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울음을 지체할 수 없었다.
꺼이꺼이 어깨를 들석이며 울었다. 유학시절, 힘들때마다 찾았던 성당이다. 도시 한 복판, 프루덴셜 센터내에 본당만 있는 한칸짜리 작은 공간인데, 여전히 20년후에도 거기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끌린듯 들어가, 앉았는데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으로 훅 들어와 벅참으로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게 기독교, 천주교에서 말하는 ‘성령’이 임한다는 것일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깨달음’이 다가왔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치고 부정하고 노력한다해도 모든 것은 이미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일은 그저 주어진 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랬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것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나의 모습 그대로, A는 A대로, D는 D대로 그 표식을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된다. 불안해할 필요도,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다. 아니 미리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도 큰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저항해선 안된다. 그냥 순응하는 것이다.
예정되었다고 하면 우울할 수 있다. 바꿀 수 없다면 좌절할 수 도 있다. 그런데 반항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나에게 이미 주어진 역할대로 이 생을 사는 것, 원망않고 요리사는 요리사대로 음악가는 음악가대로 변호사는 변호사 생긴대로 제 임무를 다하면 된다. 그 그릇의 크기도 기간도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게으름 피울 수 있을까? 그것도 내 몫이라면 그 방황하는 시간들도 허락될 것이다.
내려놓으니까 한결 편안하다.