이 외의 정보는 문자와 그림으로 지하철 내부에 게시된다. 불필요한 음성 신호는 그저 소음 공해일 뿐이다. 지금도 저 짧은 지하철 방송 멘트가 우아한 아포리즘처럼 들려온다. 넥스트 스테이션 칼리지. 칼리지.

초등학교 때 처음 그 이름을 들었던 갈릴레이야 말로 소토 보체의 대가다. 그는 두 번째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신념을 철회하고 ‘전향서’에 서명한 후, 겨우 파문을 면한다. 재판소 문을 걸어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 나지막한 혼잣말이 소토 보체의 전설로 통한다.

고종석에 의하면 '소토 보체‘의 의미에 가장 근접한 영어 단어는 whispering, 말 그대로 속삭인다는 뜻이다. 자동적으로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이 연상된다. 둘 사이의 대화는 대부분 짧고, 낮고 달달하다. 사랑의 언어는 속삭임과 침묵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것은 조용히 다가와 깊게 파고든다.

하 수상한 시절이다. 거리의 사람들이 예외 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 묵시론적인 풍경을 보며 엉뚱하게도 마스크의 다른 용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혹시 조금 덜 말하거나 작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 마스크를 써본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라'고 했던가? 혹여 세상에 진실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확성기를 통과한 큰 소리가 아닌, 소토 보체 풍의 낮은 목소리로 전달될 것이다. 재판정 문을 나서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갈릴레이의 경우처럼.

※ 비트겐슈타인

#sotto_voce
#소토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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